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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러너스

11월 달리기, 달리기에는 삶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목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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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달리기, 달리기에는 삶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목적은 없다.

 

하던 일을 마무리한다. 적어도 마무리를 어설프게라도 짓지 않으면, 완성하기 전에는 공개하지 않는다. 우리가 쓰레기를 만드는 이유는 별거 없다. 끝난 게 아닌 걸 서둘러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하니까 쓰레기가 된다. 다른 사람은 보여주기 위해 일을 하지만 우리는 사라지기 위해 일을 한다. 시작은 모르지만 마지막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다. 늘 마지막엔 어떤 것을 선택할지 우리에게 달려있다. 11월 달리기는 11월이 끝나야 알 수 있다. 당연하지 않은가? 누군가를 선뜻 돕지도 말고, 여러 곳에 자선을 베풀지도 말고, 이기기 위해 경쟁하지 말고, 자주 져서도 안된다. 

 

흔히 "인생은 마라톤이다."라는 말로 우리의 삶을 마라톤으로 비유해서 말한다.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애초에 마라톤 같이 고통스럽다면 누가 달리겠는가? 간혹 천재들은 그걸 알고 스스로 일찍 죽기도 하지만. 중간에 큰 사고만 없다면 누구나 완주한다. 다들 그렇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어제보다 더 열심히 일한다면 내일은 더 나아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달리기는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고 극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장거리 달리기와 같은 인생에서 이길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11월은 뭔가 다를 거라는 희망을 갖는다. 모든 존재가 살아가는 이유는 희망을 갖기 때문이다. 무언가 또 다를 것이고, 좀 더 좋아질 것이고 다른 사람이 가진 것들을 나도 좀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희망이라고 한다. 희망을 갖는 일은 가끔 정 반대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희망은 아주 특이한 상황-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는 오히려 일찍 죽는 원인이 되었다. 몸이 원하는 대로 기억하고, 과거 기억을 기반으로 생존을 예측하고 적절히 통제하며 그러니까 대충대충 살아가는 게 오래 사는 길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거절당할지라도 상심할 필요는 없다. 예외 없이 대부분의 사람은 보통 소중하고, 비싸고, 귀한 것들을 거절하고, 대신에 구하기 쉬운 천박하고 넘쳐나는 싼 것들을 찾아 나선다. 지나고 보니 남자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앞으로 더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겨우 이런데 있었던 거야? 겨우 이런 곳에 머물렀어? 우리의 뇌가 잘하는 일 중의 하나는 합리화하는 일이다. 머물 수밖에 없는 근거를 조목조목 대면서 머물 수밖에 없던 이유를 만들어 내는 일을 잘한다. 뇌가 만들어 내는 생각이 바로 현실로 이루어지는 이유다. 존재하는 데 특별한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를 만들어내는 일을 능숙하게 한다.  

 

 

2021년 11월 2일 화요일 훈련.

11도~9도, 맑은 날, 12.34km 1: 06:00초 pace 5:21초. 최고 기록 수립 5km-23분 30초, 5 킬로미터 이전 기록은 24분 37초. 

 

11월의 첫 번째 훈련이라서 저녁 6시 50분에 도착했다. 시간 엄수는 무엇보다 가장 비싼 신뢰를 얻는 첫 번째 방법이다. 대충 하는 사람은 얻을 수 없는 일이다. 남자는 무슨 생각으로 순자에게 이야기했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누나가 아이언 자이언트 같다는 들었다. 큰 차 옆에 붙어가면 안전하다. 선배가 큰 트럭이라면 그 옆에 바싹 붙어 가야 한다. 느리지만 안전하고, 멀지만 언젠가는 추월할 수 있는 길이다. 큰 권력에 작은 권력이 모여들고, 큰 부자 옆에 작은 부자가 모여드는 이유가 안전하기 때문이고 부와 권력을 갖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은 분명한 교훈을 가르치려 든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지 말아라. 우리 자식들은 우리의 충고로 배우는 게 아니라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을 보고 배운다. 아들이 배우는 방식을 보면 정확히 맞다. 아들은 엄마와 아빠의 행동과 태도를 따라 하지 충고나 교훈으로 배우지 않는다. 

