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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 5주 차에 접어들었다. 어쩔 줄 모르는 게 당연하다.

지구빵집 2020. 11. 13.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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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 5주 차에 접어들었다. 자세한 내용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다 안다고 치고 실습을 진행한다. 아이들은 팀원을 만나고, 팀 이름을 만들고, 개발할 프로젝트를 선정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떠든다. 아무리 좋은 구성원을 만나도 모두가 협조하고 원만하게 굴러간다는 생각은 남자와 여자가 스스로 선택한 사람과  결혼한 연인들이 평생을 행복하게 살 거라고 믿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생각이다. 13개 팀과 같이 각기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니 남자는 정신이 없다. 수업이 있는 날은 수업을 시작하는 직전까지 두려워한다. 강의 자료를 보완하고, 참고자료를 수집하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스스로 가진 능력을 발휘할까 고민한다. 아이들에게 집어넣는 일은 다른 사람도 늘 하는 방식이라 가능한 한 많이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성급하게 결과를 바라지 않고,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기로 한다.

 

남자는 두 형태의 아이를 만나는 일에 어쩔 줄을 모른다. 남자의 아들을 보는 시간과 학교 학생들을 보는 시간이다. 혼동스럽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남자의 아이를 대할 때와 학교에서 아이들을 대할 때는 어디에 소통 채널을 맞추어야 하는지 가끔 잊어버린다. 가능성만 남아서 세상을 잘 따르고 욕심이 늘어나고 어른을 가르치고 조용하다 싶으면 문제를 일으키는 아들을 보고 있다. 같은 나이인데 학교에 있는 아이들은 미래를 거리낌 없이 만들어 나가며 아직은 갖고 싶은 것을 생각하지 않고 밝고 꽤나 보기 좋은 것들로 채워나가는 똘똘한 학생들이다. 남자는 동시에 모자라지도 견주기에도 어색한 둘 사이에서 가끔 어떤 것이 좋은 건지 생각하고 있다. 그런 것은 없다고 더 바르고 일정한 모델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삶은 자신이 정의하고 자신이 살아가는 것이라서 원칙도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바깥은 가을로 가득 찼다. 20분 정도 먼저 들어가 책을 읽으면서 정확히 수업 시작하는 3시를 기다린다. 아이들에게 잘 지냈는지 물었다. 시원하게 대답은 한다. '참 좋은 가을날입니다. 모두 여러분 것입니다. 계절도, 시간도 모두 갖길 바랍니다. 오늘은 시 한 편 읽고 시작합니다.' 김계수 시인의 '가을이 때로는 가을에게'를 천천히 또박또박 읽어준다. 아이들은 무척 신기해한다. 분위기가 싸해서 그런지 너무나 고요하다. 남자의 시를 읽는 소리만 강의실에 가득하다. 아이들의 눈들을 보니 조금은 놀라는 눈치다. 끝까지 읽고 수업을 시작한다. 두 시간 동안 무엇을 할지 강의할 내용을 우선 보여준다. 오늘은 팀 회의로 시작하자고 한다. 팀 별로 이야기할 시간은 5분이 채 안된다. 모든 팀의 팀장은 열심이다. 확인할 사항을 확인하고, 결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팀에게 결정을 내리도록 한다. 아직 정하지 못한 팀은 천천히 생각할 시간을 준다. 다 큰 아이들이라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쉬는 시간 없이 1시간 30분 만에 수업을 마친다.

