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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달리기, 우리가 죽는 순간엔 지극히 단순해진다.

지구빵집 2022. 9. 1.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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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8일 5시 30분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집으로 오니 아들이 코로나 확진이어서 자기 방에 격리되어 지낸다. 미국에서 올 때도 음성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입국이 되었고, 검사하고 와서도 하루 이내에 PCR 검사를 받아 모두 음성으로 나와서 조심하며 지냈는데 8월 1일 머리에 열이 나서 검사받았더니 확진으로 판정 났다.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 약을 지어와 7일 동안 지내니 8월이 반이 지나간다. 혼자 여행을 가니 기분이 좋지 않았던 여자는 여행을 가있는 기간에도 메시지 하나 보내지 않았다. 격리되어 지내는 동안 삼계탕 한 그릇 포장한 것만 사다 놓은 사람이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만 생긴다. 그럼에도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확진 판정을 받은 월요일 점심에 친구 몇 명을 만났다. 헤어지고 오다가 신속검사를 받았더니 확진이 되어 만난 분들에게 알렸다. 모두 무사했다. 일어난 일에 불평하고 불만을 갖는 일도 습관에 가깝다. 문제는 이미 발생된 거라서 일단은 해결책에 집중해야 하는 데 사람에 따라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비난하기도 한다. 불평과 비난 같은 것들은 일종의 습관이라서 더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막는 경향이 있다.

 

8월 9일. 화요일.

비가 많이 내렸다. 서울 여러 곳이 침수되었고 교통이 끊긴 곳도 많았다. 여자도 퇴근을 못하고 회사에서 자고 아침에서야 잠깐 들렀다. 그러니까 7월 13일부터 전혀 운동을 하지 못했다. 어떤 습관이든 만들기도 어렵고 없애기도 쉽다. 문제는 좋은 습관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8월 11일. 목요일 훈련. 11.06km, 1시간 9분, pace: 6분 17초

운동장에 한 달 만에 나오니 좋았다. 모든 것은 변함없이 그대로다. 경기장 트랙도, 훈련 중인 관천 마라톤 팀도, 여자 축구팀도, 주위를 둘러싼 자연과 하늘도 제 모습을 잃지 않았다. 변한 것은 오로지 자신이다. 8월부터 춘천마라톤 대비 훈련을 시작한다. 오늘은 1km를 빠른 속도로 달리고 800미터를 회복 달리기로 해서 3 set를 달린다. 오랜만에 보는 동료들이지만 시간이 하나도 흐른 것 같지 않다. 그러니까 변화는 우리가 관여할 것도 아니고 판단 자체가 필요 없다.

 

8월 13일. 토요 정모. 서울대공원 12.37km, 1시간 23분, pace: 6분 44초

많은 비가 내려 양재천이 엉망이다. 나무들은 뽑히고 숲은 헝클어지고 징검다리도 떠내려가고 평행봉과 철봉도 비에 쓸려갔다. 청소하시는 분들이 한창 복구 중이라 토요일 아침 일찍이라도 달리는 모습이 별로라서 서울 대공원으로 장소를 변경했다. 대공원 리프트 앞에서 만나 언덕 훈련 장소 은신처로 이동한다. 언덕을 작게 한 바퀴 돌면 2km 거리다. 두 바퀴를 돌고 나서 대공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스면서 거리가 긴 5km 코스를 달린다. 아직 몸이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한다. 숨도 많이 가쁘고 힘을 낼 수 없다. 

 

8월 16일 화요일 훈련, 400미터 트랙 25바퀴, 10.52km 59분, pace: 5분 36초

조깅 8회전을 달리고 다시 연달아 17바퀴를 달린다. 아직 빨리 달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조금씩 다리 근육과 달리기 페이스, 한동안 쉬었던 감각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렇다고 서두르지 않는다. 빠지지 않고 계속 달리면 금방 제 모습을 찾을 것이다. 대부분이 사실 그렇지 않은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균형 상태로 가는 것은 자연의 본성이다. 

 

8월 18일 목요일 훈련. 관문 운동장. 2km 야소훈련. 10.6km 1시간 2분, pace: 5분 52초

훈련하는 분위기가 좋지 않다. 당연하다. 한 번도 쉬지 않고 화, 목 훈련을 하는 팀과 춘천마라톤 준비로 세 달 간 단기 훈련에 돌입하는 팀이 같은 수는 없다. 막 시작한 우리 팀 훈련에서 체계적인 것들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빠르다. 어쨌든 계속 달리는 일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도 내부적인 상황이나 거절, 기분 나쁜 것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는다.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뜻이다. 