 

과천 팀이 주말에 풀코스를 뛴다는 말을 듣고 아쉬운 말을 했다.

 

"아, 우리는 달리지도 않는데 어떡하지? 부럽네요. 관문 운동장에 나와서 뛸까요?"라고 말했다.

 

조급함은 아니지만 점점 달리기에서 저물어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순자 선배가 말했다. 

 

"봉자야, 그 사람들은 그렇게 달리라고 하고, 너는 너대로 달리면 돼요. 모든 러너가 각자 다른 여정을 통해 서로 다른 경로로 여기까지 온 거야. 너도 어떤 경로로 여기까지 온 건지 조금은 알겠지만, 여하튼 유일한 너의 경로니까 말이에요. 우리에게 정해진 경로를 달리고 없으면 만들면 돼요. 언제까지 다른 사람 달리는 것을 보고 그렇게 아쉬워하고 욕심부릴 거니?"

 

"얘야, 편하게 달려. 욕심부리지 말고. 난 너무 욕심을 부려서 그런지 기록이나 먼 거리 달리기에서 남들 다하는 것들을 달성하지 못한 것 같아. 물론 서브 4도 하고, 100km 울트라 마라톤은 했지만 말이야. 너는 느긋하게 해요. 그냥 적당히 운동한다고 생각만 해도 얻을 게 얼마나 많은데... 난 무얼 얻으려고 그렇게 달렸는지 모르겠네. 아마도 버리기 위해서 잊기 위해서 달리는 게 아닌 건 분명해. 더 많이 갖고 더 오랫동안 지키고 싶어서 달리는 것은 분명해요. 알겠지?"

 

머야 이거? 영화 찍어? 누나 말이 백 번 맞았다. 순자 선배의 표현이 분명하고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표현함에 있어서 누추해 보이거나 지저분한 사람도 있다. 사실 가질 것도 버릴 것도 없는 사람이 가장 부자다. 다 가진 사람이 무얼 버리고 무얼 가지려고 하겠나. 인간은 예외 없이 누구나 가난하다.

 

2021년 11월 4일. 목. 장거리 훈련 준비로 쉼.

 

2021년 11월 6일. 토요 정모. 20도 따뜻. 13.03km. 1:17:47. 페이스 5:58

 

행복한 마음으로 볼 때 세상은 아름답다. 아니면 억지로라도 아름다운 환경에 노출되면 마찬가지로 아름답게 볼 때도 있다. 순수한 의도와 강한 의지력을 가지고 달릴 때 우리는 더 빨리, 더 먼 거리를 다치지 않고 달릴 수 있다. 오늘은 가평 설악산 계곡에서 명상 수련하시는 바쁘신 화자 선배님을 정모 자봉 하시라고 불러냈다. 친절하게도 허락하셔서 자봉 하러 나오셨다. 감사할 뿐이다. 나이 차이가 좀 나고, 젊고 반짝이며 아름다운 후배 러너들과 달리는 일은 힘들다. 쫓아가기도 빠쁘고 페이스를 맞추기도 힘들다. 그들은 그들대로 달리라고 하고 나는 나대로 달리기로 했다. 굳이 쫓아 달리지 않기로 한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모든 것을 누렸다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야 한다.  