 

수업을 마치면 아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대학이란 도시는 그야말로 감쪽같은 도시다. 학교 어디에 숨어 있는지도 모르는 학생들은 수업 시간이 되면 귀신같이 모였다가, 끝나면 또 어디론가 연기처럼 사라진다. 캠퍼스가 너무 넓은 건지 각자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꼭 유령 같다. 사실 캠퍼스는 세상으로 나가지 못한 유약하고 생기 잃은 유령들이 배회하는 도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마트 팩토리 센서 데이터 송신 보드 8대를 만들었다. 쉬운 일은 없는 법이다. 징징거릴 시간에 사소하고 작은 일을 착실히 한다. 세상은 우리의 의도와 반대로 작용한다. 라면 끓이는 일을 중지하고 당장 한 줄을 쓰기 시작한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공부를 하느라 포스팅을 제법 많이 썼다. 충무로와 화성에 있는 전송 보드를 설치할 장비를 직접 보러 다녔다. 프린터기, 코팅기, 스티커 재단기, 절단기, 네일아트 포장기까지 인쇄장비에 붙여 실내 환경과 장비 동작상태 데이터를 수집하여 클라우드에 전송한다. '스마트'란 단어는 자동화의 다른 말이다. 스마트 홈, 스마트 러닝, 스마트 팩토리와 같은 말들은 그런 의미를 갖는다. 작고 중요한 일들이 모여 큰 한 가지 일을 가치 있게 만든다. 여러 가지 작은 일에서 하나라도 부족하면 결과는 좋지 않다. 

 

아이들은 마스크를 쓰고 팀별로 원형 탁자에 옹기종기 모여 않았다. 서로의 눈만 보고 대화하는 아이들은 수줍어한다. 이제 익숙해져서 질문도 많이 하고 대담하게 굴 줄 알았는데 아직도 서먹하다. 마스크를 쓴 눈만 보면 남학생인지 여학생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모두 눈빛이 초롱초롱하고 눈에서는 성별과 외모가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학생이 전체에서 3분의 1을 차지한다. 공학을 전공하는 여학생들이 많아졌다. 웹 개발 분야와는 다르게 전자, 전기 엔지니어라는 분야 역시 여자에게는 쉽지 않은 직업으로 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자라온 성향이 전자장비나 기계와 친숙하지 못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전자 도면을 설계하고 회로를 연결하는 일도 어렵고,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응용 프로그램과는 다른 전기신호를 마음대로 움직여 육중한 우주선이 날도록 펌웨어를 프로그래밍하는 일에 흥미를 갖기는 어렵다. 일 자체가 어려운 일이 아니라 건설하는 일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건축 설계와 조경을 디자인하는 분야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건설하고 정원을 만드는 일은 대부분 남자의 일로 여긴다. 소프트웨어 개발 일에는 여자 팀장도 많아지고 실력 있는 개발자도 많이 늘고 있다. 이건 슬라이드셰어나 발표자료를 보면 금방 표시가 난다. 예전에는 쉽게 볼 수 없었다. 산업경영, 소프트웨어공학, 로봇공학을 배운다고 반드시 그 분야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엔지니어로 성장하는 과정은 거의 비슷하다.     

 

비가 한 동안 오지 않아 날은 가물고 대기는 건조하다. 가장 아름다운 때가 지났지만 그래도 색이 곱게 물들어야 할 단풍은 나무 꼭대기부터 말라간다. 색깔도 선명함을 잃었다. 항상 날씨에 집중해서 관심 갖는 일은 가끔은 쓸데없는 관심으로 보인다. 날씨에 따라 사람들 활동이나 음식, 놀이는 달라진다. 계절마다 변한다. 수영을 하고 스키를 타고, 집에만 있기도 한다. 사람들은 구름과 안개와 이슬이 수증기라는 단 한 가지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는다. 작은 물방울로 응결한 상태지만 하늘 높은 곳에서는 구름이 되고, 지표면에 가깝게 만들어지면 안개가 된다. 서리나 이슬은 바로 땅 표면에서 응결된 상태다. 24절기는 농사짓는 일에 바탕을 두어 정해진 원인도 있지만 날씨 상태에 따라 촘촘히 구분하기도 한다. 절기 이름은 반드시 날씨와 기후 상태를 풍부하게 표현한다. 남자는 날씨에 덜 관심을 갖기로 한다. 날씨를 알아야 진행되는 일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을 하는 데 굳이 그렇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날씨를 세세하게 아는 일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음력으로 겨울이 시작하는 날인 입동이 지났다.

 

 

팀별로 5분 정도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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