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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의 사계(四季) - 봄을 줄여서 다시 옮겨본다. 그리고 글쓰기

지구빵집 2019. 1. 2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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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내가 사는 세상의 한계를 규정한다.-비트겐슈타인


글쓰기는 '질보다 양'이 선행되어야 한다. 100장 짜리 글은 10장으로 쉽게 압축할 수 있지만 10장 짜리 글을 100장으로 늘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매일 허접하게라도 쓰고, 쓰고, 또 써라. 누구나 빈 종이 앞에서는 절망한다. 반드시 시작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야기의 어느 곳에서나 시작할 수 있다. 빈 종이위에 쓰는 게 아니라, 네 생각을 떨어뜨리라는 것이다. 


둘은 하나이고, 하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예비책', '대안'을 반드시 마련하라는 이야기다. 계획이 두 개 있는 사람은 하나를 잃으면 하나가 남지만, 하나밖에 없는 사람은 망한다. 글이 그렇다. 길어야 줄이고 다른 글에 들어갈 수 있다. "있지 않은데 필요로 하는 것보다는, 있는데 필요로 하지 않는 편이 낫다."-프란츠 카프카  

 

마라톤의 사계-봄편의 글을 약간 줄여 올려본다. 글이 기니 줄이는 부분도 어렵다. 사실 4번째 문단은 마라톤으로 섹스의 과정을 써보고 싶어서 묘사한 것인데 모르겠다. 조금은 덜 자극적이고 섹스 생각은 잘 안나기도 한다. 더 다듬든가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마라톤과 섹스는 맨몸으로 하는 매우 유사한 과정인데 좋은 표현은 떠오르지 않는다. 어쨌든 여름으로 넘어간다.


마라톤의 사계(四季) - 봄

마라톤의 사계(四季) - 겨울


마라톤의 사계(四季) - 봄 : 줄여서 편집 본


영화 말아톤(2005년)은 자폐아 윤초원(조승우분, 실제 인물 배형진)이 2004년 춘천 마라톤에서 서브3(3시간 이내 풀코스 완주)를 달성한다는 줄거리로 양재천에서 촬영한 영화로 알려졌다. 말아톤을 다시 영화화한 일본 드라마 마라톤(マラソン, 2007년) 두 영화의 마지막 경주에 나오는 명대사를 보면, 한국 영화 초원이는 "초원이 다리는?" "백만 불짜리 다리" "몸매는?" "끝내줘요", 일본 드라마 주인공 쇼타로는 "折れない心は?(꺾이지 않는 마음은?)" "負けない気持ち(지지 않는 마음)" "迷ったときは?(망설일 때는?)" "前を向け(앞을 향해)"다.


