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수행

카르투시오 수도회 회헌 1권

지구빵집 2022. 8. 16.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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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투시오 수도회 회헌

 

가톨릭 수도회 가운데 가장 엄격하다고 할 수 있는 카르투시오 수도회(11세기 성 브루노에 의해 창설)는 총회에서 한국 진출을 결정하여 이미 수 년전에 2명의 신부를 파견하여 공동체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경북 상주에 수도원을 짓고 있으며, 조만간 건축이 완공되면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카르투시오회 수도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세상으로부터의 철저한 이탈로 고독과 침묵 속에서 하느님만을 찾고자 하는 이러한 수도회가 한국에 진출한 것은 참으로 뜻 깊은 일이며, 한국 교회에 영적인 풍요로움을 더 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형태의 수도생활이 한국 땅에 깊이 뿌리내리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서는 아직까지도 카르투시오회 삶과 영성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 수도회 자체가 낮설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삶과 영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한국어로 번역된 카르투시오회의 회헌을 순차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여기서 소개할 회헌 번역 본문은 그들의 요청으로 작년에 허 가브리엘 신부와 본인이 공역한 초안임을 밝혀둔다. 아래의 회헌의 목차를 통해 앞으로 게제할 내용을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목 차

 

제1장 카르투시오회 헌장 서언

제2장 귀고의 고독한 삶에 대한 찬양

 

제1권 봉쇄 수도승들

 

제3장 봉쇄 수도승들

제4장 독방과 침묵의 준수

제5장 독방에서의 일들

제6장 봉쇄의 준수

제7장 단식과 극기

제8장 수련자

제9장 수련장

제10장 서원

 

제2권 평수도승들

 

제11장 평수도승들

제12장 고독

제13장 봉쇄

제14장 침묵

제15장 노동

제16장 단식과 극기

제17장 수련자

제18장 서원

제19장 기부

제20장 수사 양성

 

제3권 공동체

 

제21장 매일의 전례 거행

제22장 공동체의 삶

제23장 원장

제24장 조언을 구함

제25장 대리자와 원로

제26장 당가

제27장 병든 형제

제28장 가난

제29장 재산의 관리와 감독

제30장 정주

 

제4권 카르투시오회

 

제31장. 수도회의 통치

제32장 교회법적 시찰

제33장 삶의 전향

제34장 교회 안에서 우리 수도회의 역할

제35장 헌장 자체에 대해서

 

 

제1장

 

카르투시오회 헌장 서언(Prologus in Statuta Ordinis Cartusiensis)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아멘.

 

1.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하여 성부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처음부터 성령을 통하여 어떤 사람들을 간택하셨는데, 그분은 그들을 고독으로 인도하시어 친밀한 사랑으로 당신 자신에게 일치시키기를 원하셨다. 그러한 소명에 순명하여 사부 성 브루노와 여섯 명의 동료들은 우리 주님의 해인 1084년에 샤르트르즈 사막으로 들어가 거기에 정착하였다. 그들과 그 후예들은 성령의 인도 하에 체험으로 배우면서 점차 특별한 형태의 은수생활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삶은 기록된 말로써가 아닌 모범을 통해서 후대에 전해졌다.

 

샤르트르즈에서의 그 삶을 모방하여 설립된 다른 은수처들의 계속된 요청에 그렁 샤르트르즈의 제5대 원장 귀고는 그들의 생활 양식을 위한 규정을 쓰는데 전념하였다. 그들 모두는 이것을 그들의 신생 공동체의 사랑의 유대를 위한 그리고 준수할 규칙으로서 따르고 모방하기 시작하였다. 그 다음 카르투시안 규율을 지키는 다른 원장들이 그 공동체에서 전체 모임을 열도록 오랫동안 그렁 샤르트르즈의 원장들과 회원들에게 그 허락을 요청한 후, 앙틀(Anthelme) 원장좌 수도원에서 최초의 총회가 개최되었고, 그렁 샤르트르즈를 포함한 모든 공동체들이 그 총회에 항구히 서약하였다. 이 때 또한 프레베이옹(Prebayon) 수녀들이 자발적으로 카르투시안 삶을 받아들였다. 이것이 우리 수도회의 시초였다.

 

2. 시간이 지나면서 총회는 경험의 가르침과 새로 생겨나는 상황들을 고려하여 카르투시안 삶의 형태를 적응시켰고, 그럼으로써 우리 헌장을 견고히 하고 분명하게 하였다. 우리의 관습들에 대한 이러한 지속적이고 세심한 적응으로부터 점차 많은 규정들이 축적되었기 때문에, 1271년 총회는 귀고의 관습들과 그렁 샤르트르즈의 관례들과 함께 이 총회의 규정들을 통합하여 하나로 만든 옛 헌장을 반포하였다. 1368년에 다른 문서들이 부가되어 새 헌장으로 불려졌다. 그리고 1509년에 문서들이 첨부되었는데, 이것이 제3차 편집이었다.

