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 바른 글

되돌릴 수 없는 사건들 안에서 겪는 무력함을 받아들이기

지구빵집 2022. 7. 12.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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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이제 많이 힘들어하신다. 마치 애처럼 행동한다. 마치 몽땅 사랑을 받아야 만족하는 아이처럼 살고 있다. 점점 주무시는 시간이 길어진다. 굳이 기억해야 할 일이 없다보니 기억을 하든, 지난 일보다 최근 일을 더 많이 잊든 상관은 없다. 남자 생각에 충분히 긴 시간이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렇게 마음속에 파고들기는 처음이다. 충분한 시간이란 사실 누구에게도 없다. 윗 틀니 속에 남은 치아 3개를 발치하고 전체를 틀니로 바꿔야 한다. 병원을 모시고 다니는 일도 토요일 아침뿐이다. 누가 옆에서 돌봐드려야 하는 데 남매들 모두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 작은 누나가 금요일 내려와 일요일 까지 치과에 다녀와 보살핀다. 남매들 누구나 자신이 맡은 역할을 한다. 다른 남매 모두 최선을 다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건너야 할 강이 꼭 죽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강을 건너고 있다. 

 

엄마가 살아온 삶을 알지 못한다. 조금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니까. 삶은 곧 삶 자체다. 사랑이라거나, 희생이거나, 은혜라든가 축복과는 거리가 멀다. 별로 관련되지 않은 것들을 어떻게든 묶어 마치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만드는 일이 사람이 잘하는 일이다. 확실하지 않은 것들은 불안하고 미덥지 않고 오래도록 곁에 둘 수 없으니 무엇이든 확실하게 만들어야 한다. 특히 좋아하는 것일 수록 그렇다.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말할 때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기쁨에 들뜬 목소리를 한다.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다. '사랑은 기쁨의 발견'이라고 손원평의 소설 '아몬드'에 나오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되도록 많이 말해야 한다.

 

아버지는 주간 요양 보호센터에 다니신다. 아침 8시에 센터에서 차가 와 모셔간다. 저녁까지 드시고 5시 30분에 집으로 오신다. 오전에 잠깐 3시간 요양 보호사가 와서 어머니를 챙기고 가시니 마주칠 일은 없다. 아버지는 다리가 많이 불편하지만 지팡이를 잡고 잘 다니시는 편이다. 아버지의 쉽게 화내고, 참지 못하고, 무엇에나 참견하시는 버릇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성(性)적으로 나쁜 치매가 있다는 요양 보호사의 말을 믿지만 듣고 싶지는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책은 반딧불이)에서 암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응축이라는 말이 나온다. 어디 암뿐인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생각과 감정, 습관, 사고방식, 일상까지 우리가 획득하고 고정하고 단단히 쌓아 올리지 않은 것은 없다. 만약 그것을 허물고 싶다면 당장 허물어야 한다. 변하지 않고 무너뜨리지 않는 한 우리는 늘 죽을 때까지 가져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남자 나이와 비슷한 후배와 선배, 동갑내기 친구의 죽음에 관한 소식이 가끔 전해진다고 해도 배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부모님이 남자에게서 떠나간다고 해도 그리 많은 것을 깨닫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후회하거나 불평할 게 하나도 없이 마치는 삶을 사는 게 가능할까? 누군가 후회하지 않는 삶은 무척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삶일 거라고 말은 했지만 짧은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

 

받아들인다. 어떤 것이든 받아들이는 게 우선이다. 힘들 때마다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든다. 어떻게 왔는데 어디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지금 부자든 가난하든, 원하는 것을 가졌든 못 가졌든, 아내가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아이를 건강하고 정서적으로 강하게 키웠든 못 키웠든 앞으로 어떻게 살겠다고 다짐하든 변하지 않든... 극단적으로 모두 자기 책임이다. 그러니 받아들이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면 굉장히 기분 나빠한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순간 상대방에 대한 불만이나 세상에 대한 불평, 누군가를 비난하는 일, 충고나 조언조차 한 순간에 어둠속에 사라진다. 결국 문제를 만든 것도 나이기 때문이고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도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자도 매우 기분 나빠했다. 남자는 사실 여자에게 화살을 돌릴 이유도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랬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에게 모든 화살을 돌리는 것은 아닌데 심리학적으로 약한 감정의 고리를 뜻하는 용어가 무엇이 되었든지, 자기를 공격하는 의미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남자는 생각한다. 어떤 말도 듣는 사람에 따라 말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 솔직한 배려와 공감은 그다지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은 사실 지능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누구나 다 안다. 솔직하다는 것은 '나는 상황에 따라 어울리는 근사한 대화를 하지 못하는 바보 멍청이 머저리입니다.'라는 말과 다름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길 건너 식당에서 어머니와 소주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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