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러너스

9월 달리기, 달리기가 의미가 없어지면 무언가 채우겠지.

지구빵집 2021. 9. 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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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달리기, 달리기가 의미가 없어지면 무언가 채우겠지

 

9월 1일 수요일. 5km

달리지 않고선 못 배길 것 같아서 달렸다. 미칠 때까지 달리면 미칠 것 같아서 미치지 않을 정도만 달렸다. 아무 생각이 안 났다. 학교 언덕으로 둘러쳐진 운동장의 그 둔덕을 달리는데, 바닥이 고르지 않고 울퉁불퉁한 곳이 있어 달리는 내내 정면도 보지 못하고 바닥을 보고 달렸다. 바닥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머리를 곧게 세워 30m 앞 지면을 바라보고 달여야 하는데, 바닥을 자주 보니 자세나 시야가 안정적이지 않다.  며칠 동안 비도 자주 오고 흐린 날씨라서 일단은 비가 내리지 않아서 달렸다. 모든 운동이 몸의 근육을 키우는 것이라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도 반복적으로 실행해 뇌와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 사람에게는 3개의 뇌가 있다. 머리, 내장, 심장까지 세 개를 가지고 있다. 열심히 읽고, 좋은 것을 먹고,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9월 2일 목요일. 12km

한 시간 이상 달리다 보면 달리는 태도가 달라진다. 처음엔 가볍게 달리다가, 조금 더 힘들면 불평 섞인 주문을 외고 소리를 지르고, 그런데도 계속 달리고 있는 자신을 보면 다른 사람을 비꼬거나 연민을 갖는다. 준비 운동을 충분히 하고 달리기 전 후에 스트레칭을 많이 해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관문 운동장을 빠져나가 영동 1교를 향해 달리러 양재천으로 내려간다. 사람이 다니는 길은 물길과 한 치의 다름이 없다. 양재천은 특히 그렇다. 어두울 때는 물이 보이지 않아도 물길이 있는 것은 알 수 있는데 왕복 내내 물길이 옆에 있다. 

 

몸을 푼다고 생각하고 우선 온몸의 힘을 빼고 달린다. 돈 떼인 것도, 해야 할 일도, 그리운 마음이라든가 화나는 일도 모두 내려놓고 달린다. 아무리 내려놓으려고 해도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아도 묵묵히 한 발을 떼어 앞으로 놓고 다른 발을 들어 올려 또 앞으로 가져간다. 이마와 가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면 마음은 조용하다. 호흡도 안정되고 편안히 달린다. 현자가 5분 페이스로 속도를 낸다. 한 걸음 뒤에서 부지런히 따라간다. 주로는 자전거길이 왕복으로 있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아 최대한 방해하지 않고, 자전거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영동 1교에 도착해서 30초 정도 호흡을 고르고 다시 돌아가야 한다. 빠르게 달리면 입에는 침이 고인다. 끈적끈적한 침이다. 러너에 따라 다르지만 힘이 많이 들면 욕을 한다. 속으로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힘들게 달리다니, 걷거나 차를 타고 달려도 시원찮을 길을 죽도록 달리다니.' 하면서 속으로 억울하다거나 많은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처럼 불평과 불만을 토해낸다. 잠시 그러다가 돌아오는 길의 반 정도 오면 여유를 찾는다. 

 

달리는 사람은 좀 불쌍하다. 건강을 생각해서 규칙적인 운동으로 달리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행복한 사람들은 달리지 않는다.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한데 굳이 한두 시간, 아니 서너 시간을 왜 달리겠는가? 달리는 사람은 어느 정도 인생에 시달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무엇인가 내려놓아야 하고, 잊어야 하고, 삶이 곧추서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다. 그래서 달리는 거다. 목표한 지점으로 갈 때나 다시 돌아올 때나 서로 반대 방향으로 지나처 달리는 러너에게 연민이 생긴다. '저 사람도 나처럼 힘든 사람이구나. 지칠 때까지 달리고 나면 잠시 평화로운 마음이 들고, 해방감을 느끼고, 분노라든가 안타까움 같은 마음을 얼마 동안은 내려놓고 싶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연민은 지나처 가는 방향의 손을 든다든가, 용기를 내라는 구호나 짧은 단어를 서로 교환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신이 자기 마음에 쏙 들고, 점점 좋아진다는 것들을 느끼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다. 달리고 나면 항상 현자에게 고맙다. 달리는 동안 잘 이끌어주고 훈련도 제대로 하고 마무리도 섬세하게 가르친다. 훈련을 마치고 주먹 인사를 한다. '고마워.'    

