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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생각 바른 글

일산 청아공원. 늘 말하고, 표현하고, 고백하고, 자백하고, 실토할 것

우리가 늘 말하고, 표현하고, 고백하고, 자백하고, 실토해야 할 이유.

2003년 4월에 돌아가신 장모님, 그때 나이가 59세, 민서는 3살, 해마다 돌아오는 가장 좋은 계절에 기일(忌日)을 맞이하여 어머님 계신 일산 청아공원에 민서와 아내의 남매들과 다녀왔다. 과천은 이미 꽃이 졌는데 여기는 북쪽이라고 꽃들은 군데 군데 아직도 활짝 피어있다. 어제 저녁에 비가 약간 내렸다. 여자는 날이 궂다는 불평인지, 어머님이 많이 그리운지 말이 많아진다. 어머님이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을 때 여자는 민서를 임신중이었다. 병원입구 앞에서 퇴근시간 지나가는 인파에 아랑곳하지 않고 철철 우는 여자를 그냥 안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얻으면 다른 무언가를 잃게 된다. 그런데 얻은 걸 잃는 순간이 금방 오는 것은 차라리 얻지 않았으면 좋겠다. 얻어서 좋은 기분이 웬 만큼 길게 가야 좋은데, 얻었다고 생각하자마자 잃어버리면, 마치 줬다 금방 뺐는 것처럼 고통이나 상실감은 오히려 크기 때문이다. 

"항상 엄마 돌아가신 날에 비가 오네. 항상 그랬어. 돌아가신 날도 비왔고."

"기억나? 당신? 변산반도 갔다가 청주로 왔는데, 새벽 3시에 술 먹고 뻗은 당신과 세 살짜리 민서를 조그만 차에 던져 넣고 청주에서 집까지 올라온 거 말야." 여자가 말했다.

"우리가 집을 비우고 멀리 떠나기만 하면 꼭 무슨 일이 생기드라. 이상하게도. 우리 완도 갔을 때 할머니 돌아가신것도 그렇고. 할아버지도 아마 우리가 청주 있을 때 돌아가셨지?" 여자가 말했다.

"잘 해드린것도 없고, 여기 김서방도 불효만 저지른 사람인데 엄마한테 미안해." 여자가 말했다.

"불효? 불효라니? 나 그런 적 없어. 당신과 몇 번 싸운일이라면 우리나라 모든 부부들이 불효하는 거겠네?" 남자가 말했다.

 어머님의 투병이 시작되었고, 어쩌다 보니 바로 옆집에 살게 되었다. 창문을 열고 어머님하고 부르거나, 민서야 하고 부르면 얼굴을 내다보고 인사를 할 정도로 옆건물 같은 층인 가까운 거리였다.

 한 2년 정도를 투병하신 어머님이 이렇게 한창 좋은 날에 돌아가셨다. 서로가 적은 아니었지만 집사람과도 서먹서먹하게 지내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따뜻한 방이 갑자기 싸늘한 추위로 냉기가 느껴지는 공간으로 변했을 때 우리는 아쉬움을 떠나 외롭게 추락하는 한마리 새가 된다. 

 청아공원 지하 1층 K1-02에 안치된 어머님을 뵙고 나왔다. 요즈음은 관혼상제를 치르는 행사에서도 SNS로 알리거나 게좌번호를 보내주거나, 각종 전자지갑으로 주고 받는 경우가 많다. 여기는 전화번호 010-7688-9911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 바로 아래 전광판에 뜨게 되어 있다. 사랑한다고 말했다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정말 보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보고 싶다고 말하기 전에,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기 전에, 어머니 우리 지금 늦게 와서 죄송하다고 말하기 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다. 엄청 미안하지도 않았고 슬픈 마음도 들지 않았고 그냥 무덤덤 반은 참고 반은 이겨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문자를 보내고 전광판에 `어머니 저희왔어요. 사랑합니다. 보고싶어요.` 하고 문자가 뜰 때는 정말 고개를 떨구었다.

 지금부터 1년 후 거대한 혜성이 지구와 부딪혀 지구 인구의 2/3가 죽는다고 해도 내일 우리의 일엔 변화가 없을 것이다. 학교도, 직장도 모두 그대로 돌아간다. 변화가 있다면 안 될 것이다. 세금도 꼭 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세상이 좋다. 급하게 사랑해서도 안되고, 무엇인가 그 안에 이루려고 해서도 안된다. 이루어 지지도 않는다. 모든 게 그렇다. 왜 말을 하고 왜 표현 해야 하냐면, 표현하는 일은 우리의 감정과 우리의 정서를 고양시킨다. 말하는 순간 눈물이 눈물이 흐르고, 피어나는 순간 가슴에서 사랑이 새록새록 돋아나온다. 우리는 전화기를 들어야 한다. 우리는 당장 글을 써야 한다. 우리는 당장 말을 해야 한다. 우리는 당장 이모티콘을 보내고 당장 카톡으로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보고 있다고 관심 있다고, 말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왜 우리가 써야 하고, 고백해야 하고, 싫다고 말해야 하고, 쓰고 적고 해야 하는지 알았다. 그래야 우리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한다고 상대방이 아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 지금 부족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見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