 

트리엔트 공의회 때, 기존의 세 개의 모음집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새 법규집이라고 명명하였다. 이것은 제3판으로서 교황 인노첸시오 11세의 사도적 헌장, “Iniunctum Nobis”을 통하여 특별한 형태로 승인되었다. 하지만, 교회법 규정들에 맞게 개정된 새 판이 교황 비오 11세의 사도적 헌장, “Umbratilem”을 통해서 다시 특별한 형태로 승인되었다.

 

3. 참된 교회일치적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요청에 따라 세상으로부터의 분리와 관상생활에 고유한 수행들은 엄격히 유지되면서 우리 삶의 양식에 대한 적절한 쇄신이 공의회 교령의 정신에 따라 착수되었다. 그 결과 1971년 총회는 새로 개정된 헌장을 승인하고 반포하였는데, 이는 수도회의 모든 회원들의 협력으로 수정되고 개정되었다.

 

이 헌장은 1983년에 반포된 교회법과 일치시키기 위하여 다시 개정되어 두 부분으로 나뉘어졌는데, 그 가운데 책 제1권에서 제4권을 포함하는 첫 번째 부분은 수도회의 회헌(Constituiones)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겸손한 형제들, 곧 앤드루, 그렁 샤르트르즈의 원장, 그리고 1989년 총희의 다른 구성원들은 현재의 이 헌장을 승인하고 추인하는 바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전의 법규들 특별히 가장 초기의 법규가 잊혀지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오히려 그것들이 더 이상 법적인 구속력을 지니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들의 정신이 우리의 현 규율 안에 계속해서 살아 있게 되기를 바란다.

 

4.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초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구원과 완성으로 이끄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풍부히 채워주시면서 카르투시안 공동체를 양육하시고 이끄시고 보호하시기 위하여 얼마나 자비롭게 안배해 오셨는가를 생각하면서, 하느님의 자비와 선을 통하여 우리 회의 모든 서원자들과 양성자들에게 우리 주 하느님 쪽에서의 그러한 자부적인 관대함과 호의에 각자 자신의 소명과 과업 안에서 가능한 모든 감사로 응답하기 위하여 노력하기를 권고하고 당부하는 바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외적 행위를 올바르고 적합하게 규제하고 개선시키면서 우리 영혼 깊은 곳에서 하느님 자신을 더욱더 열렬히 찾고, 더욱더 빨리 발견하고, 더욱더 완전하게 소유하기 위하여 이 헌장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진 정규 규율을 충실하고 진지하게 실천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성취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우리 서원과 전 수도승생활의 목적인 완전한 사랑에 도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해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다.

 

제2장

 

귀고의 고독한 삶에 대한 찬양(De Guigonis commendatione solitariae vitae)

 

1. 고독을 찬양한 이 수도승들은 그들이 참으로 체험한, 그러나 그 완전한 실현은 오로지 천국을 위해 유보된 보화들인 어떤 신비를 증거하기를 원했다. 고독 속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위대한 성사가 실현된다. 우리는 이에 대한 탁월한 모범을 복되신 동정 마리아 안에서 발견한다. 모든 것은 충실한 각 영혼 안에 전적으로 감추어져 있고, 그것은 고독의 덕행을 통하여 그 깊이가 더 잘 드러난다.

 

그러므로 귀고의 관습들로부터 취해진 다음 장에서 실제로 성령으로부터 우리 수도회의 초기 법규들을 편집하도록 위임받은 귀고의 영혼으로부터 발사된 빛의 섬광들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제5대 원장의 이러한 말들이 만일 고대의 우의적 방법에 따라 성서를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을 올바로 이해할 때, 그것들은 동일한 은총의 향유 안에 우리를 우리 교부들과 결합시키는 최상의 진리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2. 우리가 특별한 방법으로 부르심 받은 고독한 삶을 찬양함에 있어 우리는 간단히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많은 성인들과 그렇듯 큰 권위를 지닌 현인들이 고독을 열정적으로 권고하였다는 것과 또한 우리가 그들의 발자취를 따를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3.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구약성서 안에, 그리고 더욱더 신약성서 안에 보다 크고 보다 심오한 거의 모든 신비들이 하느님의 종들에게 계시되었는데, 이는 요란스런 소음 속에서가 아니라, 그들이 홀로 있을 때였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하느님의 종들이 어떤 영적 진리를 보다 깊이 통찰하고자 했거나 혹은 보다 큰 자유로 기도하고자 했을 때, 또는 영혼의 열렬한 고양으로 지상적인 것들에 이방인이 되고자 했을 때, 거의 언제나 고독의 은혜들을 위해 많은 장애물을 피하였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4. 따라서 이해를 돕기 위하여 몇 가지 예를 들면, 이사악이 묵상 장소를 찾아 혼자 들로 나갔을 때, 이는 우연적인 일이 아니라 그의 통상적인 일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게다가 야곱이 하느님 앞에서 그분의 사자(使者)를 처치하면서 면전에서 하느님을 뵌 것과 축복과 새롭고 보다 나은 이름으로 특전을 부여받은 것은 그가 혼자 있을 때였다. 그러므로 사람들 가운데서 보내는 전 생애 동안 받는 것보다도 고독의 한 순간에 더 많은 것을 받게 된다.

