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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마다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는 곳에서 모임에 들고 모임을 만들었다. [봄-이사 기념 4부작 20081025~20170225]

지구빵집 2017. 3. 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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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마다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는 곳에서 모임에 들고 모임을 만들었다. [봄-이사 기념 4부작 20081025~20170225]


과천시(果川市)는 대한민국 경기도 남쪽이면서 중부에 있는 시이다. 북쪽으로 관악산(632m)과 구룡산(306m), 우면산(293m)을 경계로 서울특별시 관악구, 서초구와 접하고, 청계산(618m)을 경계로 동쪽으로는 성남시, 남서쪽으로는 안양시, 남쪽으로는 의왕시와 접한다. 서울대공원, 동물원, 국립 현대 미술관 등의 문화시설이 있고, 정부과천청사가 위치한다. 특이하게도 과천시의 시외 지역 전화번호는 서울특별시와 같은 02다. 정부청사의 영향이다. 


과천시의 면적은 35.86㎢로 대한민국에서 구리시에 이어 두 번째로 면적이 좁고, 대한민국 국토 면적의 0.036%, 경기도 면적의 0.35%를 차지하고 있으며, 과천시 전체 면적의 85.4%인 30.64㎢가 개발제한구역인데 최근 개발 열풍으로 많이 줄고 있다. 조선시대 과천현일 때 인구가 743명(1452년) 이었다고 한다. 이곳으로 이사 온 해인 2008년에는 6만 823명이었고, 2017년 1월 현재 6만 2,929명이다. 경기도 인구순위에서 가평군과 연천군보다 약간 많은 인구가 이곳에 산다. 남녀 비율(남녀 구성비로 여자 100명당 남성 인구의 비율)은 0.95로 여자가 약간 많이 사는 곳이다. 


과천 사람들이 흔히 과촌이라고 부르거나 시내 나갈 때 읍내 간다는 표현이 그리 틀린 표현은 아니다. 인구가 작으니 시내도 작고, 번화가라는 데도 없고, 편의 시설이 많은 곳도 아니다. 드러나게 재미있는 곳은 아니지만 구석구석 잘 알기만 하면 소소하게 살아가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과천에 있는 지하철역 주변에는 유명한 장소 이름을 딴 역이 많이 있다. 대공원역, 경마공원역, 정부과천청사역이 있어서 이 역에서 잘못 내리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집 근처인 과천역 지하철 멘트는 "여기는 과천역입니다."라는 말로 시작되어 "대공원, 서울랜드, 국립현대미술관, 국립과천과학관으로 가실 분은 대공원역에서 내리시고 정부과천청사, 과천시청, 과천시민회관, 금융가는 정부과천청사역에서 내리시기 바랍니다."라는 멘트가 나온다. 


과천 아파트는 모두가 30년 전에 지은 주공아파트라서 그냥 번호와 단지만 붙여 부른다. 이런 명칭이 대기업 이름과 상표 아파트에 익숙한 다른 도시 사람들에겐 이상하게 보이는지 주소를 이야기할 땐 몇 번이나 다시 물어보는 수고를 한다. 과천 7단지와 8단지 사이에 있는 산책로를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면 과천 대공원 주차장과 코끼리 열차를 타고 대공원으로 가는 표를 파는 매표소 건물이 나온다. 10분을 더 걸어가면 동물원을 만나고 그 동물원 옆으로 현대 미술관 입구가 나온다. 완만한 언덕을 오르면 현대 미술관이 나오고 미술관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대공원 야영장이 나온다. 이사 오기 전에 신림동에 살 때는 가끔 오던 야영장을 정작 과천에 사는 동안에는 한 번이나 왔는지 모르겠다. 원래 집에서 가까운 산이나 관광지는 안가는게 인지상정인가 보다.


