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속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었던 2017 춘천 마라톤 풀코스 완주.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만난 여자가 말했다. "달리기 같이 할래? 생각 있으면 동호회에 들어오고···."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와 함께 달리고 싶었다. 얼마후에 달리기 동호회에 가입했고, 주말 정기모임에 나가서 함께 달렸다. 그때가 겨울이 끝나가는 2월이었다.
인간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할 줄 아는 동물이다. 많은 스포츠 중에서 도구를 사용하는 운동이 인기가 있다. 공과 배트와 글러브를 사용하는 야구, 다양한 크기의 골프채를 사용하는 골프, 축구나 농구는 공을 사용한다. 달리기는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예외적인 운동임에도 작년말에 600만명이 넘는 인구가 달리기 취미를 가지고 있다. 발에 맞는 편한 운동화만 있으면 어디서든 달리기를 즐길 수 있다. 신이 준 최고의 선물은 마라톤이라고 한다. 삶에서 마라톤 완주만큼이나 최상의 절정경험을 주는 운동은 흔하지 않다.
우리나라 3대 메이저 마라톤 대회는 동아마라톤, 춘천마라톤, 중앙마라톤 대회다. 특히 조선일보 춘천 국제마라톤은 아름다운 가을을 수놓는 경관으로 마라톤너라면 누구나가 참고하고 싶은 대회다. 대도시를 벗어나 호반의 도시 춘천을 달린다는 점. 의암호를 에돌아가는 코스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러너들도 극찬하는 명품코스다. 춘천 의암호 주변을 달리고, 춘천댐을 돌아오는 코스는 그야말로 가을의전설로 불릴만큼 아름다운 주로다.
춘천마라톤 대회는 내가 올해 2월에 마라톤에 입문했으니 9개월만에 메이저 대회 풀코스를 도전하는 대회다. 5월에 서울 하프마라톤과 과천 마라톤에서 하프를 달렸다. 지난 3개월간 춘천 마라톤을 준비하며 많이 훈련했다. 직장인은 모든 훈련을 참가하기 힘들고, 과하게 뛰면 업무에 지장이 있으니 항상 적당한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주중에 10Km 를 두 번, 토요일 정기모임에서는 15km를 꾸준히 뛰었고 2주마다 23Km~32Km 장거리 연습을 했다.
오늘은 춘천마라톤 대회에 출전을 위해 춘천으로 간다. 6시에 회원 모두가 모여서 버스를 타고 간다. 아침 일찍 떡과 과일을 먹고 왔기에 동호회에서 나누어준 김밥과 물은 거의 먹지 않았다. 아침 기온이 11℃ 로 약간 쌀쌀한 날씨였다. 옷을 갈아입고 맡기고 준비운동을 마쳤다. 몸은 가벼웠다. 바람도 좋았고, 하늘도 맑았고, 보이는 모든 가을 풍경이 아름다웠다. 기록을 내기에 가장 좋은 날씨와 기온이었다.
오늘은 4시간 30분 완주가 목표였다. 욕심은 훌륭한 선배인 페이스 메이커를 따라 4시간 20분 까지도 달리고 싶었다. 첫 완주때 느낀 반성과 보완 할 점은 그대로 남아있다. 주로에서는 항상 긴장하고, 에너지의 소모를 생각하며, 거리에 따른 계획을 세워 달려야 한다. 나의 머리와 팔과 다리를 세세히 스다듬으며 말했다. '힘내라. 드디어 시작이야. 잘 할거지? 너희들을 믿는다. 나도 잘 할께. 해보자' 하고 말했다. 드디어 힘찬 함성으로 출발했다. 2만 4천명의 마라토너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전 출전 기록이 없으니 G조에 배정을 받았다. 가능한 한 천천히 달렸다. 페메를 해주는 동호회 선배님 옆에 바싹 붙어 달렸다. 관문 체육공원에서 훈련도 같이하는 선배였고 많은 지도를 해주신다. 5Km 기록이 31분 25초 였다. 매 키로를 6분 20초 정도로 달렸다. 10km 까지 구간 기록도 31분 11초, 15km 구간 31분 10초로 아주 잘 달리고 있었다. 고수인 페메를 해주는 선배는 힘들면 이야기 하라고 했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매 5Km 마다 있는 물을 페메가 가져다 주어 달리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는데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너무 감사했다. 20Km를 지나는 하프 기록이 2시간 12분 15초였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하프를 넘어서자 갑자기 화장실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어서 처리하고 싶었지만 장소도 마땅치 않았고, 뛰는데 열중하니 잠시 잊혀지기도 했다. 28km 지점의 화려하지 않지만 작고 소박한 춘천댐을 지났다. 이후로도 구간기록은 5Km를 31분 20초로 변함없이 잘 유지하고 있었다. 35km 지점까지 달리다가 더는 못참겠다는 생각과 함께 공주 마라톤의 악몽이 되살아 났다. 그때도 36Km 까지 잘 달리다가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니 다리에 힘이 빠져 조금도 뛸 수가 없었다. 걷고 뛰면서 완주는 했지만 기록은 5시간 9분이었다. 그래도 옆길로 빠져 가까운 곳에서 소변을 해결하고 다시 돌아와 힘껏 달리는데 아뿔사, 페메 선배님은 다른 동료들을 데리고 저만큼 가고 있었다. 힘을 내보지만 좀처럼 1Km 이상 멀어진 동료들을 잡을 수 없었다. 힘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후회도 해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힘으로 끝까지 달려야 한다.