 

5. 성서는 또한 모세와 엘리야와 엘리사가 고독을 얼마나 존중하였으며, 또한 고독을 통하여 그들이 얼마나 신적 비밀들의 계시 안에서 성장하였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리고 그들이 사람들 가운데 있을 때 어떤 위험들이 계속해서 그들을 감쌌는지, 또 그들이 홀로 있을 때 하느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방문하였는지를 알려준다.

 

6. 하느님의 진노 광경에 의해 압도된 예레미아 역시 홀로 않아 있었다. 그는 자기 백성의 죽음을 애통해하기 위하여 자신의 머리가 분수가 되고, 자기 눈이 눈물샘이 되기를 요청하였다. 그리고 “오, 제가 사막에서 여행자의 은신처가 되게 하소서!”라고 부르짖으며 이 거룩한 일에 더욱 더 자유로이 투신하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이는 그가 도시에서는 이 일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암시하고 있고, 또 동료들이 눈물의 은사에 방해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예레미아는 또한 “인간이 침묵 중에 하느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낫다”고 말하였다. 이는 고독을 갈망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그것은 또한 젊을 때부터 멍에를 진 사람에게도 유익하다.” 이 말들은 바로 우리와 젊어서부터 이러한 소명을 받은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텍스트이다. 그는 다시 “그 고독가는 앉아서 침묵을 유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를 자기 위로 들어올릴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 예언자는 평화, 고독, 침묵 그리고 천상적인 것들에 대한 불타는 갈망,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에 최상의 것들이라고 언급한다.

 

7. 예레미아는 후에 이 학교에서 양성된 사람들의 최상의 인내와 완전한 겸손의 한 예로서 “군중의 조롱과 비웃음으로 뺨을 맞고 용감히 견디어낸”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8.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 가운데 그 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없었다고 구세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세례자 요한은 고독의 유용성과 안전성에 대한 또 다른 탁월한 예이다. 그는 모태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하며, 엘리아의 영과 능력 안에서 주 그리스도에 앞서 온다고 신적 예언이 예시한 그 사실과 또 그의 탄생이 기적적이었고 그의 양친이 성인들이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면서, 그는 어떤 위험스러운 것으로서의 인간 사회를 떠나 안전한 사막의 고독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가 사막에서 혼자 거주하는 동안 그는 위험도 죽음도 몰랐다. 더욱이 거기서 그가 이룬 덕과 공로는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주라는 그의 독특한 부르심을 통해서 그리고 정의를 위해 그가 죽음을 수용함으로써 충분히 확인되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 가운데 혼자인 그는 고독 속에서 고결하게 단련되어 모든 것을 깨끗이 씻으시는 그리스도를 씻기에 합당하게 되었고, 또한 진리를 위하여 감옥의 차고와 죽음 자체를 견디기에 합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9. 하느님이시요 주님이신 예수의 권능은 사회적인 접촉으로 인한 방해와 고독의 도움 모두를 초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 자신은 당신 모범으로써 우리를 가르치시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설교를 하거나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그분은 실제로 사막의 고독 속에서 단식과 유혹의 기간을 통해 시험받았다. 성서는 홀로 기도하기 위하여 당신 제자들을 남겨두고 산에 올라가시는 그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기도를 도와주는 것으로서 고독의 가치에 대한 탁월한 예가 있는데, 곧 당신 수난이 막 다가오고 있을 때조차 그리스도께서는 홀로 기도하시기 위하여 사도들을 떠났다. 이는 기도를 위해서는 고독이 사도단에 조차 선행한다는 분명한 암시이다.

 

10.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가장 깊이 숙고할 만한 가치가 있는 하나의 신비를 언급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다. 바로 이 주님이시요 인류의 구세주이신 분께서 홀로 기도하러 사막으로 물러가시고, 단식과 밤샘기도와 다른 고행들로 당신 육체를 고되게 다루시면서, 그리고 영적인 무기들로 악마와 유혹들을 물리치시면서 기도와 내적인 삶에 투신하셨을 때, 우리 카르투시안 삶의 최초의 본보기로서 살고자 하셨다는 사실이다.

