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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에 좋지 않은 날은 없다. 떠나는 일은 날씨와는 상관 없는 일이다.

지구빵집 2018. 2. 1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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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에 좋지 않은 날은 없다. 떠나는 일은 날씨와는 상관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오늘 날씨는 떠나기가 싫을 정도로 좋은 공기와 구름과 하늘을 가진 날이다.

 

오랜만에 시내에서 여자와 여자의 3배 무게가 나가는 형님을 만났다. 만나기 전에 과천 창업 상권활성화 센터 입주 계약을 했다. 계약이래 봤자 몇 개월 머무는 동안 깨끗이 사용하고, 불법적인 일은 하지 말라는 문서에 서명하는 정도다. 점심 시간이 되어 오피스텔 지하 순남시레기에서 세 명이 만나기로 했다. 저번에 마을공동체 공모 설명회를 마치고 여럿이 한번 와 본 곳이다. 반찬이 깔끔하고 대표 메뉴인 3代 시레기국이 맜있다. 더군다나 묵, 떡볶이, 잡채는 원하는 만큼 가져다 먹어도 되는 반찬이 있다는게 장점이다. 식당은 손님들이 바글바글했다. 구석에 자리가 났다. 여자는 아직 오지 않았다. 도마수육정식 3인분, 오징어 제육볶음을 시켰다. 반주를 시킬까 말까 고민했다. 낮술도 곧 잘 하지만 오후에 일정이 많았다.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시간은 다 가버린다. 유자탱탱 막걸리 큰걸로 한 병 시켰다. 바리바리 짐을 들고 여자가 왔다. 오랜만이었다.

 

"웬일이야, 셔츠를 입고 나오게. 오늘 휴가라며? 머하느라 그렇게 조용히 지내?" 짐을 놓으며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묻는다. 오랜만에 봐도 남자들은 잘 하지 않는 질문이다.  

 

"응, 머 좀 도모할 게 좀 많은지 모르겠어. 오전에 바이어 좀 만나느라고." 바이어를 만난다는 말은 얼마나 고상한 말이냐. 어디서든 어떤 일에 가져다 붙여도 있어보이는 말이다. 팔 물건이 있든 없든 문제가 안된다.    

 

여자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시시콜콜 이야기를 잘 한다. 엇그제 다녀온 강릉 이야기며, 딸 성형이야기를 해준다. 이혼한 여자의 친구 이야기를 듣더니 형님이 말한다.

 

"수민씨도 매물로 나오면 남자들이 줄을 설텐데..." 우스갯 소리를 곧 잘 한다. 별로 웃기지는 않지만.

 

"매물? 사람에게 자산이니 하는 물건으로 빗대는 말들이 거북하다고 하는 인간이 매물이라니, 왜 그러는데?"

 

"아니, 난 그저 적당한 비유를 들었을 뿐인데." 그것도 해명이랍시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게 값진 거여. 왜 자기에게 없고 멀리 떨어져 있는 대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몰라." 사람들은 주변에 있는 것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멀리서 온 강사를 더 높게 평가한다. 주변에 아무리 유능하고 실력있는 사람이 있어도 늘 멀리서 원정 온 강사를 더 높게 평가한다. 

 

수육이 나오고 시레기국이 나온다. 유자탱탱 막걸리가 나왔다. 비쥬얼이 좋다. 맛만 보기로 하다가 다 비운다. 술은 밥처럼 매일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신기한 일도 아니다. 음식이니 당연한 거다. 막걸이에 유자를 큼직하게 갈아 넣어 달달한 맛이 나는 막걸리를 마신다. 형님이랑 다녀서 좋은 점은 항상 맜있는 음식을 먹게 된다는 점이다. 나같이 저렴한 입맛을 가진 사람에게 신기하고, 놀랍고, 환상적인 맛을 안겨주는 사람이다. 서울 시내를 가든, 시골 행사에 가든, 동네에서 가끔 만나 술 한잔 하든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귀찮아서 커피는 그냥 주변 커피 솝 아무데나 가려고 했다. 그냥 지나치지 않는 두 인간은 선바위역 소토보체로 가자고 한다. sotto voce 커피하우스 주소는 경기도 과천시 뒷골로 75. 소토보체sotto voce는 이탈리아어로 “낮은 소리로”라는 뜻이다. 서양 고전 음악에서 악상 기호로 쓰이기도 한다. 악보에서 이 표시가 있는 부분은 조용하고 은은하게 연주되면서 오히려 특별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시대에 살고있다. 중요한 말은 꼭 큰 목소리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작은 소리가 뜻깊은 말일 때가 많다.

 

가게 이름에 알맞게 소토보체의 2층은 대화가 없는 공간으로 운영된다. 프리랜서나 글빚에 허덕이는 작가나 번역가 분들이 카페 같으면서도 조용한 분위기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2층에서는 조용해야 한다. 1층도 마찬가지다. 

 

커피와 초코렛과 쿠키를 앞에 두고 음악을 듣는다. 여자가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한다. 

"이 음악 알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한다. 큰 눈이 더 커져서 얼굴에는 눈만 있는듯 보인다.

 

"모르겠어. 내가 이래뵈도 안 들어 본 음악, 안 본 책이 훨씬 많거든."

 

"비탈리의 샤콘느야. 역사를 통틀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지. 담담하게 시작해서 절규와 흐느낌이 흐르고. 그러다가 격렬한 감적이 극에 달해. 그리고 다시 주제로 돌아와. 사람들이 느끼는 모든 감정이 음악속에 들어있다고 해. 나중에 들어 봐. 좋은 스피커로 소리를 크게 해서···." 속삭이듯 말한다. 

 

"가장 슬픈 음악이니 슬프고 외로울 때 들으면 위안이 될거야. 사라장의 연주도 좋아. 잊지 말고 꼭 들어." 음악 하나 듣는데 먼 부탁을 하냐. 에버노트를 열고 적었다. "비탈리 샤콘느 사라짱" 형님은 업무일 떄문인지 전화기로 전화를 하느라 왔다 갔다 한다. 이제 우리도 여길 떠나야 할 시간이다. -見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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