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다른 친구들은 모두 직장을 잡았다. 졸업도 하기 전에 컴퓨터 공학과를 졸업한 동기들은 증권사, 은행, 렌트 회사, 굵직한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때는 어린 남자아이라서 원서를 내고 연락도 없어도 마냥 즐거웠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위험하지만 졸업이 내일이라 위험한 일은 없었다. 원서를 낸 곳 중에 기억나는 회사는 일진 다이아몬드였다. 신문 공고를 보고 한참을 숙고하다가 지원했지만 연락은 없었다.
3월 말 LG정밀(그 앞 회사는 LG 전기이고, 지금은 LIG 넥스원으로 생각하지만 상관없다)에 지원을 했다. 한참 후에 면접을 보러 전날 서울로 올라온 남자는 한남동에 간호사 일을 하고 있던 누나네 집에서 자고 여의도 트윈타워 앞에 선다. 까마득한 쌍둥이 빌딩 아래에서 남자는 "적어도 이 두 개 중에 하나, 아니면 두 개 다 가질 거다." 하고 다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0일 후에 사무실을 구했고 일을 시작했다. 조급해서 서둘렀고 남자는 철없는 아이 같았다. 이곳은 남자가 처음 시작한 곳에서 불과 500미터 떨어진 곳이다. 남자가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한 호계동 LG 연구소였다. 매일 가장 늦게 퇴근하고, 매월 업무 시간이 가장 많았다. 여기서 두 번 자취방을 옮겼다. 자취와 하숙을 조합한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처음으로 직장에 다니는 남자를 보살펴 준 주인집 아줌마를 기억한다. 딸아이가 둘이었는데 중학생, 초등학생이었다. 주인집 아저씨는 야간 근무라 늘 아침에 돌아오셨다. 주말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안양 유원지와 수영장을 데리고 다녔다. 저녁에 퇴근하면 보답이라도 하듯 아이들에게 수학과 영어를 가르쳤다. 남자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던 아이들은 주말에 몇 시간이고 함께 책을 읽었다. 지금은 자취하던 곳이 아파트 단지가 되었고, 연구소 앞에 아주 넓은 부지에 있었던 LG 전선 공장은 국제 유통단지가 들어섰다. 남자는 다시 처음 남자의 집이었던 곳으로 돌아왔다.
언젠가 이곳에 있을 때 누군가 글을 쓴다며 디지털 파일로 옮기기 위해 연구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정문 경비실에 3.5인치 디스크를 들고 단정한 모습으로 방문했는데 마치 일감을 전해주고 가는 사람처럼 돌아갔다. 단지 서툴렀다고 밖에 이유를 대지 못하는 그때가 늘 마음속에 맴돌았다. 하지만 달리기가 언제나 시작한 곳으로 돌아오듯이 삶도 늘 시작한 곳으로 돌아간다.
"여긴 내 집이야." 이 말을 32년이 지나서야 한다.
이곳에 왕국과 제국을 건설하고 싶어 하는 남자는 이곳이 마음에 들더라도 그리 오래 이곳에서 머물지 않겠다고 말했다. 모든 결정과 선택은 자신이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특히 자신의 의지로 되는 것들은 말이다. 때로는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되지 못하는 것들도 있음을 안다. 그럴 때는 선택을 한다.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또 한 발을 떼든가, 아니면 이전 선택을 계속 지키든가를 선택한다. 남자는 더 달리겠다고 생각한다. 시작한 곳으로 돌아온 것이 결국 종착점인지 아니면 다시 출발한 곳에서 새롭게 달려 나가든 그것이 선택이다.
'고양이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호랑이가 되어 있었다.'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세상 모든 일은 낙숫물이 댓돌을 뚫듯이 일어난다(부드러운 물방울이 오랜 시간 떨어져 크고 단단한 바위도 뚫는다는 뜻). 이미 결과가 나올 일인데 하루, 한 달, 일 년이 더 걸리는 게 무슨 대수인가? 이 현상은 진실이다. 결코 벗어나는 예외를 본 적이 없다. 바로 그런 물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모양인 거다. 사고방식이 주옥같아 가난한 거다.
다시 처음이었던 스무 살 때의 그 욕망과 야망을 갖는다. 싱그럽고 발랄한 푸른 꿈을 다시 갖는다. 우리는 언제나 노력한 것만 갖는다. 남자에게 인정이나 칭찬은 없다. 남자가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가? 그건 바로 남자가 사냥한 고기를 여자와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바라볼 때이다. 오직 전투와 승리만 있는 때가 가장 행복할 때다. 더 고통스러운 전투, 더 어렵고 힘든 전쟁에서 승리해야만 더 큰 것을 얻게 될 테니, 그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더 오래 더 치열하게 싸운다. 남자는 매일 오늘의 전쟁에서 승리하길 기도한다. 승리는 그 대가를 기꺼이 치르는 자의 몫이다. 방법을 모르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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