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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으로 늦여름에 집을 보고 가을에 이사 왔다. [가을 - 이사 기념 4부작 20081025~20170225]

지구빵집 2017. 2. 22.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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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으로 늦여름에 집을 보고 가을에 이사 왔다. [가을 - 이사 기념 4부작 20081025~20170225]


정확하게 2008년 10월 25일 부림동(富林洞)으로 이사 왔다. 부림(富林)이란 고려 성종 대에 과주군의 별칭으로 붙인 이름인데, 조선의 정조 임금이 이곳에 들렀을 때 과천 현의 관아에 손수 부림헌(富林軒) 이란 현판을 써 주기도 했다. 이사 오기 전에 살던 곳은 신림8동이었는데 나중에 조원동으로 바뀌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지 않은가. 약간은 지저분하고 복잡한 곳에서 서로 부대끼고 왁자지껄하고 시끄럽기도 한 그런 사람 살이들 말이다.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주위 가게 사장님들, 식당들, 자주 가던 슈퍼 주인과 친구분들과 어울리며 지냈던 곳이다. 아이와 나는 이사가기 싫다고 떼를 썼지만 허사였다.


관악구 남부순환로(신림동)에 있으면서도 '금천경찰서'로 부르던 경찰서 후문 바로 앞에서 컴퓨터 사업을 하였다. 말이 좋아 사업이지 아이를 키우면서 컴퓨터 판매도 하고, 출장 수리도 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면 한번은 거치는 일이지 아마. 돈 버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하다가 나중엔 유치원 버스를 태워 보내고 저녁에 데려왔다. 집사람 하는 일이 주간, 야간, 비번으로 근무가 이어지니 늘 시간에 꼭 맞춰 생활이 이어졌다. 주말이면 주로 시화방조제로 아이를 데리고 낚시도 다녔다. 아이랑 이때처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해 8월 말에 부림동 7단지로 집을 보러왔다. 초등학교 후문이 5층 아파트 입구에서 10m 떨어진 집이었다. 동네가 참 조용했다. 온통 나무들만 빽빽이 있었고 숲 사이사이에 5층 아파트 동들이 띄엄띄엄 있었다. 8월 중순인데도 매미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가까이에서 말해야 서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마 다음 해부터 여름이 되면 매미 울음소리를 처음 들었던 날과 매미 우는 소리가 그친 날을 적는 버릇이 생겼다. 어디서나 잘 적응하고, 적응했다 하면 제대로 조직화하는 일이 80년대 후반을 살아온 사람들이 잘하는 짓이다. 이사 온 다음 날 동호회 사람들과 바다낚시를 다녀왔다. 봄이 시작되면 사기막골에서 주말농장을 함께하고, 마을 신문을 만들어 배달하고, 과천 한량 모임에서 사람들과 어울렸다.


이사한 직후 3단지에 사시는 분의 소개로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정보관리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도서관의 주요 업무는 젊고 아름다운 사서 선생님들이 하시고, 내가 주로 한 일은 동영상 편집이었다. 촬영 선생님과 함께 초청강연이나 유명한 교수님 강의를 2시간에서 6시간 정도 촬영을 한다. 촬영한 60분짜리 6mm 테이프가 보통 4개에서 6개였고 2~3일 강연이 있는 경우는 강연자가 10여명에 이르고 테이프도 20개 정도 되었다. 테이프를 디지털로 변환 시키는 기계에 넣고 빠르게 재생을 하면 영상이 담겨 있는 부분까지 디지털 파일로 변환을 한다. 그리고 컴퓨터로 옮겨서 동영상 편집을 한다. 오프닝 영상과 배경음악을 넣고, 행사 제목과 강연자 소속과 이름, 강연 제목을 편집하여 넣는다. 그리고 강의를 들으며 중간중간 필요 없는 부분 -휴식시간, 강연자가 어버버 하는 시간, 등이 보이는 장면- 들을 지우고 화면이 부드럽게 넘어가도록 보이게 연결하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DRM(디지털 권리 관리)을 입혀서 서버에 올리고 마지막으로 DVD에 구워 차곡차곡 보관하는 일을 했다. 한 강의를 2~3번 듣는 일이었다.


재미있었다. 많은 강연을 보고 듣고 편집하고 서버에 올리고 저장하였다. 학기 말에는 논문을 분류하고, 초록을 카피하여 도서관 서지정보에 올리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는 작업을 도왔다. 약간 여유가 있는 날이면 도서관 책꽂이에서 아무 책이나 원하는 만큼 책을 뽑아다가 자리에 쌓아두고 읽었다.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한 달에 120만원 정도 나오는 아르바이트 급여가 적다는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도서관이나, 학교 연구실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1년 반 동안 정보관리실에서 일을 하고 나는 세상 속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자영업을 하던 시기를 보내고 다시 제품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사람들을 연구하는 일들을 하기 위해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부림동의 가을은 항상 아름답다. 매미 울음소리가 가을 초입까지 들렸고, 단풍이 지는 소리를 들었고, 집 앞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의 소리는 5층에서도 또렷하게 듣고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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