 

9월 4일 토요 번개 달리기. 대공원 10km

대공원 달리기도 이젠 지루하다. 언자, 희자 선배가 나와 함께 달렸다. 우리 보금자리인 영동 1교로 가야겠다. 언자 선배는 산만하다고 한다. 우리 보금자리에서 훈련할 때처럼 모여서 함께 훈련하는 게 아니라 개별적으로 돌고 운동을 마치니 흥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여럿이 함께 할 때 즐거운 일이 대부분이다. 동기부여도 되고 함께 어울릴 때 더 잘할 수 있다. 여러모로 복잡한 코로나19 상황은 소란하고 마음은 분분하다. 접종을 서두르고, 거리두기가 수시로 바뀌고, 한 달 후면 with 코로나 상황으로 헤처 나가야 한다. 어쨌든 우리는 번개 달리기를 다음 주부터는 영동 1교에서 열기로 한다. 좀 더 많은 동료들이 모였으면 좋겠다. 

 

9월 7일. 화. 캠퍼스 6km

달릴 수밖에 없어서 달릴 때도 있다. 어제오늘처럼 오래 내리는 비가 장마처럼 쏟아지면 가을이 온다. 비가 그친 틈을 타 캠퍼스 여기저기 달렸다. 아주 크게 한 바퀴 반을 도니 6k다. 페이스도 좋았고, 차량이 뜸한 넓은 길을 달리니 시원했다. 일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가진 능력의 진가는 돌발상황이나 일이 예상대로 되지 않거나 꼬일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따라 더 확연히 나타난다. 인생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 대부분이다. 앞뒤가 맞는 일은 별로 없다. 계획대로 되는 일도 별로 없다. 계획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를 대비하여 계획을 세워야 한다. 마음이 소란스러운 것은 꾸준히 인내를 발휘해야 이어지는 삶에 적당하지 않다. 오히려 평온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시간과 일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할 때 자존감이 강해지기도 한다. 오늘도 앞뒤가 들어맞지 않고 꼬인 일들이 많았다. 잘 헤처 나갈 수 있기를.  

 

9월 9일. 목요일 훈련. 영동 1교 왕복

하늘이 아주 푸른 날이다. 달리기 끝나고 일 잔 하기로 해서 일찍 만나기로 했다. 7시에 만나서 달리면 돌아올 때는 어둑해지는데 오늘은 5시 30분에 만나 영동 1교에 다녀오는 동안 멋진 노을과 하늘이 좋았다. 마음만 맑다면 세상은 모두 좋아 보이고, 마음이 어두우면 세상은 온통 어두운 사진이다. 영동 1교까지 갔다가 돌아오던 중에 과천 마라톤 회원인 실자를 만나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까치 식당 실자, 현자, 순자 선배. 

 

9월 11일 토요 번개 달리기. 등용문 왕복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이사하는 와중에 다시 우리 보금자리인 영동 1교에서 번개 달리기를 하기로 했고, 진짜로 돌아왔다. 이제부턴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음 주가 추석이고 바쁜 시절이라 10명 참석했고 이름을 불러보자면 진자, 봉자, 필자, 미자, 경자, 희자, 언자, 정자, 세자 선배다. 현세 선배가 펴낸 책에 예쁘게 서명을 넣어 선물을 주었다. 마음이 소란하다. 오늘은 일부러라도 등용문을 왕복하기로 한다. 우리가 잊고 지낸 게 미안하기도 하고, 거리가 약간 짧으니 조금은 가볍게 시작하고 싶었다. 진자 회원 달리기가 팍팍 늘어간다. 작년 5월부터 함께 나와 달리기 시작했는데 혼자서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 몸도 아주 푸르고, 자세도 좋아졌다. 등용문을 왕복하는데 영동 1교에 도착할 때까지 지친 기색 없이 잘 달린다.

