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러닝, 그토록 뜻밖의 달리기
10월 2일. 번개 달리기 양재천 13km
6월부터 시작한 토요일 번개 달리기를 마칠 때가 다가온다. 오늘은 시원한 양재천을 달리기로 한다. 식자 선배와 새로 들어온 40대 신입 회원 병찬 씨와 함께 달린다. 등용문에서 돌아오지 말고 한강까지 나갔다가 오기로 한다. 등용문을 지나 1.5km 더 달려가니 식자 선배가 동료들이 기다린다고 돌아가자고 한다. 젊은 신입회원 두 명이 늘었다. 그들은 젊고 잘 달린다. 계절처럼 서서히 저무는 나 자신을 본다.
10월 7일 10km 캠퍼스 달리기
달리기가 지겹다고 생각하니 나가서 달릴까 한참을 고민하다 달렸다. 달리다 보면 언제 지겨워했나 하는 생각도 나지 않는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처음 한 스텝이 가장 어렵다.
10월 12일 화요일. 13km. 영동 1교 왕복.
가을 햇살이 따가운 낮과 다르게 7시면 어둡고 기온은 16도로 떨어지고, 바람은 쌀쌀해진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순자 선배는 소주 한 병 까면 덜해지니 술이 좋다고 한다. 애인을 만나도 외롭고 만나지 않아도 외롭다고 한다. 부부가 사별하는 경우는 원래 혼자 살던 사람보다 외롭고 힘든 일을 헤쳐나가기가 훨씬 어렵다고 한다. 혼자 사는 일도 연습이 필요하다. 운동장을 환히 비추는 조명이 일찍 들어오고 아직 축구 경기는 열리지 않는다. 어둑한 시간에 만나 영동 1교로 출발한다. 남극 하늘 상공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풍경이 달리는 길 내내 하늘에 펼쳐진다. 갈 때는 천천히 갔지만 올 때는 바람을 만들며 5분 20초 페이스로 달려왔다. '빠지지 말기'보다 지켜야 할 중요한 것은 없다.
"Patience and silence are powerful energies. Patience makes you mentally strong. Silence makes you emotionally strong. 인내와 침묵은 강력한 힘이다. 인내는 정신적으로 강하게 만들고, 침묵은 감정적으로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처음 내딛는 발 한걸음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 한 걸음 내딛는 일을 잘해야 한다. 단련하고 또 단련함으로.
10월 14일 목요일 훈련 6km
오랜만에 미자 선배가 운동장에 나오셨다. 아주 바빴고 또 미루면 안 될 것 같아서 영동 1교에서 달려오셨다고 한다. 병수 씨도 달려왔는데 서로 모르니 7시에 다 만났다. 영동 1교까지 뛰고 미나리 삼겹살 식당이 문을 닫아서 구이 마마로 가서 삼겹살에 막걸리로 저녁을 먹었다. 편의점을 열고 코로나로 엉망인 시절에 한참이 지나 만나서 반가웠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
10월 16일. 토요 정모 13km. 시루떡. 영동 1교에서 관문 운동장 왕복
오랫동안 열리지 못한 정모를 오늘부터 열기로 했다. 나오는 사람은 늘 나오고, 나오지 않는 사람도 그렇다. 준비 운동을 세상 태평한 감독님의 느릿느릿한 구령으로 마치고 관문 운동장을 왕복한다. 3월에 중단했던 정모를 시작하는 날이다. 달리기에 좋은 날이라서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정모를 처음 하는 날이라고 희자 선배가 자봉을 자원해서 시루떡을 해오셨다. 언자 선배와 함께 항상 베푸는 사람들이지만 조금도 내색하지 않는다.
10월 19일 화요일 훈련 13km 영동 1교 왕복
10월 21일 목요일 훈련 13km 영동 1교 왕복
마라톤 대회가 정상적으로 열리는 시절이라면 지금은 10월 마지막 주에 열리는 춘마(춘천 마라톤)를 준비하는 때다. 여름에 그 힘든 혹한기 대공원 마라톤을 달리고, 악명 높은 공주 백제 마라톤 풀코스(42.195km)를 달리고 나면 춘마 준비가 끝난다. 운동은 꾸준히 하니 9월까지 훈련을 한다. 그러고 나면 테이퍼링(테이퍼링(tapering)은 정부가 경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취했던 양적 완화 정책 규모를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점진적으로 축소해 나가는 전략을 말한다. 출구 전략의 일종이다.)을 하는데 마라톤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회 20일~30일 전에 서서히 운동량을 줄이는 전략이다. 대회에서 최고의 상태로 달리기 위함이다.