다시 천천히 뛰면서 페이스를 다시 페이스를 찾기를 기다렸다.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39km 를 넘기면서 걷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버릇이 될까봐 또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니 그럴 수는 없었다. 저 앞에 페이스 메이커가 보이고 동료들이 뛰고 있었다. 속도를 높이면서 거의 따라 잡았다.
'내가 잡았어'라고 말했다. 여자는 '그래' 하며 짧게 대답했다. 순간 마음이 아픈걸까 하고 생각했다. 힘들었다. 숨이차고 걷고 싶었다. 그래도 동료가 옆에서 뛰고 있는데 걸을 수는 없었다. 말도 한 마디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숨이 차고, 심장은 이미 입으로 나와서 물고 뛰는 것 같았다. 멀리 출발점이 보인다. 그곳이 종착지다. 40km를 지나고 있었다. 일그러진 얼굴로 다리에는 힘이 풀려가고, 숨소리가 거칠다.
'하~ 이제 좀 걷고 싶어!'
'안돼. 버릇된다. 처음이라 힘든 거야. 걷지 마.' 정신이 아득하다. 보이는 풍경들은 뭉개져 희미했다.
'힘내, 이제 다 왔어. 얼굴에 인상 펴. 얼굴 찡그리지 말고 힘들어도 이젠 인상 쓰지 마.'
'되도록 웃어봐. 웃지 못하겠으면 미소라도 지어. 입꼬리를 올리고 온화한 표정을 지어봐.'
'숨소리가 너무 커, 크게 내지 마. 숨 가빠도 천천히 호흡해. 여기서 출발했을 때랑 똑같이 뛰어들어가.'
'발에 힘주고, 걸음걸이 사뿐사뿐 뛰어, 사람들 많이 보이지? 당당하게 들어가. 니가 승리한 사람이야.'
'그렇게 끝까지 뛰어가는 거야.'
'잘했어.'
심장에 평온이 찾아왔다. 두 눈에 또렷하게 공지천의 출발선과 수 많은 응원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조금은 풀어진 두 발이 아스팔트를 부드럽게 밀어내며 미끄러지듯 달리고 있었다. 마지막 전력 질주를 하여 드디어 피니시 라인을 지났다. 기록은 4시간 30분 1초 였다. 정말 멋졌다. 아주 만족스런 결과였다. 봄봄, 동백꽃 소설로 유명한 김유정 문학관 옆의 뒷풀이 장소에 모였다. 회원들이 축하해 주었다. 이제 진정한 마라토너가 된다고 생각하니 기뻤다. 모두에게 감사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축하하며 서울로 돌아왔다.
무릇 생명의 본질적인 목적은 생존과 유전자의 다음 세대로의 전달이라고 한다. 그래서 최초의 인류도 달렸고, 최후의 인류도 달릴 것이다. 누가 얼마나 오래 달릴 지 알 수 없다. 누가 괴물이 되어 얼마나 멀리 달릴 지 알 수 없다. 누가 우리의 앞을 보겠는가. 아주 오래가길 바랬던 가을과 보내기 아쉬운 시월이 간다. -見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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