 

나이 차이가 좀 나고, 젊고 반짝이며 아름다운 후배 러너들과 달리는 일은 힘들다. 쫓아가기도 빠쁘고 페이스를 맞추기도 힘들다. 그들은 그들대로 달리라고 하고 나는 나대로 달리기로 했다. 굳이 쫓아 달리지 않기로 한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 

 

춘천마라톤도 물론 버츄얼 대회로 열린다. 11월 12~21일 10일 동안 진행하고 달린 거리는 누적으로 계산한다. 풀코스를 신청했는데 아무래도 무리다. 여하튼 오늘 아침 순자, 식자, 현자와 7시에 영동 1교에서 만나 달리기로 했다. 자봉 나오는 선배를 맞이하고 테이블 준비로 참석하지 못했다. 나중에 만나고 나서야 잘 달렸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코로나 시국은 여전히 위태롭고 불안하다. 언택트 대회조차도 참가할 수 있는 것은 다 참가하는 중이다. 물론 기념품으로 티셔츠와 메달을 받는다. 마이런 서울 마라톤, 부산 바다 마라톤, 경주 마라톤을 달렸고 남은 대회가 공주마라톤 10km, 동아 서울 국제 마라톤 10km, 손기정 평화마라톤 하프코스, 춘천마라톤 풀코스를 버츄얼로 달려야 한다. 대회가 열리지 않으면서 받는 기념품과 메달은 사실 의미가 없지만 나름대로 시국이 어수선한 틈을 타 스스로 달리고 받는 거라서 제법 멋지고 폼난다. 

 

영동 1교에 7시까지 모여 함께 장거리를 달리자고 했지만 선배님이 자봉이었고, 테이블과 준비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 하는 관계로 시간에 맞춰 참가했지만 급히 나오느라 테이블을 챙기지 못했다. 늘 이렇다. 정신을 어디 두고 다니는 건지. 식자와 현자는 32km를 달리고, 순자는 하프코스를 달렸다. 

 

2021년 11월 9일. 화요일. 비 와서 쉼.

 

2021년 11월 10일. 수. 아침 눈발. 6도. 바람 조금. Erica 캠퍼스 13.56km. 1:10:00초 페이스 5:10. 기록 경신 10km 50:49초

 

화요일 훈련날에 비가 왔고, 목요 훈련일은 판교에서 약속이 있어 오늘 캠퍼스를 샅샅이 달렸다. 현재 73세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2005년 57세에 러너스 월드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같은 10년이라고 해도, 멍하게 사는 10년보다는 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생동감 있게 사는 10년 쪽이, 당연한 일이지만 훨씬 바람직하고, 달리는 것은 확실히 그러한 목적을 도와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사람의 생각이나 기호, 취향은 항상 변하는 것이라서 말이다. 사실 누구나 그런 고민을 할 때가 온다. 아낌없이 행복한 순간을 누리고 말 것인지, 아끼고 아껴서 오래 가져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때를 말한다. 자신 있게 말은 못 하겠다. 둘 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둘 다 중요한 것을 가지고 싶을 때는 반 씩 만 갖는다는 게 남자의 원칙이다. 계속 뒤를 돌아보면 과거를 벗어나지 못한다. 

 

11월 11일. 쉼.

 

11월 13일 토요일. 아침 1도. 맑음. 깃털 구름. 관문 운동장 왕복 13km. 

사람이 위험에 빠질 때가 있다.

 

11월 16일. 화. 13km. 영동 1교 왕복

 

11월 18일. 목. 성자 형님 만나고 현자, 순자 과천에서 일배.

저번 주 토요일 퇴원한 성자 선배를 청학루에서 만났다. 몸이 아주 깨끗해져서 눈빛이 맑아 보였다. 다친 날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되지 않는 모든 일은 잊힌다. 이야기로 남기기로 한다. 집에 모셔다 드리고 현자, 순자와 과천으로 갔다.

 

11월 20일. 토요일. 정모. 영동 1교. 6도, 포근함, 짙은 안개, 흐림.  