 

11. 이제 여러분은 거룩하고 공경하올 교부들인 바오로, 안또니오, 힐라리오, 베네딕도 그리고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고독을 통해서 얻은 위대한 영적인 은혜들에 관해 숙고하라. 그러면 여러분은 시편의 영적인 감미로움을 맛보고, 기록된 페이지의 메시지를 통찰하고, 열정적인 기도의 불을 지피기 위하여, 또한 깊은 묵상을 시작하고 신비적 관상 안에서 자신을 상실하며 정화하는 눈물의 천상적 이슬을 얻기 위하여 고독 보다 더 유익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데에 기꺼이 동의할 것이다.

 

12. 그러나 여러분은 우리 소명에 대한 찬양에 있어 위의 예들에 만족해서는 안될 것이다. 여러분은 현재의 체험으로부터이건 혹은 성서의 구절들로부터이건 더 많은 것을 한데 모으도록 하라.

 

제3장

 

봉쇄 수도승들(De monachis claustri)

 

1. 우리의 수도 교부들은 동방으로부터 온 빛의 추종자들이었다. 즉 초기 동방 수도승들의 모범을 따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마음 속에 최근에 주님이 흘리신 피를 기억하여 정신의 가난과 고독한 삶을 살기 위하여 사막으로 몰려들었다. 이에 따라 같은 목적을 추구하는 봉쇄 수도승들은 그들이 한 것처럼 해야한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막으로, 그리고 세상의 소음과 심지어 수도원 자체의 소음이 제거된 독방으로 물러나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특별한 방법으로 모든 세속적인 소식들로부터 스스로 이방인이 되어야 한다.

 

2. 자기 독방에서 계속 충실하게 머물고, 그로써 스스로를 형성케 하는 수도승은 점차 그의 전 삶이 지속적인 기도가 된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고된 전투를 치르지 않고서는 이러한 영적 안식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이 전투는 십자가의 법칙에 충실하며 엄격히 생활함으로써, 그리고 하느님께서 용광로 속의 황금처럼 그를 단련시키시는 수단들인 시련들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런 식으로 인내의 밤 속에서 정화되고, 부지런한 성서 묵상을 통해 위로를 받고 지탱되며, 성령을 통해 그의 마음 깊은 곳으로 이끌려질 때, 그는 이제 하느님께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랑 안에서 그분께 결합할 준비가 된다.

 

3. 일정량의 손노동 또한 행해져야 한다. 이는 단순히 시간을 때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공통법에 육체를 종속시키는 것은 영적인 수행들에 있어 기쁨을 유지하고 증진시키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각 수도승에게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연장들을 주어 독방을 나오는 일이 없게 할 것이다. 공동체가 성당이나 봉쇄구역 안에서 모일 때나 또는 규칙이 정한 경우들을 제외하고는 독방을 나오는 것은 결코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받아들인 삶의 양식이 보다 엄격한 만큼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에서 그만큼 더 엄격하게 가난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풍요로움을 나누기를 원한다면 그분의 가난을 본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4. 주님께 대한 사랑, 기도, 그리고 고독을 위한 열정으로 일치된 봉쇄 수도승들은 단지 이름으로 뿐만 아니라 또한 행동으로 그들 자신이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임을 드러내야 한다. 조화롭게 생활하면서 또 서로에게 관대하며 그들은 상호 사랑에 열정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만일 누가 다른 이를 거슬러 불만을 가지게 된다면 서로를 용서하라. 그러면 그들은 함께 한 소리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이다.

 

5. 신부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평수사들과 친밀한 일치를 가져야 함을 명심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 독방의 평화와 고독 속에서 주님께 순수한 기도를 봉헌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그 형제들 덕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또한 자신들의 사제직은 교회, 특별히 그들에게 가까운 이 구성원들, 즉 그들 공동체 안의 평수사들에 대한 봉사를 위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서로 다투어 공경하면서 신부들과 평수사들은 완덕의 끈이자 하느님께 바쳐진 모든 삶의 정점이자 동시에 토대인 사랑 안에서 살 것이다.

 

6. 원장의 임무는 하나의 가족을 형성하고, 우리의 각 공동체가 참으로 귀고가 말하는 ‘카르투시안 교회’가 되도록 자신의 모든 아들들, 곧 신부들과 평수사들을 그리스도 안에 일치시키면서 그들 모두에게 우리의 천상 아버지의 사랑을 비추어주는 것이다.

