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서재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소설

지구빵집 2022. 2. 1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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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읽고 싶은 책을 고르면 SF 소설인 경우가 최근 자주 생긴다. 제목이 멋있어서 그런가?

 

이 소설집에는 각각 주제가 다른 7편의 SF소설이 실려 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관한 이야기이다. 유토피아 ‘마을’에서 디스토피아에 해당되는 지구로 순례를 떠난 후 돌아오지 않는 이유가 디스토피아에서 사랑을 찾았기 때문이며, 사랑 없는 유토피아에 사는 것보다 사랑이 있는 디스토피아에 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는 곧 알게 되겠지. 바로 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 그 세계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탄으로 차 있는지를. 사랑하는 이들이 억압받는 진실을. 올리브는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p.52

 

‘스펙트럼’은 우주 탐사를 떠났다가 40여년 동안 실종된 여성 생물학자 희진이 태양계 바깥의 행성에서 외계 지성 생명체 루이와 조우하여 동굴에서 함께 지낸 이야기이다.

 

연구노트 p.81

 

‘공생 가설’은 인간과 외계생명체의 공생관계를 그리고 있다. 신생아의 뇌 속에서 류드밀라 행성에서 왔다고 추정되는 외계생명체들이 물리적인 형태로 공생하고 있었으며, 이 외계생명체들은 수만년 전부터 신생아의 몸속에 깃들어 사랑, 윤리, 이타심과 같은 가치를 가르쳤다고 한다.

 

"유년기 이상으로 성장한 인간에게 머무르는 것은 그들에게 부담을 주는 듯합니다. '떠나고 싶지 않지만 이제는 떠나야 한다'라는 의미의 대화가 몇 군데 있었어요." p.135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우주 행성 간 이동이 가능해진 시대에 슬렌포니아 제3행성에 가기 위해 100년 넘게 우주정류장에서 혼자 우주선을 기다리고 있는 170세 노인 안나의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 갈 뿐인 게 아닌가?" - 안나 

 

냉동 수면 기술 p.158

 

우주여행이 일상화되어있는 미래 시대, 홀로 우주 정거장에 남아있는 ‘안나’는남편과 아들이 있는 슬렌포니아 제3 행성으로 가기 위해 우주선을 기다리는 중이다.

한 때 그녀는 과학 기술을 선도했던 저명한 과학자로서 ‘워프 항법’을 통해 인간을 다른 행성에 보내기 위한 동면 기술의 핵심 물질을 개발하던 사람이었다. 제3행성으로 이주할 계획이 있던 그녀는, 자신의 연구가 무르익자 남편과 아들을 새로운 행성으로 먼저 보냈고, 연구가 끝나는 대로 곧장 따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연구가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을 때, 또 다른 누군가가 동면 기술 없이 다른 행성으로 이동할 수 있는 '웜홀 항법’을 개발하게 되었고, 그녀의 연구는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더군다나 새로운 ‘웜홀 항법’에 비해 이전의 ‘워프 항법’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경제적 논리에 의해 서비스가 중단되었는데, 그녀의 가족이 있는 슬렌포니아는 웜홀 통로가 발견되지 않아 워프 항법으로만 갈 수 있는곳이었으므로 그녀는 실질적으로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게 된다. 

 

 

‘감정의 물성’은 행복, 침착, 공포, 우울과 같은 감정을 조형화한 제품에 관한 이야기이다. 침착의 비누를 만지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설렘 초콜릿을 한 조각 먹으면 마음이 두근거리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관내분실’은 죽은 사람들의 생애 정보를 데이터로 이식하여 보관하는 ‘마인드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민은 엄마의 영혼이 담긴 마인드의 인덱스가 도서관 내에서 분실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엄마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는 흔히 애증이 얽힌 사이로 표현된다. 딸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의 삶을 재현하기를 거부하는 딸.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앓는 딸과 딸에 대한 애정을 그릇된 방향으로 표현하는 엄마. 여성으로 사는 삶을 공유하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다른 세대를 살아야 하는 모녀 사이에는 다른 관계에는 없는 묘한 감정이 있다. 대게는 그렇다." p.239

 

"최근의 연구결과들은 영혼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스캐닝된 시냅스 패턴 더 이상 가소적으로 변형되지 않는다는 관찰이 이어지면서, 마인드가 영혼이 아니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죠. 한 사람의 자아는 끊임없이 변해 갑니다. 성장하고, 배우고, 반응하고, 노화 하면서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변형되지 않는 마인드는 영혼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은 시점에서 고정되어버린 일종의 박제된 정신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요?" p.255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우주비행사로 선발된 최재정이 우주 너머보다는 인간 몸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에 관심을 갖고, 18개월의 신체개조 장기프로젝트로 다져진 사이보그의 몸으로 우주 대신 깊은 바다로 홀연히 떠난다는 이야기이다.

 

판트로피 Pantropy란 우주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인간의 신체에 변형을 가하거나 환경에 맞추는 것을 말한다.

 

 

“제가 생각하는 SF의 장점은 개인의 이야기가 세계를 바꾸는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현실적인 문학에서는 불가능하지만요. SF 독자들은 좀 더 마음을 열고 읽습니다. SF는 구조와 세계에 과감한 질문을 던지기에 좋은 장르예요. 한 요소를 극대화해서 개인의 이야기와 연결해서 풀어나가는 게 가능하니까요."

- 2020년 서울 국제도서전 김초엽 작가의 강연 내용 중 

 

글이 실린 차례는 

  •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7~55p.)
  • 스펙트럼 (57~96p.)
  • 공생가설 (97~143p.)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145~188p.)
  • 감정의 물성 (189~218p.)
  • 관내분실 (219~271p.)
  •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273~319p.) 

실제로 7개의 이야기들 중 완전히 지구에서 일어난 이야기는 '감정의 물성'과 '관내분실' 정도밖에 없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외계 행성이 주 배경이며, '스펙트럼' 역시 지구가 아닌 행성이 주 배경이다. '공생가설'은 주 배경은 지구지만 포인트는 '류드밀라의 행성'이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주 배경이 우주 정거장이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역시 지구인들이 우주 저편으로 가는 것이 목표이며 전해주는 이야기는 지구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옆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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