 

11월 21일. 일요일 32km. 관문 운동장 ~ 잠실 철교 왕복

6도 제법 추운 날씨, 32.05km 3시간 14분 27초, Pace 6:04

누구는 여수로 가을 여행을 가고, 춘자 현자와 7시에 만나 장거리를 달리자고 했다. 관문 운동장에서 각 이정표마다 거리는 정확하다. 영동 1교까지 왕복은 12km, 등용문까지 다녀오면 하프 21km, 잠실 철교까지 다녀오면 32km, 마지막으로 구리 암사대교까지가 풀코스 42km다. 하프를 달릴까 하다가 잠실 철교까지 내달린다. 철교에 도착해 다녀오시라고 하고 헤어진다. 무엇보다 달리기에 영향을 주는 것은 체온이다. 겨울엔 따뜻한 게 낫고, 여름엔 시원한 게 낫다. 체온은 우리 몸 상태를 정확히 반영한다. 잠깐 동안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느껴도 춥거나 더운 환경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위축되고 몸의 활성도가 낮아지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썩 좋은 기록은 아니었고, 체온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관문 운동장에 도착해서 집으로 와 한참을 정리하고 시간을 보내는 데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 누군가 힘들어 중간에 포기한 것 같았다. 12시가 지나 고릴라에서 만나 항정살에 한잔 꺾었다. 종자 선배를 불러냈는데 이게 또 아차였다. 하지만 결국 살아남았다.

 

11월 27일. 토. 13km. 캐나다 밴쿠버 러너와 영동 1교에서 관문 체육공원 왕복

모임에서 코로나 확진자 발생으로 11월 27~12월 4일까지 정모를 열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순식간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잘 대처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1933년 대공황의 한 복판에서 취임사에서 말했다. “우리가 유일하게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

어떤 대상에 대한 공포와 두려운 감정은 보통 두려움 그 자체보다 더 많은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심지어 스스로 삶을 포기하게도 만든다. 대부분의 사람은 두려움을 싫어한다. 두려움은 어떤 현상이나 경험을 예상했을 때 우리가 가지게 되는 불안한 감정으로 정의한다. 또한 의학 전문가들은 우리가 두려울 때 가지는 불안한 감정이 생물학적으로 동일하다고 한다. 우리가 개에게 물릴까 봐, 연인에게 차일까 봐, 그리고 세무조사를 받을까 봐 두려워할 때 우리는 똑같은 신체적 반응을 나타낸다. 두려움이 꼭 나쁜 감정은 아니라서 두려움은 다른 모든 감정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하나의 정보를 알려준다.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을 통해 자신의 심리적 상태를 이해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조급하고 쉽게 흥분하는 사람이 오히려 공포에 무덤덤하며 대수롭지 않게 행동하고, 사려 깊고 신중해 보이며 강한 동기를 부여하는 사람이 공포에 쉽게 굴복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의 문제다.  

 

11월 28일. 일. 19.5km, 5시간 20분, 페이스 3.5km. 관악산 둘레길 산행. 과천 향교-남태령 옛길-우면산-사당-낙성대 공원-호압사-석수역

 

산에 오르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적어도 천천히 오르고, 두루 돌아다니며 구경하듯 5시간 이내에 끝내고 하산하여 노는 산행을 좋아하지 훈련을 하거나 장시간 산에서 머무르는 것은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아침 7시 30분에 나가 밤 8시에 들어오니 전염병이 퍼지기 전에 마라톤 대회가 열리면 새벽 5시에 집을 나가 대회에 참가하고, 끝나고 뒷풀이로 놀다가 밤 12시가 되어서 들어오던 날들이 아련했다. 다시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뒷풀이를 하게 되면 반드시 새벽까지 놀다 들어오겠다는 생각을 한다.   

 

 

 

11월 2일. 화. 12km. 영동 1교 왕복

11월 6일. 토. 13km. 관문 왕복

11월 10일. 수. 13km erica 캠퍼스

11월 13일. 토. 13km 관문 왕복

11월 16일. 화. 13km 영동 1교 왕복

11월 20일. 토. 13km 관문 운동장 왕복

11월 21일. 일. 32km. 관문운동장~잠실철교

11월 27일. 토. 13km. 영동1교-관문 체육공원 왕복

11월 28일. 일. 19km. 관악산 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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