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 바른 글

만물은 그저 일시적인 순간에 존재할 뿐이다.

지구빵집 2018. 11. 26. 00:26
반응형

만물은 그저 일시적인 순간에 존재할 뿐이다.


우리가 젊었던 시절에는 딱 그날까지만 살자고 말했다. 어울리는 녀석에게 자주 말했다. 이성 친구는 생기지 않았으니까. 더 나이가 들어야 자기와 다른 성(性)을 가진 여자 사람이 생기게 된다. 젊었을 때는 누구나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다. 속엔 불이 넘치게 타오르는 나이였다. 하루하루가 일 일 차라서 끝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지내는 나이였다. 늘 모든 게 아름다운 나이였다. 나이가 든다는 것도, 서서히 말라간다는 일도, 언젠가는 삶이 저녁노을처럼 저문다는 사실도 모르던 때였다.


장엄하고 역사적으로 삶이라는 강을 건넜다. '건넜다'라는 표현은 죽기 전에 쓸 수 없는 말이라 '건너고 있다'라고 쓰겠다. 누구나 건너야 하는 강은 객관적이다. 하루의 일상이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밥벌이를 위해 하는 일은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다. 이젠 정말 지쳤고, 건너기가 힘들고, 역시 나이가 들었다. 다시 젊을 때로 돌아가 다시 살래?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한 번, 단 한 번, 오로지 한 번만 산다는 마녀의 주문 같은 준엄하고도 통쾌한 사실은 우리에게 묘한 안도감을 준다. 모든 삶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고, 마주하지 않을 거라는 선언을 사람은 기쁘게 받아들이고 산다. 신기한 일이다. 억울해하지도 않는다. 다행이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굉장한 자신감이 밀려온다. 


두 번 다시 내가 살아가지 않는다 이거지? 같은 삶은 없단 거지? 좋았어! 


단 한 번도 같은 날은 없었고, 같은 기분인 적도 없었다. 18,980일을 살아오면서 똑같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날씨가 틀리고 계절이 틀리고 모든 햇살과 바람이 같지 않은데 어찌 우리의 삶이 지나가는 한순간이라도 같을 수가 있을까. 우리 삶은 하루하루가 일 일 차다. 우리가 마음먹고 시도하는 모든 일이 일 일 차다. 사귄 지 일일, 시작한 지 일일, #0445 해시태그로 기상 시간이 새벽 4시 45분에 일어나는 일도 일일, 담배를 끊는 일도 일일, 어떤 일을 시작하는 것도 일 일이지만 늘 하던 일을 끝내는 날도 일일이다. 갑자기 그런 일일을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늘 일일 차여야 한다. 그게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사는 모든 날은 그날이 무슨 날이든 일일 차의 시작이든지, 끝내는 일일  차든지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칼국수 수제빗집에 갔다. 메뉴는 3개다. 칼국수, 수제비, 섞어서 이렇게 세 가지다. 말은 만들면 된다. 우아하게 만들었다. 섞어서를 두 그릇 시킨다. 주문받는 사장님의 비상한 기억력에 감탄한다. 멸치 냄새만 강해서 바닷물 같은 국물이 시원하다. 잠깐 보고 들어갈 모양으로 나온 사람은 커피 마시러 이동해야 하는 일이 내키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한 번은 가보기로 했던 곳이니 천정이 높은 카페로 간다. 언제 가보나 하며 기다린 곳이다. 큰 성(城) 같은 건물에 있는 Katttle & Bee 디저트 카페로 갔다. 한 건물 전체가 카페가 아니라 독일 키친 인테리어 회사인 Siematic 회사가 옆에 있었다. 천정이 높다고 다 좋지는 않다. 큰 유리 너머로 양재천이 보이고 넓은 공간은 마음에 들었지만, 어수선하고 소란한 분위기다. 가운데 놓여있는 피아노 뒤에 앉았다. 


글을 쓰는 데 목차를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가져온 글을 쓰는 일을 자기가 맡아서 일하듯 집중하고 또 몰입한다. 이야기 좀 하자고 해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도 여자는 내가 쓰기로 한 논문을 가로채서 자기 글처럼 제목을 고치고 쓰고 수정하고 벗어날 줄 모른다. 틀을 잡아주고, 목차를 만들어 주고 한참을 정리하다가 나에게 넘겨준다. 이 사람이 집중력이나 일에 대한 집착은 참 놀라울 정도다. 그게 자기 일이든 남의 일이든 그건 상관이 없었다.


겨울을 맞았다. 눈사람을 만들고, 눈을 뭉쳐 손바닥에 가만히 놓는다. 눈이 천천히 녹아 물이 되는 모습은 기적이다. 겨우 눈뭉치라니···. 이 작고 사소한 눈뭉치가 온몸의 감각을 깨운다. 피부와 혈관을 따라 전해지는 생생한 느낌은 아주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바꿔 놓는다. 하얀 눈뭉치가 보이지 않는 물로 변하듯, 삶도 늘 변한다는 것을, 그래서 너무나 아름답다. 만물은 그저 일시적인 순간에 존재할 뿐이라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 우리는 이상한 세계에 들어가 낯선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매 순간 살아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見河-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