 

남자가 저물고 있다면 진자는 떠오르는 사람이다. 남자가 지겨워하고 있다면 여자는 흥미가 샘솟는 사람이다. 남자가 볼 것도 즐길 것도 없는 황량한 3월이나 11월이면 여자는 생명이 솟고 무엇보다 즐거운 5월과 1월이다. 남자가 노을이 지는 가을날 저녁이면 여자는 해가 일찍 뜨는 여름날 새벽이다. 남자가 뒤돌아 터벅터벅 걸어가는 뒷모습이라면 여자는 늠름하게 바람을 가르며 걸어오는 앞모습이다. 남자가 영화의 크레디트이라면 여자는 영화의 강렬한 시작을 알리는 예고편이다. 안타깝지만 언제나 남자가 생각하는 예상이나 의지와 반대였고, 생각과 행동이 남자와 다른 게 자연스러운 것은 변함없다. 여자가 시작이라면 남자는 끝이다. 시작이 중요하지 끝은 시작이 결정하는 거라서 크게 의미가 없다. 살면서 참 많이 달렸다. 많이? 얼마나 많이? 지구 4바퀴? 달까지? 은행 간에 돈거래가 자유롭게 이동하듯 모든 우리의 행동은 마음으로 이체된다. 같은 거리를 달린다고 해도 모두가 같은 거리는 아니다. 남자는 정말 많이 달렸다고 생각했다.

 

9월 14일. 화요일 훈련

오래간만에 순자 선배, 현자와 늘 달리는 세 명이 함께 달렸다. 돌아올 때는 온도가 20℃를 가리킨다. 그만큼 일찍 어두워지고 선선한 날씨라 달리기에 좋은 계절이 온다. 가장 춥고 더울 때도 운동은 언제나 즐거움을 허용한다. 그런 날 무리하면 좋지 않다는 말이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9월 16일 목요일 훈련. 영동 1교 왕복 13km

현자와 둘이 달리면 훈련이 고되다. 마음은 분분하고 소란스럽다. 달리기도 해결하지 못할 때는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 

 

9월 20일 괴산 미루마을에서 달리다.

 

9월 22일 번개 달리기. 13km

사람이 돈을 버는 이유는 오직 하나 자유를 얻기 위해서다. 자유란 원하는 일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만큼 함께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갑자기 순자 선배가 "땡벌, 땡벌, 여왕벌, 여왕벌, 그럼 우리는 잡 벌이냐? 잡 벌, 잡 벌" 4박자 게임하면서 틀린 사람이 한잔 마시고 하던 즐거웠던 선배 이야기를 꺼낸다. 지독하다. 외로운 새처럼, 고독한 가장이자 CEO로 자유롭게 하늘을 비행하던 선배 이야기를 유려하게 하신다. "지금도 있었더라면 정말 재미있을 텐데. 어떻게 갑자기 헤어져서 모든 게 중단되냐."라고 말한다. 마무리도 참 아프게 말한다. 남자는 속으로 꾹꾹 누르며 '다 지나간 자리'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콧등이 시큰해지자 다른 데를 쳐다보며 옆에 있는 동료에게 집중하지만 마음은 못내 침울하다.

 

추석 며칠 전부터 지난 오늘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이들 강의, 사업하는 일, 보살펴야 하는 부모님, 큰누나를 포함한 가족의 일까지 하나도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마무리되지 않는 것들이다. 그나마 멈추지 않고 달리니 조금씩 야금야금 실마리를 잃지는 않고 있다. 다행이다. 