 

7. 이 모든 것은 유효한 일치의 표지인 성체성사의 거행 안에서 그 뿌리와 중심을 발견한다. 성체성사는 고독 속에서 우리의 출애굽을 위한 영적 양식이자 동시에 우리 삶의 중심이자 정점이다. 우리는 그 영적 양식인 그리스도를 통해 성부께 되돌아간다. 전체 전례주기를 통해 그리스도는 우리의 사제로서 우리를 위해, 그리고 우리의 머리로서 우리 안에서 기도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 안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우리 안에서 그분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비록 언제나 분별있게 조절된다 하더라도 고대의 관습에 따라 우리의 야간기도는 충분히 연장된다. 이런 식으로 시편은 우리의 내적 열성을 키우고, 게다가 우리로 하여금 피로나 권태 없이 은밀한 마음의 기도에 우리 자신을 바칠 수 있게 한다.

 

8. 우리의 옛 관습에 따라 모든 봉쇄 수도승은 제단의 거룩한 직무에로 불린다. 우리는 그 안에서 하느님 자비의 놀라운 선물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바오로 6세가 증거한 사제적 축성과 수도승적 축성 사이에 존재하는 조화를 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 그 수도승은 사제이자 동시에 그의 향기가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희생제물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님의 희생에 결합함으로써 그는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의 풍요로움을 나누게 된다.

 

9. 우리 수도회는 전적으로 관상에 바쳐졌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의 분리를 엄격하게 유지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서 우리의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활동 사도직의 요구가 아무리 절박하다 하더라도 모든 사목적인 직무로부터 제외된다.

 

마르타가 그러한 직무를 갖는 것은 찬양할만하지만, 그녀는 근심과 걱정 없이 직무를 수행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자매가 그리스도의 발치에 않아 있도록 내버려둔다. 마리아는 침묵 중에 그분께서 하느님이심을 알고, 그녀의 정신을 정화하며, 그녀의 영혼 깊은 곳에서 기도한다. 그리고 그녀는 하느님께서 그녀 안에서 말씀하시는 바를 듣고자 노력한다. 따라서 그녀는 비록 어두운 거울 안에서 희미하게 나마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를 다소 보고 맛본다. 동시에 그녀는 마르타처럼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이에 있어 마리아는 가장 공정한 심판관일 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장 충실한 변호인, 곧 주님 자신을 소유하게 된다. 그분은 그녀의 생활방식을 방어하실 뿐만 아니라, “마리아는 그녀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가장 좋은 몫을 택했다”고 말씀하시며 그것을 찬양하기까지 하신다. 이 말씀으로 주님은 마리아에게 마르타의 근심과 걱정에 연루되는 것을 면해주셨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도 경건하고 탁월할 수 있다.

 

제4장

 

독방과 침묵의 준수(De cellae et silentii observatione)

 

1. 우리의 주된 노력과 목표는 독방의 침묵과 고독에 투신하는 것이다. 독방은 거룩한 땅이며, 인간이 자기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주님과 그분의 종이 자주 이야기하는 장소이다. 거기서 충실한 영혼은 자주 하느님의 말씀과 일치되고, 신부는 그녀의 신랑과 하나가 된다. 거기서 지상은 천상에 결합되고, 신성은 인성에 결합된다. 하지만 그 여정은 길고, 약속의 땅에 있는 샘에 도달하기 위하여 가야할 길은 건조하고 메마르다.

 

2. 그러므로 독방 거주자는 정상적으로 규정된 경우들 외에 외출할 기회들을 만들거나 받아들이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오히려 그는 물고기에게 물이, 그리고 양에게 양우리가 필요한 것처럼 독방을 자신의 구원과 생명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그가 하찮은 이유들로 자주 독방을 나가는 습관을 들이게 되면, 그것은 즉시 그에게 해롭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우구스띠노가 “이 세상의 벗들에게는 일하지 않는 것 보다 더 힘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표현한 바와 같다. 이와 반대로 그가 독방에 더 오래 머무르면 머무를수록 그는 더욱 더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독서, 저술, 시편 암송, 기도, 묵상, 관상 그리고 노동을 통하여 질서 있고 유효하게 거기에 머무는 경우에 한해서이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마음으로부터 고요히 경청하는 습관을 들여 하느님께서 모든 길과 모든 문을 통해서 거기에 들어오시도록 허락한다. 그는 이렇게 하느님의 도움으로 자주 그 은수자를 노리는 위험들을 피할 것이다. 그 위험들은 너무 쉽게 독방의 길을 따르는 것이며, 또한 결국 무기력한 사람들의 수에 드는 것이다.

 

3. 오직 침묵을 체험한 사람만이 침묵의 열매들을 안다. 우리 삶의 초기에는 침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그러한 노력에 충실하면, 점차 우리의 침묵 자체로부터 우리 안에 어떤 것을 낳아서 우리를 더욱 깊은 침묵에로 이끌게 될 것이다. 장상의 허락 없이 우리가 서로 이야기하지 말도록 규정된 것은 바로 여기에 이르기 위한 것이다.