봄은 계절이 시작하는지라 모든 길은 눈부시게 찬란하다. 맨살에 스치는 따스한 바람과 맑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은 보는 것마저 아까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주로(走路)가 주는 풍경에 눈이 부셔 달리다가 길을 잃기도 한다. 3월 중순이 지나면 부드럽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바람을 안고 달린다. 봄꽃 잎이 바람에 날리는 풍경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행복감을 내가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봄이 시작되면서 나무는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주로에는 어딜 가나 나무 꽃이 웅장하게 피어있다. 올괴불나무, 생강나무, 매실나무, 산수유나무, 모과나무, 개나리, 사과나무, 참조팝나무, 두릅나무, 동백나무, 벚나무, 홍매실나무(홍매화), 진달래, 명자나무, 대자철쭉, 조팝나무 등 수많은 꽃이 둑길 양옆에 지천으로 피어있다. 달리는 거리가 멀든 짧든, 빠르게 달리거나 느리게 달리거나 누구나 보고 즐길 수 있는 풍경이다. 꽃길을 달린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봄이 오면 약간은 쌀쌀한 날씨에 큰 대회인 동아 국제마라톤 대회가 가장 먼저 열린다. 매년 4만 명이 참가하고 광화문광장에서 잠실올림픽 주 경기장까지 달리는 대회다. 대회는 대회인지라 광장은 러너의 열기로 가득 차있다. '난닝구'에 짧은 반바지를 입은 아저씨와 날렵한 몸매가 드러나는 러닝 탱크탑과 타이즈팬츠를 입은 젊은 남녀로 혼잡하다. 러너라면 일상에서 자신을 위해 꾸준히 단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대회는 빠른 완주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지속해서 달려온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다. 특별한 행사라든가, 기록단축이나 더 먼 거리가 대회에 참가하는 목적은 아니다. 마라톤은 완주와 상관없이 아름다운 운동이다. 자기의 마음과 육체에 대해 온전히 알 수 있는 운동이다. 세상이 꽃으로 화사하게 피어나는 눈부신 4월에 광화문 광장에서 출발해 도심 한복판을 달려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를 지나 다시 양화대교를 건너서 상암 월드컵공원까지 달리는 서울하프마라톤 대회가 있다. 대한민국의 심장인 서울의 도심을 마음껏 누비며 아름다운 한강을 따라 달리는 하프마라톤 최고의 축제다. 약간 덥기는 해도 넓은 도로를 마음껏 달리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마라토너는 잔뜩 상기된 얼굴이다. 폭죽이 터지고 함성이 난무하는 광장을 출발한다. 분위기에 쓸려 성급하게 질주하다가는 페이스를 잃고 절정에 이르지 못한 채 터벅터벅 걷게 되는 자신을 보는 일은 끔찍한 일이다. 마라톤은 척추가 위아래로 계속 움직이는 운동이기 때문에 갑자기 움직임을 바꾼다든가 급하게 속도를 올리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충분한 스트레칭이 필요하고 유연한 허리, 부드러운 근육과 구석구석 상세히 그려진 코스 지도가 필요하다. 처음에 가능한 한 천천히 달려 굳은 관절을 풀어주고 밀착되는 피부가 닿는 기분이 좋도록 육체를 따뜻하게 한다. 구석구석 탐색한 몸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어디가 자극되는지, 어떤 상태가 가장 편한 상태인지, 어디 불편한 곳이 없는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손바닥에 땀에 젖어 매끄러운 느낌이 와도 함부로 속도를 내서는 안 된다. 부드럽게 공기를 감싸 안아, 조금씩 도로를 스치면서 나는 듯이 달린다. 절반을 넘어서면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머리카락은 이미 헝클어져 바람에 날리고, 뒷머리를 올려 꽉 묶은 포니테일은 아래로 계속 움직인다. 노출된 피부가 붉은빛을 띠고 조금씩 숨이 차오른다. 호흡을 조절하지 않으면 거친 숨소리로 주위 러너의 시선을 받게 된다. 이때 자신을 추스르기 시작한다. 아직은 아니라고, 조금 더 버티자고 담금질을 해야 한다. 한창 달릴 때는 자주 자세를 바꿔야 한다. 허리와 다리의 움직임은 일정하게 유지하고, 자주 팔을 머리 위로 올려 횡격막의 움직임을 원활하게 해준다. 어깨도 풀어주고, 정말 급하다면 잠시 멈춰 스트레칭을 해서라도 여유를 찾고 다시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온몸이 땀에 젖고, 사타구니와 겨드랑이가 바세린과 땀이 섞여 미끈거린다. 도대체 얼마나 남은 건지 알 수 없다. 숨소리가 커지고, 점점 빠르게 움직이면서 자세가 과격해진다. 악악 비명도 지르고, 거친 욕설도 하면서 부지런히 척추를 위아래로 움직인다. 아직도 힘이 남아 있다면 상당히 많은 러너를 추월해 달리는 맛을 볼 수 있다. 정상까지 많이 가까워졌음을 몸이 알고 있다. 기진맥진하기 일보 직전이다. 중간마다 급수대에서 마시던 달콤한 물도 이젠 나오지 않는다. 걷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는 바로 그 지점에서 마지막 결승선이 보인다. '좀 더 힘내서 달려! 다 왔어요!' 하는 응원 소리가 들린다. '미친놈! 이렇게 좋은 날 걷지 않고 뛰다니!' 하는 말이 속에서 올라온다. 마지막 힘을 낸다. 상체를 번쩍 세우고, 팔을 뒤로 힘껏 쳐주며 허리를 바싹 앞으로 당겨 몸이 밀려서 나가듯 달린다. 양손을 허공으로 쭉 뻗어 올리고, 집게손가락을 세워 '왔구나!' 소리 지른다. 모두를 한꺼번에 남김없이 쏟아내며 푹 꺼지듯 통쾌하게 골인한다. 최선을 다해 정상에 도달했지만, 꽃다발이나 끊고 들어갈 결승테이프도 없다. 시간을 재는 운동화의 칩과 교감하는 측정기에서 삑삑 하는 소리를 듣고 골인한다. '하, 이제 더는 달리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뿐이다. 모든 과정을 즐기고, 걷지 않고, 완주가 목표인 전부를 이루어 냈다는 생각으로 날아갈 듯 기쁜 마음이 든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는 무작정 달리는 러닝 장면이 나온다. 검프는 3년 2개월하고 14일 16시간을 달리기만 한다. 사랑하는 연인 제니가 떠나고 그녀가 사준 운동화를 신고 불현듯 달리기 시작한 것처럼 멈춘 이유도 특별한 건 없다. 검프는 너무 많이 달려서 그냥 피곤해서 집에 가야겠다고 말한다. 달리는 내내 엄마와 죽음과 제니를 생각한다. 사실 달리는 이유는 생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다. 생각을 버리기 위해서다. 잊기 위해서다. 증발하도록 야외에 나가고, 날려버리기 위해서 몰입하는 게 달리기다. 사람이 몰입하는 이유가 그게 아닌가? 삶의 피곤함, 육체가 매여 일하는 환경이 주는 짜증, 삶의 온갖 찌꺼기를 날려버리기 위해서 치고, 맞고, 때리고, 응원하고, 엉키고, 달리는 게 아닐까?


장거리를 달리는 일은 해본 사람만 아는 원초적 자극이 있다. 장거리를 달리면 우리 몸 어딘가에 남아있는 확실히 엉킨 찌꺼기가 말끔히 청소되고 새롭고 단순한 창의성으로 가득 차는 느낌이 든다. 달리는 동안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쌓인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낮은 자존감이다. 우리가 삶을 대할 때 진실하지 못하게 만드는 감정을 달리기는 언제나 말끔하게 지워준다. 달리기는 너무 단순하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고 진실하다.-見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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