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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문] 우리는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나라를 원한다 - 김훈 작가

지구빵집 2019. 6. 1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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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문] 우리는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나라를 원한다 - 김훈 작가

 

우리는 산업안전보건법의 하위법령을 노동현장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방향으로 바꾸어줄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의 요구는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서 정부에 전달되었으나, 정부는 이 하위법령의 제정과 시행을 원안대로 강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쾌적한 작업환경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급여나 휴가일수를 늘려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요구는 일하다가 죽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해마다 2천 4백여 명(!)의 노동자들이 노동의 현장에서 일하다가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추락, 폭발, 매몰, 붕괴, 압착, 중독, 질식……으로 노동자들의 몸이 으깨지고 간과 뇌가 땅위에 흩어지고 있습니다. 정부의 통계 밖에서 잊혀지는 죽음도 수없이 많습니다. 기업주는 이 무수한 죽음에 대해서 소액의 벌금을 내는 것으로 책임을 모면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원안대로 이 시행령이 제정되면 내년에, 그리고 그 다음해에 매년 2천 4백여 명의 노동자가 노동현장에서 죽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보다 더 시급하고 절박한 문제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날마다 노동자들이 죽어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날마다! 사람 목숨이!

 

위험한 일을 영세한 외주업체에 하도급해서 책임을 전가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기업의 행위는 경영의 합리화가 아닙니다. 기업은 이 무수한 죽음 위에서만 기업가 정신이 발휘되고 투자의욕이 살아나는 것입니까. 노동자들이 죽지 않게 안전을 강화하고 책임을 감수하는 일은 기업가 정신이 아닙니까. 이 무수한 죽음을 방치해놓아야만 기업활동의 자유가 보장되고 한국 기업은 생산성을 높일 수가 있는 것입니까.

 

정부와 국회는 이 무수한 죽음에 대해서 어찌 이처럼 아둔한 것입니까.

 

이 참혹한 사태는 기업경영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과 야만의 문제입니다. 2천 4백여 명 노동자들이 해마다 죽어야 하는 이 사태는 땀 흘려서 경제를 건설하고 피 흘려서 민주주의를 쟁취한 국민의 뜻을 배반하고 역사의 발전을 역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국민이 원하는 나라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자 하는 나라는 이런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야만적인 약육강식에 반대하고, 이 야만을 법제화하는 시행령에 반대합니다. 산안법의 하위법령을 제정함에 있어서 정부는 죽음에 죽음을 잇대어가는 이 노동현장의 비극을 깊이 성찰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사태는 기업경영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하다가 죽지 않는 나라,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문제입니다.

 

2019년 6월 18일  생명안전 시민넷

* 글쓴이 김 훈

 

산재 및 재난 참사 피해가족 공동기자회견, 청와대 의견서 전달 (2019.06.14), 김 훈 작가

 

 

건설현장 추락사 청년 고 김태규 님 누나, 고 김용균 님 어머니, LG유플러스 고객센터 전주 고교현장실습생 고 홍수연 님 아버지(좌측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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