 

4. 우리 형제들을 위한 사랑의 첫 번째 행위는 그들의 고독을 존중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어떤 일 때문에 이야기 할 허락을 얻게되면, 가능한 한 간략히 말할 것이다.

 

5. 허락을 얻어 독방을 나가는 수도승은 특별한 허락 없이 낮선 사람들이나 혹은 수도원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또는 다른 수도승들과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허락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는 사업상의 일들과 수도원(house) 관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또는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일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 관리자들의 영역인 이러한 일에 대해서 아는 것은 독방 거주자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더 나아가 이것은 전체 공동체의 평화를 해치게 된다. 침묵 중에 홀로 남아 있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

 

6. 우리는 허락 없이 다른 사람의 독방에 들어가서는 않는다. 만약 누군가 허락을 얻고 오면, 그는 통보 없이 들어가지 않고 문에서 노크를 하고 그 방의 주인이 그에게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런 다음 허락을 얻은 그 사람은 종교적인 인사를 한다. 그리고 그가 거기에 머물러 있는 동안 독방 문은 반쯤 열려 있게 한다.

 

7. 누군가 허락을 얻어 다른 사람의 독방에 있거나 독방 밖의 다른 곳에 있을 때, 만일 그가 더 오래 머무를 특별한 허락을 받지 않았다면, 저녁 삼종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면 즉시 그곳을 떠나야 한다. 만일 매우 절박한 이유가 아니라면 저녁 삼종부터 제1시경까지 말하는 것은 금지된다.

 

8. 그러나 만일 누군가 독방 밖의 어떤 것을 필요로 하거나 혹은 어떤 위험의 우려가 있음을 느끼면, 독방을 떠나 도움을 주거나 또는 청하는 것이 허락된다. 그리고 만일 그 필요성이 매우 긴급할 경우 몇 마디 말로 필요한 바를 알리는 것이 허락된다.

 

9. 우리 수도회의 회원이 아니거나 또는 회원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의 독방에 머무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10. 봉쇄 수도승들은 매년 8일 동안 독방의 고요와 명상에 보다 철저하게 정진한다. 관습에 따라 각자의 서원 기념일은 이것을 행하기에 적합한 때이다.

 

11.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말씀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고독으로 이끄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주님을 향하여 순수한 기도가 올려지는 살아 있는 제단이며, 이러한 기도로 우리의 모든 행위가 고취되어야 한다.

 

제5장

 

독방에서의 일들(De operibus cellae)

 

1. 봉쇄 수도승은 그의 의무 수행에 있어 노동에 대한 거룩한 법을 따르며, 고대인들이 영혼의 적이라고 하는 한가함을 피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가난하고 고독한 삶이 요구하는 모든 과업을 겸손하고 기쁘게 수행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신적 관상의 직무에로 질서 지어지는 식으로 행해져야 한다. 그는 신적 관상의 직무에 전적으로 축성되었다. 다양한 종류의 손노동 외에 그의 신분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의무들, 특히 신적인 예배와 신학 공부와 관련된 일들은 그의 노동의 한 부분을 이룬다.

 

2. 무엇보다도 먼저 독방에서 수도생활의 시간을 헛되이 소모해서는 안 된다. 그는 열성과 분별로 그에게 적합한 공부들에 전념해야 한다. 이는 배움에 대한 갈망이나 책을 출판하려는 갈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혜롭게 질서 잡힌 독서가 영혼에 보다 큰 힘을 부여하며 관상에 천상적인 토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느님 말씀에 대한 공부를 소홀히 하거나 또는 후에 그것을 포기하면서도 하느님과의 내적인 일치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실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들의 거품보다도 오히려 의미들의 진수를 찾으면서 사랑으로부터 나고 사랑에 불을 붙이는 분을 알고자하는 갈망으로 신적 신비들을 탐구하도록 하자.

 

3. 수도승은 손노동을 통하여 겸손을 실천하며, 또한 내적인 정주에 보다 잘 도달하기 위하여 자신의 온 육체를 통제한다. 그러므로 그는 정해진 시간에(제46장 8항) 손노동을 하는데 바칠 수 있다. 이 일은 참으로 유익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하여 그에게 주어진 귀한 시간을 헛되고 불필요한 일들로 낭비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간에서 독서와 기도의 유익함이 배제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일하는 중에 적어도 짧고 간절한 기도에 의지하도록 늘 권고된다. 때때로 일의 무게는 닻처럼 생각의 흐름을 붙들어 매어 정신의 피곤함 없이 하느님 안에 마음을 붙박아 둘 수 있게 해준다.

 

4. 노동은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고 섬기러 오신 그리스도께 우리를 결합하는 하나의 봉사이다. 형제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하여 가능한 한 독방에서 사용하는 가구와 도구들과 다른 물건들을 스스로 잘 관리하는 사람들은 칭찬할만하다. 그러나 모두는 독방을 깨끗하고 정돈되게 유지할 의무가 있다.