거의 2년이 지나도록 마라톤 대회가 열리지 않아서 감각이 많이 무뎌진다. 터널 길이가 500m 표시된 터널을 지나는 데 한참을 달려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드는 생각은 이렇게 먼 단거리를 84번 달린 거야?라는 생각이 든다. 아침 학교 가는 길에 의왕 과천 고속도로가 끝나면 요금소가 나온다. 요금소를 지나면 이어진 도로는 의왕 봉담 간 고속도로다. 조금 달리면 서수원, 안산 빠지는 길이 2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온다. 막히지 않아도 진짜 한참을 간다. 그러다 이제 안산으로 진입하는 길이 나올 때 드는 생각은 이 먼 거리를 21번 달린 건가? 믿어지지 않지만 달린 건 달린 거다. 정말 미쳤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거리도 시간이라서 시간의 법칙을 그대로 보여준다. 길고 먼 거리는 결국 긴 시간이다. 우리는 그 거리를 달려왔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남은 시간 동안 달릴 것이다. 달릴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고 달리지 못해도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10월 23일 정모 자봉.
이제 막 정모를 시작했고, 게으르기도 하고, 매주 토요일 정모에 자원봉사 명단도 작성하지 않아서 예기치 않은 자봉을 하기로 했다. 늘 준비해야 하는 테이블과 참석자 기록 대장, 손 소독제와 체온 측정기를 챙긴다. 회원들이 달리고 나서 먹을 물과 초코파이를 챙긴다. 내가 봐도 별로다. 아무리 사연이 있더라도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한다. 어느 누구도 나에 대해 알지 못해도 항상 나를 판단한다. 앞으로는 조금 더 잘 챙겨가길. 충분히 방법을 달리해볼 수도 있다. 초코파이 대신 빵, 에너지 음료, 과일도 썰고, 꼭 조리하고 덥히는 음식이 우위에 서는 것은 아니다. 참 무얼 해도 안 된다. 이 시절엔. ㅅㅂ.
10월 26일. 화요일 훈련. 날씨 맑고 쌀쌀함. 13도~11도. 영동 1교 왕복. 12.3km - 1:05:30초 페이스(Pace) 5분 18초
훈련 날의 기상과 거리, 시간, 페이스(특정 거리, 대부분 1km를 달리는 데 걸리는 시간)도 함께 기록한다. 구제척으로 적는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단풍이 오색 찬란한 가을로 들어섰다. 오전 동호회 회원 선물로 패딩 재킷을 주기로 하여 명단을 올리고 사이즈를 점검한다. 오후에는 라즈베리파이 기반 IoT(사물인터넷) 실습 시스템 강의 촬영을 7퍼센트 PD와 30분 길이 4편을 찍었다. 5시에 사무실에서 나와 7시 화요일 훈련을 관문 운동장에서 영동 1교까지 왕복한다.
여름 달리기를 장식했던 반팔과 싱글렛, 짧은 타이즈를 착착 접어 수납한다. 공주 백제 마라톤이 그립고, 바로 이때면 열리는 춘천 마라톤이 아련하다. 춘천마라톤이 끝나면 JTBC 중앙 마라톤이 열리는데 모두 언택트 비대면 대회로 치러진다. 포니테일과 땀에 흠뻑 젖은 몸, 팔토시와 우중주도 함께 접어 내년 여름까지 보관하기로 한다.
드론과 관절 로봇 강의 동영상 촬영이 2학기 내내 있고, 창의 설계 프로젝트를 아이들과 함께 진행하며 적당한 프로젝트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창의성은 축적된 많은 데이터와 사람을 연결할 때나 실패할 때, 간혹 허황된 생각에서 나오는 데 적당한 아이들 프로젝트가 없을 경우 함께 고민하기도 하고 정해주는 경우도 있다. 원격 샴푸 공급기 납품한 대가로 수금해야 하고, 어디를 검색해도 없는 메타버스 Metaverse 강의 자료를 작성 중이고, 우리 집 길냥이 '포도'에게 주는 고양이 사료와 국거리 멸치가 떨어져 사야 하고, 매일 마시는 술안주로 두절 무조미 노가리를 준문해야 한다. '초보 러너를 위한 러닝 팁 72가지' 외국 기사를 번역하고 포스팅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사소한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그 일을 한다는 사실이다.
