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서재

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구빵집 2020. 10. 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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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이란 단어는 흔히 볼 수 있다은 이유로 평범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니면 그렇게 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넘치게 풍족한 것도 아닌 적당한 상태와 사람이나 사물이 가진 성질까지 의미한다. 비범하거나 특별하지 않은 것은 모두가 보통으로 치부된다. 그러니 위로한답시고 보통이 가장 어렵다느니,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행복한 삶이라느니 하는 얼토당토않은 말은 하지 말자. 오히려 보통이 가장 쉽다.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자면 보통의 아름다움이나, 보통에 속하는 삶이 아름답다는 정도로 해야 한다.

 

보통의 존재가 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불필요한 장식이나 화려한 치장과 같은 덧붙임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자체로 있어도 부족하지 않은 것을 보통이라고 생각한다. 보통을 일반적인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보통이라는 말은 불필요한 수식을 거두어버린다.

 

'알랭 드 보통'의 이름에 보통이 들어간다. 작년에 읽다 말은 책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The Course of Love)' 책을 다시 찾아 읽고 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을 재미있게 읽었다. 일은 필연적으로 기쁘기도 하고 슬픈 속성을 가지고 있다. 초라하기도 하고 위대하기도 하다. 굶지 않기 위한 밥벌이로 기능하는 일이기도 하고, 자아실현의 거창한 의지를 대변하기도 한다.

 

"알랭 드 보통이야 평소에 함께 다니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을 한데 묶어 놓고, 서로 낯선 것들이 만나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효과를 살피며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사람 아닌가."-옮긴이 정영목

 

보통의 문장은 새처럼 책 전체를 날아다닌다. 잘 날아다니는 문장을 잡는 방법은 단숨에 읽어야 한다. 틈을 주거나 멀리 날아갈 공간을 주지 않고 한정된 공간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전체 문장을 잡아야 문장이 날아가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수많은 일에 쫓기며 사는 우리는 그러기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이상하게 독서하는 속도가 느렸다. 한참을 읽어나가다가 되돌아가기 일쑤였고, 긴 하나의 문단을 몇 번씩 읽고 지나가야 했고, 밥을 먹고 나서 읽어보면 저자의 의도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모든 문장에 스민 잘난 체하지 않으면서 묘하게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버릇없는 글쓰기는 오히려 눈에 거슬리지 않고 자주 웃음을 준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갑자기 '일의 기쁨과 슬픔'(저자 장류진, 출판사 창비, 발행일 2019년 10월 25일) 생각에 화가 난다. 제목을 동일하게 쓴 게 화나고, 상상력이 낮은 거는 용서할 수 있지만 출판사도 동조한 것에 할 말이 없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월트 휘트먼의 시 '직업의 노래'로 시작한다.

 

집짓기, 치수 재기, 톱으로 판자 썰기,
대장간 망치질, 유리 불기, 못 만들기, 통 만들기, 양철 지분 만들기, 지붕널 덮기,
배 만들기, 부두 건설하기, 생선 절이기, 보도에 포석 깔기,
펌프, 말뚝 박는 기계, 기중기, 석탄 가마, 벽돌 가마,
탄광과 저 아래 있는 그 모든 것, 어둠 속 램프,
메아리, 노래, 그리고 깊은 생각들…….

- 월트 휘트먼, <직업의 노래> 중에서 

 

책에 나오는 모든 직업에 보통이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탐구하고 대화하며 체험한 일에 대한 구체적이고 즐거운 여행을 설명한다. 그가 자동차를 몰고 여러 지역을 지나가고, 기차를 타고, 걷고, 만나는 모습은 마치 읽는 내가 직접 경험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일이나 일터는 감정을 배제한 영역이다. 일이나 일터를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상처를 입든지 주는 사람이고, 쉽게 말해서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가 일에 대해 이야기는 하는 주제는 10가지로 화물선 관찰하기, 물류, 비스킷 공장, 직업 상담, 로켓 과학, 그림, 송전 공학, 회계, 창업자 정신, 항공 산업이다. 사진이 제법 많은 데 모두 멋진 작품이다. 

 

재미있는 표현들이 많지만 책을 반납하느라 정리한다. 사랑의 3부작(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중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다. 글을 가볍게 쓴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구름 같지만 종착점은 분명하다. 흥미로운 글쓰기를 배운듯한 기분이 든다.

 

***

 

'모멘트'라고 이름 붙인 비스켓이 사각형이 아니라 원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의 모든 문화에서 원과 여성성과 전체성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쾌적한 탐닉의 인상을 전달하기 위해 작은 건포도 조각과 초콜릿칩이 들어가는 것도 필수였다. p.80

 

이 얼마나 독특한 문명인가? 엄청나게 부유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작고 또 아주 작은 의미밖에 없는 것들을 팔아 부를 늘리는 문명, 돈을 쓸만한 가치 있는 목적과 돈을 버는 메커니즘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켜 분별력 있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문명. p.111

 

우리 노동의 진부함을 생각하며 희미한 절망감을 느끼다가도, 거기에서 나오는 물질적 풍요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겉으로는 유치한 게임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이 우리의 생존 자체를 위한 투쟁과 절대 거리가 멀지 않다. p.114

 

그저 남들 하는 대로 평범하게 살기만 하면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해야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냐 하는 문제에 관한 직관을 얻을 수 있다고 당연시하는 착각이었다. p.124

 

때때로 우리는 인간의 여러 기능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지적으로만 이해하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몇 가지 소박한 요구가 남아 있으며, 그 가운데는 지원과 사랑에 대한 꾸준하고 강렬한 갈망도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p.136

 

과학 이전의 시대에는 아무리 부족한 것이 많다 하더라도 어쨌든 인간이 이룬 모든 성취 우주의 장대함에 비추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데서 오는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기계장치에서는 그들보다 축복을 받았을지 몰라도 세계관에서는 그들보다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똑똑하고, 정확하고, 맹목적이고, 도덕적으로 혼란을 일으키는 동료 인간들 외에는 달리 딱히 숭배할 대상이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선망, 불안, 오만의 느낌들과 씨름을 하게 되었다. p.189

 

사실 그가 성공을 거두려면 궁극적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어떤 일을 하기보다는 그의 치세가 경제사의 상서로운 흐름들과 운 좋게 맞아떨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p.285

 

회사의 행동규약은 다음과 같이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일터에서 성희롱은 절대 묵과하지 않는다. 성희롱에는 어떤 사람의 외모에 관한 천안 언급, 상스러운 말, 성생활에 관한 질문, 품위를 해치거나, 위협적이거나 , 적대적이거나, 품위를 훼손하거나, 불쾌한 작업 환경을 조성하는 신체 접촉이 포함된다." 진짜로 보호되는 것은 어쩌면 상스러운 관심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특정한 개인이라기보다는 회사 자체일 수도 있다. p.296

 

 

역시 예의 바르고 독자를 배려하는 작가라서 P.369에 책 한 권을 다 요약해 놓았다.

 

우리의 일은 적어도 우리가 거기에 정신을 팔게는 해줄 것이다. 완벽에 대한 희망을 투자할 수 있는 완벽한 거품은 제공해주었을것이다. 우리의 가없는 불안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성취가 가능한 몇 가지 목표로 집중 시켜줄 것이다.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 줄 것이다. 식탁에 먹을 것을 올려놓아줄 것이다.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있게 해줄 것이다.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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