 

5. 원장은 언제나 어떤 신부에게 공동선에 유익한 어떤 일이나 봉사를 부과할 수 있다. 그러면 그는 이것을 기꺼이 사랑의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서원식 날에 그가 모든 이들 가운데 가장 겸손한 종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봉쇄 수도승에게 어떤 일을 맡길 때, 언제나 정신의 자유로 행할 수 있도록 해야하며, 수익이나 혹은 지켜야할 기한에 대한 걱정 없이 하게 해야한다. 왜냐하면 일 자체보다도 오히려 그가 추구하는 목표에 주의를 기울이는 은수자는 마땅히 자신의 마음을 늘 깨어 있게 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도승이 고독 중에 고요하고 건강하게 머물러 있기 위해서 그가 자신의 일을 조정하는데 있어 어떤 자유를 갖는 것이 종종 타당할 것이다.

 

6. 통상적으로 신부들은 특히 수사들에 대한 순명에서가 아니라면 독방 밖에서 일하도록 요청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만일 신부들의 그룹이 함께 일하도록 위임받는 일이 생기면, 그들은 그들의 일에 유용한 사항들에 관에 서로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 할 수는 없다.

 

7. 그러므로 우리의 활동은 성부께서 그분 안에 머무시며 역사하신 그러한 방식으로 언제나 성부와 함께 일하신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 내적 원천으로부터 흘러나온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은밀히 성부께 드리는 기도를 통해서건 혹은 성부의 현존 안에서 순명으로 하는 노동을 통해서건 간에 겸손하고 감추어진 예수의 나자렛 삶으로 그분을 따르게 된다.

 

제6장

 

봉쇄의 준수(De custodienda clausura)

 

1. 그 기원에서부터 우리 수도회의 정신은 매우 엄격한 봉쇄를 통하여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전적인 투신이 표현되고 유지되게 하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중대한 필요성 없이 외출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이는 샤르트르즈의 원장이 결코 자기 은수처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충분히 드러난다. 하나의 수도회가 모든 서원자들에게 동일한 삶의 규칙을 부과하는 것처럼, 카르투시오회의 소명을 받아들인 우리는 - 여기서 카르투시안이라는 우리의 명칭이 유래한다 - 이 점에 있어서의 예외들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필요성이 우리에게 그것을 강요한다면, 긴급한 경우와 헌장에서 규정된 다른 경우들을 제외하고 언제나 총원장(the Reverend Father)에게 허락을 청할 필요가 있다.

 

2. 원장과 당가(Procurator)는 예외로 하고, 봉쇄 수도승은 어떤 사업상의 이유로라도 수도원을 벗어날 수 없다. 허락 없이 로마 교황청에 가는 것조차 금지된다. 하지만 민간행정과 관련된 불가피한 교섭 때문에, 원장은 어떤 수도승에게 당일 귀원하는 조건 하에 총회와 총원장의 동의로 시찰관들을 통해서 지정된 인근 도시들에 가는 것을 허락할 수 있다. 외출할 허락을 얻은 그 수도승은 오로지 그의 외출 용무와 관련된 사람들과 장소만을 방문해야 한다.

 

3. 원장은 성직자들의 입회를 위해 자기 수도승들을 그 지역의 주교좌 도시로 파견한다. 만일 거기서 성직자들을 구하지 못하면, 성직자들이 있는 인근 지역으로 파견한다. 그렇듯 큰 은총으로 받아들여진 사람들, 특히 서품된 사제들은 가능한 한 고독과 침묵 중에 그 날들을 보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부모들을 향한 애덕의 의무들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

 

4. 그러나 만일 엄격한 봉쇄가 마음의 순결에 대한 표지가 아니라면 그것은 바리사이적인 율법준수로 바뀔 수 있다. 오로지 마음이 순수한 사람에게만 하느님을 보는 것이 허락된다.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위대한 포기가 요구된다. 특별히 사람들이 인간적인 일들에 대해서 느끼는 본성적인 호기심에 대한 포기가 요구된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이 소식들과 소문들을 찾아 세계일주를 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우리의 몫은 주님 현존의 은신처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5.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내적 침묵을 방해할 수 있는 세속적인 책들이나 정기 간행물들을 피해야 한다. 특히 정치적인 사건들에 대해서 말하는 신문들을 우리 봉쇄구역 안에 들여오는 것은 우리 수도회의 정신에 역행하는 것이다. 참으로 원장들은 세속적인 독서에 있어 매우 신중하도록 수도승들을 권고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권고는 자신을 다스리는 성숙한 정신을 요구한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가장 좋은 몫 -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는 몫 -으로부터 따르는 모든 결과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안다.

