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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끝

지구빵집 2020. 3. 2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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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겨울이 가면 꽃이 핀다.

 

  어느덧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일찍 내복을 벗은 사람이나 성급하게 봄 옷으로 멋을 낸 사람은 추위를 탈만한 날씨가 이어진다. 비가 몇 번 내리더니 밤과 아침엔 춥고, 낮에는 햇살이 너무 따뜻해 봄이 오고 있음을 실감 나게 느낀다. 겨울옷을 그대로 입기도 어색하고, 가벼운 옷으로 바꿔 입기도 애매모호한 날이 남자의 마음처럼 지나간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 한동안 계속되다가 어느새 해일처럼 꽃이 피어난다. 꽃망울이 나무마다 붕붕 솟고, 연한 녹색의 새싹이 올라오는 계절이다. 이때는 꽃샘추위가 와도 이미 터질 준비를 마친 꽃과 나무에게 큰 피해는 주지 못한다. 기세(氣勢, 남이 두려워할 만큼 세차게 뻗치는 힘)란 놀라운 것이어서 여간해서는 통제할 수 없는 힘이다.

 

  계절이 변하면서 남자가 쓰는 문장의 색깔이 변한다. 냄새도 달라졌다. 남자는 더 이상 세상에 대해 남자의 문장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문장의 주인은 남자가 아니라 문장 속에 있는 주어와 술어라는 것을 절실하게 알았다. 나무는 나무고, 바람은 바람이고, 구름은 구름이었다. 각자의 역할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물론 남자도 마찬가지다.  '알맞은 목적'이란 삶이나 자연에게 없다고 생각했다. 꼭 가져야 할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일부러 떨쳐버리려고 하지 않아도 되는 목적이었다. 말은 바람에 쉽게 날아간다. 사람의 이성이나 언어는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는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압도적인 현실이라는 게 꼭 죽음이나 이별 같은 큰일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상황은 변하게 마련이다. 계절이 바뀌면 또 무언가 변한다고 생각했다. 

 

 

  이번 겨울에는 정말 눈이 자주 오지 않았다. 섭섭했다. 그래도 추울 만큼 추웠다. 찬바람은 옷깃을 여미도록 세찼다. 무엇보다 남자가 좋아하는 좋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일이 드물었다. 서로를 바라보고 관심 갖는 일을 내려놓느라 남자는 일에 집중하며 혹독한 겨울을 보냈다. 간혹 상실감이나 허전한 감정을 참아내는 일은 어려웠지만 딱히 다른 방법은 없었다. 이유도 모른 채 가던 길을 멈추고 지켜보는 일이 전부였다. 꾸준히 달리면서 매일매일 복근 운동으로 체력을 키우듯 억지로라도 마음을 정리하고 비우는 일에 집중했다. 괜히 마음 가는 대로 했다가는 다시 무너지거나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갈까 겁이 났다. 때로는 소용돌이치는 강렬한 분노와 욕망으로 가득 찬 에너지가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세상은 늘 아름답다. 한 계절을 보낼 때마다 그의 입에서 가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깨달음을 얻은 건지는 모르지만 여자는 많이 지쳐 보였다. 그에 대해 많이 아는 일은 이상하게도 남자에게 힘든 일이라서 남자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몸 어느 한 곳이 아픈 곳이 있는데 빨리 낳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큰 고통인가. 마음 한구석이 늘 저릿한 채 오랜 시간을 버티는 일도 힘든 일이다. 존엄하게 살아야 존엄하게 죽을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야 존엄하게 사는지도 모르고 있다. 사는 일은 그냥 사는 일이다. 

 

  나이 든 사람에게 죽음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젊은 사람과 달리 나이 든 사람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죽음이나 병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나이 든 사람은 죽음을 삶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이벤트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죽음에 대해 덜 두려워한다. 죽음에 관해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죽음에 관해 긍정적인 태도와 마음의 준비가 항상 되어있다. 우리에게 아직 겨울이 오지 않았다. 우리 나이는 늦여름이라고 생각했다. 가을이 곧 오겠지만.

