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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의 귀환, 주로(走路)로 다시 돌아온 그의 얼굴이 밝아 보인다.

지구빵집 2019. 4. 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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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의 귀환, 주로(走路)로 다시 돌아온 그의 얼굴이 밝아 보인다.

 

그가 두 달 동안 햄스트링 근육 부상으로 뛰지 못했다. 꼬박꼬박 정모에 나와서 걷고 기다리고 개인적인 훈련을 하는 게 전부였다. 고기를 물 밖에 내놓으면 결국은 죽는다. 다른 동료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기분은 많이 좋지 않았다. 그가 저번 주에 잠깐 달리더니 오늘은 완전히 주로로 돌아왔다. 그의 얼굴이 얼마나 밝은지 온통 눈이 부셔 쳐다볼 수 없다. 가는 곳마다 탁한 공기와 먼지 낀 어슴푸레함을 몰아낼 지경이다. 아무래도 그의 귀환을 축하할 수밖에 없다. 역시 그는 인내하는 데 탁월하다. 참고 이겨내는 데 전혀 힘을 들이지 않는다. 엄마처럼 강하고, 물처럼 흐르고, 파도처럼 움직인다. 마라톤 전사의 도움을 받아 이제 막 부상에서 회복 달리기로 진입하고 있다. 남자는 3년 전에 마라톤에 입문한 사람이 아니라, 오늘 막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처럼 행동한다. 한 번도 1km 이상 달려보지 못한 사람처럼 조심조심 발걸음을 뗀다. 마라톤 코스인 하프나 풀코스를 꿈꾸는 사람처럼 팔과 허리와 다리 자세를 잡고 달린다. 남자는 이제 막 오랜 부상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사람일 뿐이다.

 공기는 깨끗하고 풀냄새가 가득하다. 연한 녹색의 파도가 달리는 내내 주로에 일렁인다. 오히려 가득 꽃 핀 거리를 달리는 것보다 기분이 좋다. 연녹색의 나무들은 손을 대면 그대로 녹아버릴 듯 여리고 여리다. 갑자기 무언지 모를 억울함과 서러움 같은 것들이 눈 녹듯 사라진다. 잘 견뎌 온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영동 1교 아래 골인 지점 100미터를 앞두고 힘차게 다리를 들고 가속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긴 시간 잘 참아온 나에게 고마왔다. 늘 애처롭게 살피느라 눈을 마주치며 걱정하고 돌아서던 동료들의 관심에 감사했다. 얼마나 자주 속으로 사소하게 예의상 한다고 무시한 내가 바보 같았다. 함께 달리는 동료는 진정으로 걱정해주고, 늘 빠른 회복을 바라는 사람이었다. 마음엔 없더라도 예의상 하는 일, 형식적으로 구색을 맞추기 위해 하는 일, 영혼 없이 말하는 일도 세상엔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완벽한 사물이나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나도 완벽한 회복은 없다. 일어난 일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될 수 없다. 일어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더 겸손하고 더 낮추고 돌아보아야 할 일이 남았다. 오히려 좋은 상태가 더 좋아지고 기록이 좋아지고 더 빨리 계속 달렸다면 틀림없이 좋지 않게 되는 일이 또 있었을 것이다. 세상은 한 치의 우연이나 필연도 없이 착착 돌아간다.

'세상에나. 그런 게 없었던 거구나. 완벽하다는 말은 기분 좋으라는 말이구나.' 남자는 중얼거렸다.

마라톤 전사는 나에게 모든 자세가 망가졌다고 했다. 왼쪽 아픈 발을 계속 끌어서 혼이 나고, 어깨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고, 다리는 벌어지고, 히프는 뒤로 처지는 자세가 되었다. 그동안 체중은 또 많이 붙었다. 

'아니 조금 안뛰었다고 왜 그래? 달리는 모습이 안좋아. 체중 불어난 건 어떻게 할거야?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어. 자세고 몸이고 착지하는 것도 그렇고 전부 망가졌네. 당장 몸매 관리부터 해야겠어. 무릎 벌어지는 거 봐라.' 전사가 말했다. 

전사의 보살핌과 충고는 늘 나에게 힘이 되었지만, 마음이 주눅 드는 일은 참기 힘들었다. 남자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발등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왼손으로 왼쪽 허벅지 뒤를 주무른다. 남자는 '처음부터 다시'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그렇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었다. 아주 느린 속도로 2, 3, 5, 10 킬로미터로 천천히 늘려나간다. 시간을 줄일 생각은 당분간 하지 않는다.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좋으니 거리를 조금씩 늘려나가고 자세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무릎은 벌리지 말고, 발의 착지는 발 전체로 한다. 발 뒤꿈치를 조금도 끌지 않는다. 한쪽 발을 올리고 한 걸음 내디뎌 바닥에 착지하면 바로 다른 발을 또 들어 올린다. 이렇게 해야 한다.

남자는 그가 내심 신경 쓰지 않는 게 좋았다. 가끔 상태나 물어보고 좋아진다는 이야길 듣고 침묵하거나, 그의 일에 열중하는 게 편했다. 무엇보다 마음을 쓰거나 불편한 일이 없어 좋았다. 시간이 지날 만큼 지나고, 계절은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었다. 햇살이 더욱 강해지고 더위가 찾아올 것이다. 회복을 마치면 남자는 바람처럼 달리게 된다. 당분간은 함께 달릴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빨리 달리게 되면, 의도적으로 늦게 달리는 일은 힘든 일이다. 한 동안 같이 달리고 나면, 남자는 또 점점 빨라지는 자신을 생각하게 되고 앞으로는 같이 뛰지 못할 것이다.-見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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