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 바른 글

버리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 부러울 때가 있다.

지구빵집 2018. 12. 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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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버리지 못한다. 무엇이든 안고 간다. 지나온 길이 앞으로 걸어갈 길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무엇이든 기억하려 애쓰고,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을 쌓아놓는다. 만들다가 실패한 PCB, 오래된 전자부품, 성탄절 트리 장식품이나 전등, 아이가 쓰던 노트, 차곡차곡 쌓인 사진들, 10년이 넘은 업무수첩들, 아무때나 쓴 기록 등 제대로 버리는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까운 건지, 아니면 잊기 싫어서, 잊으면 안 되는 일들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다. 버리지 않는 습관이 자신을 옭아맨다는 사실을 모른다. 언제나 알게 될까.  

남자는 엄마를 닮았다. 언젠가는 필요할 날이 오겠거니 싶어서 쌓아놓는 습관을 그대로 닮았다. 엄마는 모든 물건이 아깝다고 했다. 그런 남자는 늘 어머니 집에 가면 잔소리다. 머하러 이렇게 쌓아 놓냐고, 잠 잘 방도 없다고, 좁아 죽겠다고, 제발 버리시라고 자기에게 하는 소리를 엄마에게 쏘아부친다. 한번은 그가 인내하고 사는 게 엄마들의 삶이 아니냐고 말 한 적이 있다. 그 사람도 늘 인내하고 살고 있고, 엄마도 늘 인내하며 살아오신 분이니까 말이다. 엄마는 서운한 맘이 들어 아무 말씀도 없이 바닥만 쳐다본다. 그게 더 화가 나서 남자는 발로 농을 한번 차고, 문을 세계 열어 일부러 뒤에 쌓아놓은 짐하고 부디치게 하면서 나간다. 엄마가 네가 사는 집이 아니니 상관하지 말라고 항변이라도 하면 금방 수그러들 남자는 억지로 딴청을 핀다. 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잘 잊고 사는 사람들은 참 편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다. 

버리고 살아야 다시 주워온 것을 쌓을 수 있다. 잊고 살아야 새로운 기억들이 들어갈 자리가 생긴다. 남자는 이제 사진도 그만 찍어야 겠다고 마음먹는다. 생각해 보니 하나도 쓸 데가 없었다. 버려질 것들로 가득 채워 다른 것들이 들어설 공간이 없으니 늘 익숙한 것들에 의지하는지도 모른다. 버리는 습관을 갖기로 했다. 남자는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다 내다 버리기로 결심한다.-見河-

버리지 못한 것들은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너를 누르는 짐이 돼.

그게 오늘은 옷이었지만 내일은 사람일 수도 있고 또 어떤 날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네 과거일 수도 있어.

버리는 습관을 지닌 사람이 돼. 

그래야 어떤 짐이 되는 사람이나 기억을 만났을 때에도 덜 아프고 더 쉽게 떨쳐버릴 수 있는 거야.

그리고 잘 털어내야 또다시 잘 시작할 수 있고.

-인생 DIY 드라마 은주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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