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연두에서 진한 초록까지 남김없이 자기 색감을 드러내는 5월이다. 이번 주말엔 남자가 부모님을 돌보는 주다. 서둘러 내려가려고 준비하지만 운동에, 술에 늦잠을 자고 이미 늦었다. 우리가 묶여 있는 과거와 일찍 화해할수록, 자주 용서할수록 과거가 미래를 망치게 하지 않는다. 힘든 일이지만 반드시 화해해야 한다. 남자는 부단히 화해하려고 애쓴다. 화해하지 못할 것 같으면 잊기라도 해야 한다. 사진, 폰 번호, 관계된 글은 모두 지울 수 있지만 이야기와 대화, 지난 기억은 지울 수 없다. 그러니 과거와는 항상 타협하고, 용서하고 관대하게 품어야 한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가 넘어지고, 버스에서 넘어지고 하면서 몇 번 다친 후로 남매들이 주말마다 교대로 내려가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돌보고 있다. 교통사고로 입원했다가 일주일 정도 지나서 뇌출혈이 온 큰 누나가 재활 병원에 계신다. 좋은 일은 드물게 하나만 온다. 그래서 기쁨을 느끼는 정도가 강하면서도 짧게 지나간다. 나쁜 일은 몇 개가 겹쳐온다. 그래야 가장 큰 나쁜 일에 집중하느라 자잘한 고통들은 쉽게 잊어버린다. 삶은 오묘해도 이렇게 오묘할 수가 없다.
"3월 10일 엄마 다음주중에 가경동에 씨앤씨 재활병원으로 옮기려고 해요 2~3주 전에 상담받았었는데 지금 하나병원에서는 간단한 전기자극이랑 마사지밖에 재활 쪽으로 하는 게 없어서 당장 투석은 안 하시니까 재활병원 쪽이 나을 것 같아요."
"2월 24일 종완이랑 통화내용. 어제 의사 면담, 혈액 투석 위한 혈관수술 낼 예정, 2주 정도 지난후 뇌질환 전문 재활병원으로 옮길 거래, 하나병원 가까운데 C&C라고 오늘 상담했다고... 일 년에 기본 600만 원쯤 비용 든다고 함 , 3월 중으로 차 정리하라고 했고 집 전세 뺄 거니까 정리 좀 얼른 해야겠다."
3월 14일 고속버스 터미널 근처 씨엔씨 푸른병원에 입원하고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부모님을 돌보는 차례가 되어 주말에 내려가 면회를 갔다. 자의식이 누구보다 강하고, 독립적이면서 삶에 대한 강한 근성을 가지고 있는 큰 누나는 자신의 상황이 억울한 것처럼 서럽게 운다.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직장이나 주변에 대해 완벽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불만이 많다. 대하는 것들이 모두 허섭스레기 같고, 마음에 들지 않으니 잔소리도 많아지고 늘 가르치려 든다. 누나는 그랬다. 면회하는 30분 동안에도 말을 하고 싶고, 자기 의견을 쉬임 없이 말하지만 입으로 나오는 소리는 "아더 더 드느느 아거거" 소리뿐이다. 감정이 기복이 느껴지고 조금 목소리에 힘이 없어지면서 또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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