 

"난 있지, 지금 죽어도 아무 상관없다는 생각을 해. 더 이상 삶에 애착이나 안타까운 것도 없어. 내가 건방진 건가?" 여자가 말했다.

 

"건방을 떨어요. 떨어." 남자가 말했다.

 

"이놈아, 나 한 번도 게으르게 산 적 없어,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어. 늘 내 능력보다 더 많이 일했어. 남은 게 별로 없어. 억울하기도 하지만 난 잘 받아들여." 여자가 말했다.

 

"왜 그러는 건데?" 남자가 말했다.

 

"응, 좀 지쳤어. 내 삶이 아니라 다른 여자의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난 대담하지도 못했고, 과감하게 살지도 못했어." 여자가 말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으로."

 

"더 이상 내려놓을 것도 없는 거니?" 남자가 말했다.

 

"가진 것도 없었어. 날이 너무 좋은 데, 오늘 좀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안 그러니?" 여자가 말했다.

 

"난 아냐, 가끔은 억지로 내가 다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아." 남자가 말했다. "많다고."

 

"욕심도 없던 얘가 갑자기 왜 그래?" 여자가 말했다.

 

"욕심이 생긴 거니?"

 

"죽음도 삶의 일부야, 그리고 우리는 죽을 때까지는 살아 있는 거고. 난 갖고 싶은 것을 가지고 오래 살고 싶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고 나서 혼자 쓸쓸히 죽는다 해도 그러고 싶어." 남자가 말했다. "지금은 그래."

 

"언제쯤 나도 너처럼 여한 없는 삶을 살게 될까?" 남자가 말했다.

 

"내가 너무 주제넘게 말하는 것처럼 들리니? 내가 죽고 나서도 양재천 변에 목련꽃, 벚꽃이 분수처럼 피겠지? 연한 녹색부터 진한 초록의 향연이 펼쳐지고 말이야. 난 조금도 분하지 않아." 여자가 말했다.

 

"재능이 넘치고 아름답고 아주 제멋대로인 너에겐 분한 일이지만. 후후" 여자가 말했다.

 

"왜 이래? 마땅히 우리가 누릴 게 아니라서 조금도 분하지는 않아. 내가 분하다는 의미는 갖고 싶었지만 갖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게 아쉬워서 하는 소리라고!" 남자가 말했다.

 

"그게 뭐야?" 여자가 말했다. "갖고 싶은 게?" 

 

  그는 죽을 의욕이 가득한 것처럼 분명하게 말하고, 놀 때는 몸이 가진 모든 기운을 쏟아 내 노는 사람이다. 보통 죽음을 앞에 둔 시한부 인생을 사는 환자나 나이가 많아 죽는 사람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여자의 에너지가 보여주는 모습은 살아가야 할 남은 삶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여자를 지치게 하는지 모르지만 아직은 죽음을 입에 담기엔 너무 이른 나이라고 생각했다. 정신적인 면에서나, 건강에 있어서도 자꾸만 약해지는 여자를 보는 일은 즐겁지 않다. 모두 내려놓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아니면 여자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걱정은 조금 들지만 내가 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고, 변할 것도 없었다. 

 

  이렇게 보름 정도만 더 지나면 벚꽃을 볼 수 있을까? 혹시라도 벚꽃이 피어 보게 되면, 보고 즐기는 일이 중요하지 가능성이나 앞날에 대해 질문하는 일은 좀 바보 같아 보였다. 우리가 죽은 후에도 양재천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늦여름에는 자주 가던 카페 앞 배롱나무에 꽃이 한가득 핀다는 생각을 하면 분하지 않을까? 우리는 자주 죽음을 이야기하더라도 죽기에는 너무나 젊다. 그의 몸은 여전히 날씬하고 아름답다. 아직 충분히 흥분해도 되는 나이였다. 남자는 지독히 저급했다. -見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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