 

7시에 달리기가 있었지만 좀 늦었다. 구자 선배가 7시 10분에 관문 운동장으로 달려가고, 그 틈에 나온 찬자 후배는 등용문을 향해 달려간다. 6시 30분에 나온 근자 선배는 한강으로 달려가고, 7시 12분에 나온 봉자는 25분까지 비가 와서 준비 운동하고 있다가 순자 선배를 만나 함께 관문 운동장까지 왕복하기로 한다. 달리기를 마칠 때쯤 미자 선배와 감독님이 나오셔서 참 어려운 상봉을 한다. 술은 낮술이라서 훈련을 마치고 마마 구이로 가니 영업을 하지 않아 한국 순대 본점으로 이동한다. 순댓국을 좋아하지 않는 구자 선배는 해장국으로, 나머지는 순댓국으로 식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다시 수육을 시키고 소주를 마시니 비가 그쳤다. 술은 낮술이라고 하는데 낮술이 좋은 이유가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호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돈과 사랑과 우정을 모두 갖는 방법은 없다. 두 개를 가지면 나머지 하나는 가질 수 없다. 모두 갖는 방법은 전부 반씩만 갖도록 한다. 아직 9월 훈련 날짜가 많이 남았다. "러너의 외로움"에 대해서 글을 쓰고 맡은 일을 성심성의껏 하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기로 한다.

 

9월 23일 목요 훈련. 캠퍼스 10km

학교 여기저기 구석구석 달렸다. 혼자 달리면 의도하지 않게 페이스가 일정하지 않고, 어느덧 처음부터 빨라진다. km를 5분 27초에 달렸고 전체 시간은 54분 50초다.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시간이다. 무엇이든 가능하고, 어떤 것도 만들 수 있고, 무엇이든 없앨 수 있다. 최강의 정복자와 제왕들, 모든 것을 가진 사람부터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던 사람까지 어떤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든다. 시간 앞에서 인간은 겸손하다. 무한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을 보장하기만 하면 세상에는 못할 것이 없다. 인류는 아마도 모든 것을 이룰 것이다. 시간을 통제하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함께 달리지 못하고, 운동하는 날에 훈련을 빠뜨리면 다시 채워 넣기로 한다. 충분히 독립적이고 의지하지 않는 강한 사람인 것처럼, 아니 강한 사람이라고 믿고 지내기로 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믿고, 또 믿고, 끝까지 믿어야 한다. 믿고 싶지 않을 때조차 믿어야 한다. 도박이나 게임처럼 믿어야 한다. 그 믿음이 힘이고, 힘 자체라는 사실은 현실이 보여준다. 무조건 믿고 포기하지 않는다. 단, 사기 Scam에는 당하지 않는다. 앞뒤가 들어맞지 않는 게 삶이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들이 마구 뎀비는 것을 오히려 즐길 줄 알아야 한다. 

 

9월 25일 토요일. 충북대학교 캠퍼스 6.2km

부모님 뵈러 아침 일찍 시골에 가느라 번개 달리기를 가지 못한다. 점심을 어영부영 챙겨드리고 책도 읽고 낮잠도 자면서 평온한 오후를 보낸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쉬어본 적도 오랜만이다. 남자는 갑자기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가지고 있어도 좋은 주제 아닌가. 음식남녀 영화처럼 민서가 결혼하고 언제든 와도 즐거운 주제가 되고 말이다. 생각 좀 하기로 한다.

 

초밥 장인을 그린 '지로의 꿈'을 재미있게 봤는데 나이 들어 회나 초밥 같은 생고기는 별로다. 라따뚜이에 나오는 쥐가 요리하는 프랑스나 이태리 요리는 어떨까? 중국 요리는? 한식은 기본이겠지?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한다. 하나라도 제대로 채워야 하는데 두 개 다 못 채우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아직도 후각, 미각 등의 분야는 과학이 아무것도 모른다. 화학적으로야 맛을 재현한다는데 그런 맛은 없어도 좋을 맛이기 때문이다.

 

저녁으로 갈치구이, 계란찜을 하고 작은 누나와 남동생이 해놓고 간 김치볶음과 김치찌개를 차려놓고 충북대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졸업한 지 29년이 지나서 여기 운동장을 달리는 일이 일어나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이라도 언제든 일어난다. 앞으로 자주 와서 달릴지 그건 모르는 일이다. 흐름에 맡기고 여정을 즐길 뿐이다. 갈수록 태산이다. 두 번의 훈련일이 남았다. 무너지면 다시 시작하고, 낡아지면 새로 복원하면 된다. 버텨라. 포기하지 마라.

