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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생각 바른 글

엄마에게 프리지아를 선물했다. 엄마가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었다.


엄마에게 노란 프리지아 꽃을 선물했더니 냄새를 못 맡으신다. 그새 잊고 있었다. 삶이 언제까지 엇갈리는지 지켜볼 뿐이다.

  남자는 애들 줄 용돈도 찾고, 저녁 먹은 지 좀 되었으니 남동생 조카가 좋아하는 곱창볶음도 살 겸 아내와 함께 나간다. 밤 9시 정도 된 시간이다. 돈을 찾고 곱창집을 찾기 위해 걷다가 꽃 가게를 보았다. 남자는 엄마에게 가능한 한 항상 꽃을 사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생신이든, 아니든 언제든 생각이 들기만 하면 말이다. 제법 꽃 집이 큰 편이다. 녹색 잎이 우거진 나무가 반을 차지하고, 유리 온실을 만들어 장미와 리지아, 수선화같은 생화를 보관하고 있었다. 몇 가지 꽃을 아름답게 포장해서 환한 진열장에 전시중이라 더 아름답게 보인다. 

  새빨간 색. 붉은색, 노란색 장미는 보기에도 예쁘다. 색깔이 환하고 향기가 좋은 노란색 후리지아를 산다. 노란 장미의 꽃말은 질투, 배신, 사랑의 감소다. 예전에 아무것도 모르고 노란 장미 한 다발을 여자에게 선물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우연이 만들어 내는 유머는 얼마나 허망하고 어이가 없던지 아직도 노란색 꽃만 보면 기억이 난다. 행복한 감정이나 불쾌한 감정하고는 상관이 없다. 프리지아(freesia)의 꽃말은 순결과 우정이다. 집까지 걷는 거리는 15분 남짓해서 찬바람에 꽃이 얼까 몰라 비닐봉지에 싸달라고 부탁한다. 남자는 더 돌아다니다 기어이 곱창집을 찾아 3인분 포장을 하고 집으로 간다. 

  조카 두 놈과 아들, 그리고 남동생 내외와 엄마가 기다린다. 아버지는 몸이 불편하신 지 방으로 들어가셨다. 봉투를 벗기고 어머니에게 꽃을 선물하니 너무 좋아하신다. 샛노란 빛에서 연노란 빛이 모두 들어 있는 리지아와 하얀 안개꽃이 잘 어울린다. 아직 활짝 피지 않은 리지아 꽃망울을 보면 꼭 엄마 뱃속에 잇는 아기같이 말려있다. 가슴에 붙인 두 손을 꼭 쥐고 고개를 숙이고 상체를 말아서 그저 생존에만 집중하는 어린 아기랑 닮았다. 꽃이 피어서 말려있는 꽃이 고개를 번쩍 들고 서면 그때는 어린 여자아이같이 변한다. 아기에서 여자아이로 금방 변하듯이 여린 노란 꽃잎도 강한 노란 빛을 띨 것이다. 시골 마을에서 아이였을 때 떠난 여자애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다시 돌아온 그럴 때를 생각나게 한다.

"노란색이 참 예쁘구나. 고맙다." 엄마가 말했다. 가족들은 꽃이 정말 너무나 예쁘다고 한다.

"엄마, 리지아가 향기가 좋아요. 조금만 지나면 방안에 향기가 가득할 걸요. 맡아보셔요." 남자가 말했다. 

"엄마는 냄새를 못 맡는다." 엄마가 말했다. 

  남자는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다. 이미 알고 있는데 자주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남자가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엄마는 연탄을 가셨다. 나무를 때던 구들장 바닥을 개조해 아궁이 안으로 연탄이 두 장씩 들어가는 연탄집을 레일을 따라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구조다. 긴 쇠 꼬챙이로 연탄집 아래 부분을 더듬어 구멍을 찾아 끼우고 잡아다니면 연탄집이 나온다. 낮이고 밤이고 시간 맞춰 일어나 연탄을 갈고 다시 죽 밀어 넣는다. 이런 아궁이가 무려 3개나 되는 집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닐 때 아버지가 더 이상 배달을 못하시게 되자 가게를 접었다. 그때부터 연탄을 가시지 않았다. 쌀 가게를 그만두고 청주 고속버스 터미널 근처인 가경동으로 이사 가실 때까지 청주 영운동에서 어머니는 연탄을 가시며 살아오신 분이다. 덕분에 어머니는 냄새를 못 맡으신다. 아마도 장기간 연탄을 가느라 일산화탄소에 냄새를 맡는 후각 기관이 장기간 손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냄새를 못 맡으신지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남자는 늘 잊고 산다. 도대체 삶이 언제까지 엇갈리는 지 지켜볼 뿐이다.

  우리가 상실한 감각, 그러니까 있었다가 없어진 감각은 보통 해당 부분의 기관들의 손상이 크다. 기관들에서 고장난 감각수용체들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수용감각체는 크게 외부와 내부로 나눌 수 있고 외부수용체는 시각, 청각, 미각, 후각, 피부감각을 말하고, 내부수용체는 근, 건, 경동맥소체, 내장감각으로 나눈다. 당연히 수용체 세포들이 감각기관의 기능을 수행한다. 나이가 듦에 따라 당연히 감각수용체도 노화로 그 기능을 상실한다. 어쩌면 우리의 감정이란 것도 나이가 들면서 감각수용기처럼 무뎌진다는 사실은 노화되어 간다는 말과 같다. 왼만한 자극이나 충격에 요지부동 반응 없는 우리 감정수용기와 같은 마음이 정확히 감각수용체의 노화와 같아 보인다.

  꽃병에 물을 받아 화려하게 장식된 포장을 전부 벗겨내고 꼽아둔다. 방안이 노란 빛으로 화사해 진다. 아이들과 어른들만 리지아 향이 퍼지는 것을 알아본다. 엄마는 고맙다는 말만 연신 되풀이 하신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꽃을 사다드릴 지 나도, 엄마도 알 수 없는 시절이 오고 있다. 좀 더 자주 엄마에게 꽃을 사 드릴 수 있길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見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