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주 토요일부터 여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작년 이맘때 날씨는 엄청 더웠는데 올해는 전 주 저녁 훈련 때도 바람이 차콤차콤해서 여름이 늦게 올려나? 이번 여름에는 얼마나 더우려고 더위가 늦게 오나? 하고 생각했다. 토요일 훈련을 마치고 나니 햇살이 보통 뜨거운 게 아니다.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기대는 모든 고통의 원천이다. 그렇다고 함께 사는 가족이나 친한 동료에게 기대를 걸지 않는 일은 어렵다. 우리가 기대나 희망을 갖고 살면서 기쁨을 얻는 방법은 두 가지다. 삶은 모든 기대와 희망으로 쌓인 길이라서 때로 무너지고 실망하지만 바로 그런 것이 삶이니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마음이 하나고, 어쨌든 기대와 희망을 안고 살아가면 정말 좋은 날이 올 거다. 하고 살아가는 방법이 두 번째다. 어떤 것이 좋은지는 모르지만 둘 다 인생의 힘든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면에서는 같다.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 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도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어드벤처 디자인 2 수업은 거의 마무리 단계다. 필요한 프로그래밍 언어와 기본 실습 툴을 공부하고, 작품 아이디어를 팀원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저번 주 작품 발표회를 진행하였고, 작품을 설계하고 구현에 필요한 내용을 정리하여 아이들에게 전달했다. 가면 갈수록 아이들은 조금씩 좋아진다. 작년처럼 많은 흥은 안 나고, 아이들도 침착하고 조용하고 서둘지 않지만 알게 모르게 하는 일은 매주 볼 때마다 알 수 있다.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줄 수는 없다. 함께 만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해결하고, 규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방법은 계획을 바꾼다. 많은 시도와 실패, 더 많은 시도와 실패가 우리를 더욱 성공하게 만든다는 것만 기억한다.
학교는 25~28일 봄 축체를 진행한다. 한낮의 햇살이 좀 뜨겁지만 초록과 녹색으로 물든 캠퍼스에서 어떤 행사를 하든지 정말 가장 좋은 날씨다. 곳곳에 천막을 치고 모든 단과대학, 전공 과학생회와 동아리에게 주점을 만들어 준다. 특별한 곳에는 멋진 부스와 작은 공연장을 설치한다. 학생회관 뒤 호숫가 물을 일찍 빼고 파란 깔개를 바닥에 깐다. 연예인 공연과 응원단, 노래와 율동이 벌어지는 곳이다. 매표소도 운영한다. 외부인도 출입이 허용된다. 행사 스태프로 보이는 아이들은 예쁜 옷을 입고, 머리를 질끈 묶어 포니테일을 만들고, 아침 일찍부터 땀을 흘리며 천막을 꾸미고, 현수막을 달고, 집기와 인터넷을 확인하고, 전기를 끌어오고, 함께 할 인원을 점검하고, 여러 가지 소품을 나르느라 바쁘기만 하다.
축제를 좋아하고 떠들썩하게 노는 일에는 빠지 않는 남자는 구경이나 해볼까? 하고 생각하다가 혼자 돌아다니기 뻘쭘하다는 마음에 일이나 하기로 한다. 남자의 대학교 축제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선명히 기억에 남는 일은 없다. 다른 과거와 비슷하게 회색으로 물들어 있고, 여전히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을 때 서쪽 하늘에 나타나는 잿빛 노을이다.
1학년 때 들었던 동아리가 민속연구회였다. 역시 운동권 동아리다. 집회가 잦았던 날이라 끊임없이 길놀이에 동원되어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했고, 5월 축제가 시작되면 언제나 풍물패가 나선다. 장고 부대를 이끄는 수장고를 맏았던 남자는 길놀이를 하고, 무대에 올라가 사물놀이를 하면서 흥을 돋았다. 1학년 때에는 은율탈춤을 공연하고 2학년에 올라가서는 안동 하회탈춤을 무대에 올렸다. 길놀이가 끝나면 동아리 주점이나 과 동료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컴퓨터 공학과 주점을 찾아가 돈도 없이 밤이 새도록 술을 마셨다. 훤히 동이 트는 아침에 부스스 일어나면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 맞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의식하지 않아도 자기 검열이 일상인 시대, 대학생으로 산다는 게 굉장히 무겁게 느껴진,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어떤 자아비판이나 다른 사람의 비난도 감수하던 시대라서 두 가지 생각이나 다른 세상을 꿈꿀 수가 없었다. 언제나 나의 세상이 전부였고, 그 세상에 아주 잠시 머물다가 죽는 줄 알았다.
봄에 꽃이 활짝 피면 중간고사 기간에 무심천 향토 축제에 가서 놀고, 가을이면 청주대학교 축제에 찾아가 일어일문학과 지연이를 만나고, 강서 쪽에 교원대학이나 충청실업전문대학 동아리 패와 어울렸고, 육거리 꽃다리 옆에 있는 순대집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그렇다고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길이나 다 울퉁불퉁하고 진흙탕이 있다. 열심히 밀림 같은 숲을 빠져나오니 늪과 진흙탕이 나온다. 우리는 길을 갈 줄 안다. 손 맞잡고 질퍽거리며 웃으면 달려간다. 간단하다.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뚫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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