당고개에서 오이도까지 운행하는 지하철 4호선이 5층짜리 아파트인 730동 건물에서 15m 떨어진 산책로 길 지하 13.33m 깊이에서 다닌다. 과천역 3번출구나 2번 출구로 나오면 집은 금방이다. 햇살이 잔잔히 비추는 낮에 조용할 때나 자정이 되어 잠자리에 들때면 바닥에서 도르르르~ 바퀴가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주 약하면서도 건물 아래에서 올라와 집을 드르르 흔들고 몸 전체로 퍼져 나가는 진동을 느낄 수 있다. 지하철이 들어온 거다. 다른 계절보다 겨울은 차갑고 단단한 땅을 통과하니 소리가 크다. 사실 의식하지 않고 지낸다. 거의 들리지 않는 때가 훨씬 많다. 막차에 가까워질수록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들어오는 전철은 슬프게 큰 소리로 운다. 드르르르륵~ 집이 이곳이라 자러 들어오는 사람들은 내리고 더 가야 하는 사람은 내리지 않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더 가야 한다. 가장 중요하고 아픈 사연을 하나씩 안고 사람들은 전철에 몸을 맡기고 흘러간다. 드르르르륵~


이사온 이듬해 집 앞 20미터 거리에 학교 후문이 있는 관문초등학교 운영위원을 하였다. 서울대 도서관으로 아르바이트를 다녔으니 시간도 나고 아이도 전학을 와서 힘들었을 때였으니 잘한 결정이었다. 학교 운영위원은 1년 하고 그만두었다. 아무리 봐도 재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주말농장을 부지런히 하였다. 5평 남짓한 텃밭 비용은 해가 지날수록 6, 7, 8, 9, 10만 원으로 늘어났다. 그러다가 선바위역 근처 농장으로 옮겨 초등학교 아버지들하고 공짜로 농사를 지었다. 여러 단체에 가입하고, 정당 활동을 하고, 초등학교 좋은 아버지 모임(조아모)을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 훌쩍 커버린 아이로 인해 조아모의 OB(old boy)가 되었다. 여유가 있는 회사에 다닐 때는 목공을 배워 앉은상이나 바퀴가 달린 작업대를 만들었다. 순식간에 시간은 흐른다. 


봄이면 모두가 두 말없이 꽃이라고 생각한다. 온통 나무들로 둘러싸여 드문드문 아파트 건물이 보이는 이곳도 마찬가지다. 집 앞에는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현관 입구 바로 앞에는 구부정하게 자란앵두 나무가 있었다. 장미과인 앵두나무는 벚꽃과 같은 시기에 훨씬 이쁜 하얀 꽃을 피웠다. 빨간색의 진주만큼 작은 앵두가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라는 가사처럼 예쁘게 열렸다. 출근하면서 하나씩 따먹으며 지내다 보면 어느 날 누군가 몽땅 따간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든 생로병사는 개별적이어야 한다. 개별적 고통에 대한 공감이 없다면 어떤 아름다운 말도 위안이 되지 못한다." (김훈, 라면을 끓이며, p149, p176) 죽음 또한 개별적인 죽음이고, 사랑 또한 개별적인 사랑이다.  갑자기 다른 누군가의 삶에 끼인 사람은 무엇을 생각할까. 이제는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은 조금도 무뎌지지 않았다. 누군가를 기대거나 기대하거나, 기다리거나 기다리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잠깐 그렇게 생각했다. 있는 힘껏 버티면서 지탱해 가는 삶에 대해 책임을 질 나이가 되었다. 마음 한편엔 다시는 사람은 잃어도 사랑을 잃고 싶진 않았다. 사람이야 늘 물 흘러가듯 돌고 돌며 새롭게 다른 사람으로 오지만 사랑은 그렇게 오지 않는다. 마치 한 번 가버리면 다시 오지 않는 시간 같다. 처음엔 서툴고 모든 게 낯설고 너무 지나치게 열정적이라서 정말 모르니까 잃는다. 그렇다고 오래되었다고 쉽게 얻을 수 있는 사랑은 또 없다. 잦은 변화가 순서도 없이 유혹처럼 찾아온다. 


올봄엔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을 집 앞에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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