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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시작, 어쩌면 시작 되지 않았으면 좋을 이야기 [겨울-이사 기념 4부작 20081025~20170225]

지구빵집 2017. 2. 28.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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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시작, 어쩌면 시작되지 않았으면 좋을 이야기. [겨울-이사 기념 4부작 20081025~20170225]

 

그때는 지금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고 불렀다. 당시에 충북 청주시에서 속리산 방향, 그러니까 보은이나 미원, 공군사관학교(제주도, 진해, 동작구 신대방동을 거쳐 1985년 12월 21일 현재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쌍수리에 있다.) 방향으로 나가다 보면 청원군과 경계선에 영운동(永雲洞)과 용암동(龍岩洞)이 있었다. 지금은 청주시와 그 바깥을 둘러싼 청원군이 합쳐져 있다. 청주시와 청원군의 통합 과정은 20년 동안 진행된 힘든 과정이었다. 1994년 김영삼 정부에서 시작된 통합 노력이 2014년 7월 청주시란 이름으로 통합시의 출범이 이루어졌다. 대머리로 불렸던 길고 낮은 고개를 넘기 전 영운동에서 부모님은 쌀집을 하셨다. 가게 이름은 대영상회였다. 부모님은 무던히도 고생하시면서 5남매들을 모두 대학 공부를 마치게 해주셨다. 소년은 3녀 2남 중에서 장남이었는데 집에서는 조용하고 나와서는 다른 친구들을 잘 웃기고 말썽도 제법 피우는 그런 아이였다.

 

소년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친구인 영주는 영운동 동사무소 근처 이층집에 살았다. 당시 2층 건물이 드물었으니, 영주네 집에 놀러 갈 땐 기대감이 컸다. 복잡하고, 신기한 2층 건물에 친구가 있다는 것은 자체로 즐거움이었다. 영주 아버지는 철물점을 하였다. 무엇이나 다 있었다. 문고리, 못, 공구들, 모양이 다른 경첩 같은 셀 수 없는 종류의 철물이며, 비닐 끈, 노끈, 밧줄, 짚으로 만든 달걀 꾸러미, 고무신, 귀한 플라스틱들이 산더미처럼 가게 안을 메우고 있던 철물점이었다. 날씨는 추웠고 아침 일찍 늘 버릇처럼 영주네 집으로 갔다. 삼촌이 보관하고 있던 공기총을 보여주었다. 이거 말이야. 굉장한 거야. 새 잡으러 가자. 하면서 길을 나섰다. 키도 중학생 정도로 크고 덩치도 같은 학년에서 가장 컸던 영주는 공기총을 들고 나섰다. 지금은 꿈도 꿀 수 없는 모습이지만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다. 초등학생 둘이 공기총을 들고 다니며 동네에서 새 잡는 일이며, 추운 겨울밤에 후레쉬를 들고 논 한가운데 볏짚 쌓아 놓은 곳으로 가서 아주 작은 동그란 구멍에 손을 집어넣으면 잠자는 새들을 잡을 수 있었다. 소년은 겨울이면 주로 청주의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무심천에서 얼음 배를 타고 놀고, 토끼를 잡으러 다니거나, 둑에서 썰매를 타고 놀았다.

 

소년은 처음 보는 총도 대수롭지 않은 듯 얼씨구 하면서 따라나섰다. 공기총은 공기 혹은 가스를 압축시켰다가 해제되는 동력으로 발사되는 총기류를 말한다. 총 잡는 곳을 바닥에 대고 위에서 펌프질을 10분 정도 해서 공기압을 강하게 하고서 발사하는 총이다. 공기총 하면 흔히 사냥용으로 쓰이는 라이플을 떠올리기 쉽지만, 공기총은 라이플뿐만 아니라 권총이나 산탄총 같은 것들도 존재한다. 주택가를 돌아다니며 전신주나 전선에 앉아 있던 참새 몇 마리를 잡았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참새보다 큰 새들이 담장을 넘어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꽤 높은 담장이 둘러싸인 집이었다. 새들이 후드득 내려앉았다. 까치발을 하고 담장 너머를 보니 넓은 밭이 보이고, 짚단을 덮어둔 고랑들이 많았다. 그 위에 콩새들이 많이 않아 있었다. 콩새는 참새보다 덩치가 두 배 정도 크다. 콩새는 콩을 잘 먹어 콩새란 이름이 붙은 새이다. 콩새는 통통한 몸매를 가지고 있으며 먹이를 주워 먹기 위해 콩콩 뛰어다니는 모습이 귀엽다. 눈 위를 옮겨 다니며, 짚단 위에서 눈이 녹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하늘을 쳐다보는 것을 반복하더니, 다른 녀석이 나타나자 날개를 푸드덕거린다. 순식간에 시끌벅적한 놀이터로 변했다.

