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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의 가방은 가볍다.

지구빵집 2022. 7. 11.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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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필요한 것만을 소유하고 삶을 단순하게 살아가는 미니멀리즘 방식으로 사는 것은 그 반대인 맥시멀리즘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은 정도로 어렵다. 삶을 모범적이고 탁월하게 살아가는 것은 삶을 아주 형편없이 망가뜨리며 살아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선택과 판단 기준, 자신이 기대하는 것을 위해 일방적인 것만을 쫓으며 살아가기도 한다. 위로를 주는 것은 그 무엇도 다 '맞다.'는 것이고, 틀린 게 아니고 다르다는 것일 뿐이다. 잘 들어라. 아들아, 딸아. 올바름과 틀림은 없다. 단지 다를 뿐이다. 내가 사랑하는 딸아, 아들아! 

 

에어컨을 설치하는 집은 여름철 섹스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우스운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스운 게 아니고 그게 전부일 수도 있다. 젊을 때는 전부여야 맞다. 샤워하고 나와 몸을 닦은 질척하게 미끌미끌한 수건이 거사를 치르고 난 뒤에 보니 바짝 마를 정도로 시원한 방에서 보낸 젊은 날은 누구나 다 있다. 시원한 맥주병에서 흐르는 물방울이 싹 없어지고 다시 차가운 맥주가 될 정도로 시원한 방에서 벌이는 여름날의 여하튼 그것은 아주 기쁜 일이다. 그것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이어지는 일이라서 결혼하면 대부분 다른데도 아닌 집에 에어컨을 설치한다.    

 

에어컨을 놓는 이유는 그럴 만도 했다. 아무리 욕망이 커도 달리기 5km를 달리는 운동을 방 안에서 같은 온도를 지닌 두 성인이 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래서 가끔 시원한 호텔도 가고 그러는 모양이다. 문명의 이기는 어쩜 이리도 편안한지, 오늘 에어컨을 설치했다. 부모님 댁에 설치해 드린 게 몇 년 전인데 우리는 그냥 버틸만했다. 대나무 돗자리에 선풍기 세 개로 여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순전히 아들 때문이다. 젊으니까 뜨거워서 좁은 방에서 지내기 힘들어한다, 일요일 한낮에 에어컨을 틀고 거실에 낮아 책을 읽는 데 시원한 카페나 연구실에서 느끼지 못한 평온함이 밀려든다.

 

대나무 돗자리, 선풍기 3대, 부채 여러 개, 여러 가지 꼭 필요했던 것들을 이젠 치워도 된다. 짐이란 늘어나면 늘어나지 줄지는 않는다. 어떤 분야에서건 고수들은 단순함을 추구하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일한다. 여행의 고수들은 짐이 가볍다. 운동에 제법 일가견이 있는 사람은 훈련 때 필요한 물건을 최소로 한다. 검술과 요리의 고수에게 필요한 것은 한 자루 칼이다. 초보는 늘 짐이 많다. 그러니 어디서든 짐을 나르느라 힘들고, 행동하는 데도 민첩하지 못하고, 일찍 누리고 봐야 할 것들을 자주 놓친다. 많은 짐을 싸는 일도 습관이라서 늘 큰 짐을 준비하는 일을 후회해도 고치기는 힘들다. 불편하더라도 극단적으로 몇 번 짐을 줄이면 잘 적응하게 된다.  

 

여행을 가든, 어디를 가든 지금 있는 곳과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냥 잠자리가 다르고, 먹는 것이 다르고, 가는 곳이 다르고, 하는 일이 주로 이동하고 구경하는 일이 많아지는 것뿐이다. 요번 주 13일, 그러니까 수요일 미국에  2주 동안 방문하기로 했다. 여행이란 것도 사실 거의 일상과 같아서 대단한 유세를 부리거나 유난 떠는 일은 없다. 천천히 준비하고 필요한 것만 챙긴다. 여권과 기타 일정표, 신분증, 노트북, 돼지코 2개, 슬리퍼, 운동화, 바지, 반바지, 티셔츠, 속옷, 양말 최소한으로 준비한다. 꼭 필요한 것은 모두 필요한 곳에서 필요할 때 산다. 가방은 기내 수화물에 맞는 작은 가방 하나만 가져간다. 

 

조금 의미를 두자면 남자는 다르게 살기로 결정하고 처음 하는 여행이다. 정말 다르게 살자고 노력한 지 9개월이 지났다. 진짜 변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면 더 많이 성장하기 위해서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여하튼 이미 지난 일은 어쩔 수 없다. 앞으로의 일도 모른다. 지금 여기만 생각하기로 한다. 남자는. 

 

단순함은 반드시 배워야 하는 필수 습득 기술의 하나라서 과소평가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인생은 초콜릿 상자같은 것, 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 (Feather Th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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