10월 28일 목요일. 10도~8도. 맑고 햇살 좋은 날. 영동 1교 왕복 12.36km. 1:09:24, pace 5:37초
아침 일찍 일어나기로 결심하고 노력하지만 매일 실패다. 열심히 일하고 끝까지 달린 날에 나에게 주는 보상이 자꾸 이상한 쪽으로 흐른다. 탐닉한다든가, 술을 마시든가, 영화나 게임 같은 오락에 치중하는 일로 보상을 한다. 충분한 휴식은 사실 재미가 없어서 보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보상은 아주 평온한 휴식인데 말이다. 사실 지루해지려고 하는 달리기가 가민 245 뮤직 러닝 시계를 사용하면서 조금은 재미있어졌다. 측정하고, 결과를 보는 일도 재미있고, 달리는 페이스를 알 수 있으니 달리기가 더 쉬운 느낌이다. 페이스 조절은 달리기에 아주 중요한 일이라서 가능하면 늦게 시계를 사고 달릴 때는 자주 확인하지 않으려고 한다. 몸으로 배워야 하는 것들은 몸으로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젊은 러너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멋진 복장을 먼저 배우고, 과학적으로 운동하고, 철저히 복기한다.
글쓰기는 글쓰기로 배우고, 달리기는 달리기로 배워야 한다는 말도 옛말이 되어가는 듯하다. 애써 주장을 펴지도, 증명하려고 애쓰지 말자. 이미 지나간 것은 죽은 것들이니까 사실 배울 것도 없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자리, 살아야 할 시간은 바로 지금이니까 말이다.
글이든, 작품이든, 하고 있는 일이 다 완성할 때까지는 공개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지 말고 스마트하게 일한다. 힘들게 하지 말고 아주 쉽게 마무리한다. 어렵고 힘들게 하는 일은 놀라움을 주지 못한다. 그렇고 그런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 대단할 리 있겠는가? 가민 커넥트, Relive, 아디다스 러닝 같은 앱을 사용해 달리고 나서 SNS에 올리는 일이 일이 되어서 그런지 하기 싫다. 좋아 보이는 가을도 곧 끝난다.
10월 30일. 토요 정모. 춥지 않고 흐림. 12km. 1:07:53초 pace 5:39초
10월 마지막 정모가 늘 있던 곳에서 열렸다. 관문 운동장을 왕복하기로 한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고, 높은 하늘과 단풍이 오래갈 것 같았지만 계절을 거스를 수 없다. 10월 달리기가 끝났다. 많이 달렸다. 찬 바람이 분다고 일찍 반바지와 반팔을 벗는다면 조금은 따뜻하게 보낼지 모르겠지만 더 약해진다. 달리기 시작할 때는 천천히 달린다. 날씨가 급격히 변하는 것은 사람이 잘 적응하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날씨에도 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불편함 속으로 자신을 계속 내모는 일이 필요하다. 창의성과 추진력은 그런 데서 생긴다. 내일부터 11월이다. 지난 시간은 어쩔 수 없더라도 앞으로는 좀 더 단련하고 좀 더 날고 좀 더 자유롭게 지내길 바란다.
누군가 잘은 아니라도 적당히 글을 쓰고, 달리기를 좋아하고, 일관된 좋은 태도와 섬세한 면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카페에 후기 올리는 일과 다른 여러 가지 글 쓰는 일을 넘기고 싶은데 잘 보이지가 않는다. 좋은 사람은 늘 자신이 더 낳은 사람이 되기 위해 바쁘게 사는 사람이라서 찾기가 힘들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조금은 위험하고 우리에게는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바람이나 구름처럼 쉽사리 모습을 바꾸는 일이 아니면서, 끝까지 일관된 자세를 갖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10월 2일 13km 관문 운동장 왕복
10월 7일 10km 학교 캠퍼스
10월 12일 13km 영동 1교 왕복
10월 14일 6km 영동 1교까지
10월 16일 13km 관문 운동장 왕복
10월 19일 13km 영동 1교 왕복
10월 21일 13km. 영동 1교 왕복
10월 26일 13km. 영동 1교 왕복
10월 28일 12km. 영동 1교 왕복
10월 30일 12km. 관문 운동장 왕복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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