 

새들의 부리 모양을 보면 곡식을 먹는 새인지 벌레를 먹는 새인지를 알 수 있다. 두툼한 부리는 곡물을 먹는 새고, 부리가 길고 날카로운 새는 콩새는 곡식을 먹는 새에 해당한다. 식물의 씨앗들을 먹기 위해 부지런히 부리를 움직이는 모습은 누구도 따라 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섬세하다. 콩새는 소리나 자태가 아름답지 않은데도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다른 새와 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새장에 넣어 길렀다.

 

조금 전에 공기압을 충전시키려고 열심히 펌프질한 덕에 영주는 이미 사격자세를 갖추었다. 새들은 총구만 보면 후다닥 쏜살같이 도망간다. 우선 총구를 새들이 보이지 않게 조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주는 숨을 고정하고 담벼락에 난 작은 구멍 사이로 조준하다가 팡 하고 총을 쐈다. 영주는 총을 쏘고 나서 잡았다! 고 신나게 말했다. 담 너머에 총 맞은 콩새가 있었다. 소년은 이미 담장을 넘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총 쏘는 일보다 별로 어렵지도 않은 일이다. 펄쩍 뛰어 담에 손을 걸치고 하체를 옆으로 틀어 한쪽 발을 담장 위에 걸치고 나면 쉽게 담을 넘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 집이니 아무리 쉽게 담을 넘어도 가슴은 두근두근했다. 마당으로 연결된 주택의 뒷문을 응시하면서, 또 사방을 살펴보면서 넓은 밭으로 내려왔다. 밭고랑을 서너 개 넘어 참새보다 훨씬 큰 콩새를 잡아 들었는데 갑자기 밭과 연결된 뒷문이 열리면서 소녀가 나타났다.

 

가끔은 초등학교에 다니며 한 반을 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소녀의 오빠는 소년의 누이를 알고 있다. 소녀의 여동생은 소년의 여동생이나 막내인 남동생과 나이가 같을 것이다. 단아한 긴 머리, 하얀 블라우스 위로 분홍색 멜빵으로 연결된 분홍색 치마, 흰양말에 보라색 줄무늬 운동화가 깨끗하게 보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가 하는 짓을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소녀가 문을 살며시 닫고 뒤돌아서며 소년을 보았다. 이크 하면서 영주는 담장 위로 내 논 얼굴을 아래로 감추고 말았다. 번갈아 영주 쪽과 나를 번갈아 보던 소녀는 나를 빼꼼히 쳐다보았다.

 

"너희 뭐 하니?" 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마도 총 쏘는 소리를 들었나 보다.

 

"아니 그냥. 머 좀 주우러 왔어." 변명치고는 참 어색했다.

 

소녀는 죽은 게 분명한 콩새를 손에 들고 있는 소년을 보았다. 소년은 손바닥보다 커서 머리와 꽁지가 보이는 큰 새를 뒤로 감추었다.

 

"그거 새 아냐?" 소녀가 물었다.

 

"조금 전 까지 새였지" 소년은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면 지금은 죽어서 새가 아니란 소리인가.

 

"왜 우리 마당에서 새를 잡아? 나뻐!"

 

소녀는 할 말을 잊은 채 쳐다보다가 천천이 눈물을 떨구었다.

 

"너희들 이를거야." 소녀의 눈을 보았다. 분노가 치민 얼굴, 바닥에 떨어진 눈물. 눈물이 고인 채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망연자실하여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랐다. 아니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겨우 새 한마리 잡았다고. 그것도 소녀의 집 뒷마당에서. 더구나 서로 아는 사인데.

 

소녀는 "아빠! 얘들이..." 소리치며 집으로 들어갔다.

 

소년은 의기양양해서 콩새를 손에 들고 담장을 다시 넘어왔다.

 

소녀는 언뜻 소년의 삶에서 영원히 멀어져 간듯했다. 만나고 싶은 사람에 대한 서사를 품고 있고, 끊임없이 관찰하는 시간을 지나고, 서로의 위치 좌표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타이밍이 맞지 않거나 약간의 비틀림으로 크게 어긋나는 삶을 살 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살고 있는 과천 7단지의 겨울은 조용하다. 눈도 조용하게 오고, 사람들도 조용하게 움직이는 동네다. 산으로 둘러쌓여서 그런지 겨울이 길게 느껴진다. 겨울엔 가끔 모여서 통영에서 올라온 굴을 구워먹거나, 산불 대피소 안에서 삼겹살을 구워먹기도 하고, 주말농장 농사하면서 있던 일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봄에 멀리 힘차게 뛰라고 겨울이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봄이 오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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