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 바른 글

옷을 다릴 때면 이상하게 마음을 잡게 되고 몰입하게 되고 희망이 솟구친다.

지구빵집 2018. 1. 29.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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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사회 초년생일 때 생긴 버릇이다. 지금까지도 일하는 부서는 주로 연구 개발부서다. 바닥에 노란 선으로 책상의 위치며 길을 표시하지 않는다. 책상 위도 항상 정리하고 깨끗하게 유지하지 않는다. 실험실이나 작업실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어지러울 때가 아니면 잘 치우지도 않는다. 출퇴근 시간이 완전 자유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시간에 맞게 사무실에 나오거나 집으로 가지도 않는다. 조금은 느슨하게 다닌다. 하지만 바쁘기 시작하면 이게 장난이 아니게 된다. 2~3개월 야근은 기본이다. 근처 여관에서 자고 아침에 출근하고 하다 보면 납품일이 다가오고 그렇게 넘어가면 시간은 잘 간다.


처음으로 기업 연구소에 다닐 때 와이셔츠를 월, 화요일은 꼭 입고 갔다. 무슨 전장에 나서는 장수의 갑옷처럼 입었다. 남들은 다 그냥 작업복 같은 옷을 편하게 입고 왔다. 일주일을 시작하는 하루 이틀은 그렇게 입어야 마음이 잡히는 기분이 들었다. 세탁소에 와이셔츠를 맡기면 하루나 이틀 지나서 가져온다. 비용은 1,500원에서 2천 원 정도였다. 거의 맡긴 적이 없었다. 토요일에 손수 빨아서 일요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다렸다. 월요일 출근 전이라도 다렸다. 다리미질은 몰입이 잘되었다. 셔츠가 5개나 되어도 한 달 치를 금세 다렸다.


보통 다림질을 할 때 가장 좋은 것은 바닥이 탄탄한 군대 담요였다. 담요를 넓게 깔고 다리미는 온도를 한껏 올려서 섬유에 따라 손수건을 깔고 다리기도 하였다. 어릴 때 같이 지낸 누나들이 항상 교복을 다리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보고 다녔다. 하얀 교복이 너무나 희어서 연한 파란 빛이 나는 느낌이 들었는데 실제 연한 파란 빛으로 보이는 이유를 나중에 알았다. 교복을 다 빨고 깨끗이 헹구고 나면 파란 잉크 한 두 방울을 물에 떨어뜨리고 교복을 30분 정도 담가 둔다. 그러면 가장 밝고 연한 푸른빛이 나는 눈부신 하얀색이 된다.


오랜만에 셔츠를 다렸다. 마침 다 빨아서 마른 셔츠가 5장이나 되었다. 며칠 전에 사온 다림판을 설치하고 칙칙이로 물을 뿌리면서 다린다. 제일 먼저 카라를 안쪽에서 다린다. 안에서 다리고 접어서 한 번 더 다린다. 손목으로 간다. 손목은 바깥쪽에서 다리는 게 이쁘다. 단추가 눌어 붙을지도 모르니 조심해서 다리고 안쪽에서 한 번 더 펴준다. 이제 팔을 다린다. 팔을 죽 펴고 선을 잡는다. 적당한 위치에 선이 있어야 한다. 다린 지 오래되어서 선이 없더라도 아래 재봉선을 맞추고 위로 반듯이 펴면 위쪽에 선이 만들어진다. 팔목까지 선이 만들어지면 접히는 선까지 한 번에 다린다. 양 팔을 반듯하게 다리면 이제 앞판과 등판을 다려준다. 등에 선이 없으면 안쪽에서 다려도 되는데 나의 경우에는 단추가 없는 쪽은 겉을 다리고 단추가 있는 면은 안쪽을 다린다. 등판은 주름이 있건 없건 바깥쪽에서 다린다. 5개의 셔츠를 30분 만에 다리고 약간 걸어둔다. 습기도 빠지고 모양도 갖추라고 단추를 3개씩 채워둔다. 


무슨 일이든 시작할 때가 가장 좋다. 잘 모르는 일일수록 호기심과 약간의 흥분이 두려움을 넘어선다. 지금까지 해 왔지만 새롭게 하는 일이라고 억지로 생각한다. 모든 일은 반복이다. 우리의 삶은 시간이 가면 갈 수록 해왔던 일들의 반복이 대부분이다. 매년 일어나는 일들 모두는 죽을 때까지 매년 똑같이 일어난다. 가끔 한 번씩 생기는 일도 반드시 반복된다. 마치 무한 패턴의 반복이 우리의 삶이다. 그러한 반복적인 일들을 조금 더 발전된 모습으로 해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일지도 모른다.


집사람이 셔츠 선에 베일까 봐 옷걸이를 조심스럽게 잡고 옷장으로 옮긴다. 

"다림판만 큰 거 줘봐. 지구라도 반듯하게 다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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