 

9월 29일. 수. 어제 훈련 오늘 10.5km. 한양대 erica 캠퍼스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면 자책하지 말고 상응하는 정성이나 선물로 갚아준다. 신뢰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장 비싼 것이라서 값싼 사람들은 제공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것이다. 점심을 건너뛰었다면 더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물론 되돌릴 수 없는 일도 많지만 이미 지난 일이라 할지라도 방법만 올바르다면 얼마든지 회복하고, 수습하고 더 잘 가져갈 수 있다.

 

하루 종일 내리던 비가 그치니 나뭇잎 색이 더 많이 가을 쪽으로 변했다. 달리려고 재빠르게 일을 마무리 짓고 옷을 갈아입고 나간다. 아주 넓게 캠퍼스를 달린다. 아주 넓은 공터에 코스모스가 가득 핀 길을 따라 경기 테크노파크 입구까지 달리고, 기숙사로 방향을 틀어 행복관, 인재관, 창의관 앞으로 달리고, LG 이노텍 회사 앞에서 돌아 정문으로 달려간다. 다시 학교 본관 건물 앞으로 골프장을 지난다. 이런 식으로 돌면 한 바퀴가 약 4.5km 된다. 오늘은 거의 두 바퀴 반을 크게 달렸다. 달릴 수 조차 없을 때도 달린다. 글을 쓸 수 없을 때조차 글을 쓴다. 어제 달리지 못했다면 오늘 달린다. 그게 전부다.

 

9월 30 목요일. 8km

내려갈 때는 항상 바닥까지 내려간다. 그래야 올라올 때 즐겁다. 서운함을 잊지 못해 투정하고 징징거리는 일은 사소한 일이다. 중요한 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외부 환경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잃지 않아야 한다. 그게 자신이 가진 전부이기 때문이다. 기분은 좀 좋았지만 원래 생겨먹은 게 이래서 오래 갈지는 모르겠다. 훈련날은 지키지 못했지만 다음날이라고 달려서 채우긴 채웠다. 삶은 매일 밀려오는 파도를 타 넘는 일이다. 지방으로 이사 간 예전 동료가 와서 짧게 달리고 까치 식당으로 갔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뇌는 살아남기 위해 에너지를 재배치하고 얼마나 쓸지를 결정한다. 방식이나 감정은 아무 상관이 없다. 살아남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9월에는 참 자주 달렸다. 거리는 131km로 많지는 않지만 정해진 훈련 날보다 하루를 더 달렸다. 달리기가 의미가 없어지면 무엇으로든 다시 채우게 된다. 그게 무언 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집안일과 강의와 사업, 새로운 프로젝트와 남매들, 부모님까지 붉은 단풍과 거울 같은 파란 하늘과 대비해 참 힘든 계절을 흘려보내고 있다.

 

 

9월 1일. 수. 5km 한양대 ERICA 운동장 8바퀴

9월 2일. 목. 12km. 관문 운동장 ~ 영동 1교 왕복

9월 4일. 토. 10km. 서울 대공원 C코스 4바퀴

9월 7일. 화. 6km. 학교 캠퍼스

9월 9일. 목. 12km. 영동 1교 왕복

9월 11일. 토. 10km. 등용문

9월 14일. 화. 12km. 관문 운동장~영동 1교 왕복

9월 16일. 목. 13km. 관문 운동장~영동 1교 왕복

9월 20일. 월. 4.5km. 괴산 미루마을
9월 22일. 수. 13km. 영동 1교~관문 운동장 왕복

9월 23일. 목. 10km. 에리카 캠퍼스 구석구석

9월 25일. 토. 6.2km 충북대학교 캠퍼스

9월 29일. 수. 10.5km. 한양대 ERICA 캠퍼스 

9월 30일. 목. 8km. 양재천

 

 

서울 대공원 9월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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