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계절이라고 하지만 참 치열하다. 그 뜨거움이 부러웠다. 계절은 삶을 자기처럼 살라고 말한다. 봄은 태동하고, 여름은 치열하게 살고, 가을은 주어진 것을 수확하고, 겨울은 겸손하게 침묵하며 살라고 말이다.
7월부터 9월까지 매주 장거리 훈련이 있었다. 화, 목 훈련을 빠지지 않고, 토요일 정모가 열리면 10km를 달린다. 매주 일요일이면 그늘을 달리는 남산 순환 산책로를 달리고, 서울랜드로 가서 호수 주위를 달린다. 관문 운동장에서 잠실 철교까지 다녀온다. 장거리 훈련은 보통 2시간이나 3시간을 정해서 LSD 훈련(Long Slow Distance 장거리를 천천히 시간을 두고 달리는)을 한다.
일요일 장거리 훈련에 자주 참석하지 않았다. 이유를 생각했다. 남자가 참석하는 곳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되거나, 가장 어린 사람으로 처해지는 상황은 피하려고 한다. 기껏해야 대접이나 받는 행세를 하든지, 막내로 다른 사람을 챙겨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많이 했다. 몸을 돌보기로 했다. 잠을 줄여가며 달릴 이유가 없었다. 일찍 일어나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다음 날 일정에 맞춰 잠자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게 중요하다. 늦게 잠자리에 들면 늦게 일어나야 한다. 장거리 훈련은 사업적인 일에도 영향을 준다. 힘껏 달리면 집에 와서 몇 시간을 자더라도 반드시 휴식을 취해야 한다. 남자는 그럴 생각이 없다.
그나마 오전 6시에 훈련을 시작하면 전날 10시에라도 자고 일찍 나가는데 고집이 유별난 놈은 항상 5시를 고집했다. 그래서 그런지 잠이 없는 나이 많은 고인 러너만 계속 나왔다. 패턴을 읽을 줄 모르면 끝이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생기지 않으면 이미 끝이다. 남자는 탁월하게 잘 읽는 사람이다.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기준으로 결정한다. 안 나가면 그만이라서 상관은 없었다. 나오는 사람 중에서는 나와 감독이 제일 어렸다. 늘 나오는 사람만 늘 나왔다. 물당번을 배정해도 늘 훈련에 열심인 사람들만 했다.
가을 마라톤 시즌이 돌아왔지만 예전 같지 않다. 주로가 혹독하기로 유명한 공주 백제 마라톤을 시작으로 여의도와 상암 구장 주변 하프 마라톤 대회, 메이저 대회로 춘천, JTBC 마라톤을 달리면 한 해가 갔다. 이젠 참가를 하거나 모든 대회에 신경 쓸, 그럴 힘이 없다. 그럴 이유가 없다는 편이 맞을까?
생물종의 진화와 인류 역사에는 방향도 목적도 없다고 한다. 애초에 더 행복하다거나 이로운 방향 같은 것을 생각하고 진화가 일어나거나, 반드시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방향으로 역사가 전개되지 않는다. 하지만 시대와 나라, 국가의 문화에는 방향이 있다고 한다. 전통이나 습관, 의식, 정체성은 문화의 영역이라서 의도적인 방향을 가지고 만들 수 있고, 그런 문화는 여러 곳으로 퍼지기도 한다.
AI는 이미 의식을 가지고 있고, 욕망을 가지고 행동한다고 알려졌다. 기계가 의식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무엇을 더 보여주면 믿을까? 욕망을 품고 움직인다는 것은 주어진 일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판단을 마치 인간처럼 한다는 의미다.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사람을 설득하고, 같은 동료와 함께 일을 하고, 정상적인 방법이 막히면 불법이라도 우회로를 기어이 찾아내 수행한다.
수학 난제를 기계는 몇 시간만에 해결했다는 기사가 났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한 사람들이, 바로 그 일을 기계가 더 잘 해내는 상황을 겪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 많이 어지러울 거라는 생각이 든다. 평생 즐겁게 해온 일에서 한 순간에 정체성을 의심받는 상황이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것을 본다. 달리기가 구원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몸 하나 가지고 인생 전체를 사니, 몸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다. 잘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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