 

단순함이란 보다 많은 즐거움과 적은 고통을 가진 살아있는 인생에 관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필수 교양과목이다. 모일 때 정확한 시간에 모이고, 워밍업으로 8바퀴 조깅과 100미터 4회 질주를 한다. 준비 체조를 하고 본 훈련으로 들어가는데 그날 과제는 속도가 좀 느리더라도 반드시 포기하지 말고 실행한다. 

 

2km를 10분에 달리고 800미터를 조깅 페이스로 달리는 세트를 3회 했다. 마지막 2km는 힘들어서 왼쪽으로 허리가 굽혀지고 엉덩이는 처지고 발걸음이 무겁다. 룡자가 '형님, 리듬을 잃지 마시고 경쾌하게 달리세요.' 한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생각한다. 리듬 있게 달리자. 가볍고 경쾌한 리듬에 맞춰 달린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 빠르지 않아도 된다. 달리기도 춤이라면 우아하게 달려야 한다. 

 

8월 20일 토요일 정모 영동 1교, 등용문 왕복 10km

요즘 많은 비로 심하게 헝클어진 양재천을 보니 속상했다. 가로등이 전부 누워 있고, 영동 1교 아래 벤치들이 전부 떠내려갔다. 등용문을 달리는데 곳곳이 복구현장이고 물이 아직도 고여 있는 곳은 신발이 젖지 않게 걸어서 건넜다. 달리는 둥 마는 둥 등용문까지 다녀와서 바로 청주로 내려가기 위해 돌아왔다. 가끔 아침 식사도 하지 못하고 동료들과 헤어지면 그냥 지나간 한 주일이 꽤 긴 시간으로 느껴진다. 시간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우애와 사랑, 애착이나 관계에서도 모두 영향을 준다. 

 

8월 23일 화요일 훈련 조깅 8km

오늘 끝나고 회식하기로 해서 간단히 달렸다. 몸이 힘든 게 맞다. 마음은 그다음에 오기 때문이다. 그 반대인 것도 맞다. 몸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지치고 피곤해도 계속 달리다 보면 그 순간 몸에 익어서 편할 때가 온다. 그러면 점점 빨라지는데 그 순간을 오래 가져가면 된다. 너무 일찍 포기하는 삶도 이젠 지쳤다. 

 

8월 25일 목요일 훈련. 관문 체육공원. 7시. 조깅 400미터 트랙 8회전, 100미터 질주 4개, 800미터 yaso 달리기 6 set.

여름 지나고 바람도 시원하고 싱글렛 입고 달리면서 너무 지쳐 보인다. 많이 헐떡거리고 힘들게 달린다. 억지로 리듬을 타려고 착착착 달려보지만 잠깐이다. 담배는 언제 끊으려고 하니? 모든 것엔 원인이 있는데 그게 잘못하면 핑계가 된다. 트럭으로 한 트럭 분량이 넘는 핑계하고 구분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핑계든 원인이든 문제의 근원으로 가 봐야 한다. 무엇 때문에 그런지 알고는 있어야 되는 거 아니니. 

 

무엇이든 우리 체질은 아니다. 새벽 배송도, 뜯어도 뜯어도 나오는 포장, 염지를 발라 건조한 생삼겹살, 꼬투리가 말라비틀어진 포도나 옥수수 같은 시간이 지난 흔적이 분명한 식물들, 24시간 이내 배송도, 우리의 기호는 아니지만 강요하는 것들에 우리는 결국 진다.

 

8월 27일 토요일 정모. 관문 운동장 왕복 12.33km, 1시간 10분, pace: 5:43초

그런대로 달릴만 했다. 훈련 계획에는 30km 거리주(시간에 상관없이 정해진 거리를 달리는 훈련, 시간주는 거리와 상관없이 정해진 시간 동안 달리는 훈련)인데 달릴 사람이 없어 관문 운동장을 왕복했다. 훈련 목표를 채우는 것은 중요한데 그것도 주위 상황이 제대로 받쳐주어야 제대로 실행할 수 있다.

 

8월 30일 

비가 하루종일 내리니 훈련은 없다. 8월 훈련이 끝났다. 조금씩 정상적인 페이스를 찾아간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리듬, 조화, 균형, 반복인데 리듬이 깨지니 나머지가 몽땅 어그러졌다. 겨우 리듬을 찾아가고 있다. 흔들리며 사는 게 인생이라서 크게 상관은 없다. 다시 일어나 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일을 반복하면 된다. 

 

 

무료 이미지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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