 

6. 하지만 마음은 좁아지지 않고 하느님과의 친밀함을 통하여 넓어져, 그 결과 희망들과 세상의 문제들을 하느님 안에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수도승들은 교회의 중대한 주장들에 대해 어떤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인간을 향한 우리의 관심이 참되다면, 그것은 우리의 호기심을 만족시킴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일치를 통하여 표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각자 자기 안에 계신 성령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하느님과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고 자기 정신 안에 받아들일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 분별해야 한다.

 

7. 만일 우리가 우연히 세상의 어떤 소식을 접하게 될 경우,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오히려 세상의 풍문들을 우리가 들은 바로 그 곳에 내버려두도록 하자. 수도승들이 알아야 하는 일들, 특히 교회의 생활과 교회의 요구들에 대해 자기 수도승들에게 알리는 것은 원장의 일이다.

 

8. 만일 진정한 필요성이 없다면, 수도회의 회원들과 혹은 때때로 우리 수도원을 방문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고자 모색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유 없이 다른 사람들을 방문하거나 혹은 그들의 방문을 받는 것은 고독과 침묵에 굳게 묶여 있는, 그리고 고요를 갈망하는 수도승에게 전혀 이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9.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매년 이틀 동안 우리 부모와 다른 친척들의 방문을 받기 위하여 우리 봉쇄의 엄격함을 약간 늦출 것이다. 이 이틀은 나누어 질 수도 있고 혹은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만일 그리스도의 사랑이 진정 우리에게 어떤 불가피한 필요성을 부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친구들의 방문과 세속인들과의 대화를 피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말들 보다 사람들에게 더 유익한 이 희생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10. 만일 우리가 서신을 통하여 외부인들과 잦은 접촉을 갖게 되면, 참으로 우리의 외적 봉쇄는 헛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장이 모르게 편지들을 보내거나 받을 수 없다. 총회, 총원장, 수도원의 시찰관, 총당가(Procurator General), 서기(Scribe), 그리고 교황청 등으로부터 받거나 보내는 편지들은 이 규칙에서 제외된다. 또한 수련장의 지도 하에 있는 사람들은 그와 자유로이 서신교환을 할 수 있다. 예외적인 상황들을 제외하고 우리는 전화로 사적인 대화를 해서는 안 된다.

 

11. 우리는 결코 편지로 영적지도를 하지 않을뿐더러 우리 가운데 누구도 공적으로 설교하지 않는다. 만일 세속인들이 우리의 침묵으로부터 유익을 얻지 못한다면, 그들은 우리의 말로부터는 훨씬 더 그러할 것이다.

 

12. 은수자는 교사의 직무를 갖지 않기 때문에 만일 총회나 총원장이 먼저 승인하지 않았다면, 우리 수도회의 어떤 구성원도 감히 어떤 책들이나 인쇄된 논문들, 심지어 정기간행물조차 소유해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는 대중매체가 우연히 제시한 인터뷰들을 피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한다.

 

13. 우리는 우리 수도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의 고백성사와 관련하여 원장들이 스스로 어려움을 드러내기를 권고하는 바이다. 그리고 만일 필요성이 요구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러한 고백성사를 전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수락은 우리 서원의 본성에 완전히 반대되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필요성에 의해서 그것을 허락해야할 경우가 생기면, 그것이 관례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가능한 한 빨리 중단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여성들에게는 결코 고백성사나 영적 지도를 줄 수 없다.

 

14. 교회법적으로 설립된 우리 수도회의 수도원들 안에서 수도회의 전통에 따른 엄격한 봉쇄가 준수되어야 한다. 여성들은 봉쇄구역 안에 받아들여 질 수 없다. 우리가 여성들과 이야기 할 때, 수도승들에게 적합한 중용을 지켜야 한다.

 

15. 수도승들은 그들이 하늘나라를 위해서 서원한 정결이 은총의 탁월한 선물임을 늘 명심해야한다. 왜냐하면 정결은 특별한 방식으로 그들의 마음을 자유롭게 하여 그들이 갈림 없는 사랑으로 보다 쉽게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들은 하느님에 의해서 제정되고 다가 올 세계에서 완전하게 드러날 감추어진 혼인의 결합을 예고한다. 이 결합을 통하여 교회는 유일한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소유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이 서원한 바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 자신의 힘을 믿기보다는 오히려 주님의 도움을 신뢰하면서 감각들을 제어하고 고행을 실천해야 한다. 그들은 또한 겸손과 동정으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기에 합당하신 마리아도 신뢰해야 한다.

 

16. 은수처의 고독과 침묵은 그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은혜와 신적 기쁨을 가져다 준다. 오직 그것들을 체험한 사람들만이 이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여기서 강한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만큼 그들 자신 안으로 다시 들어가 거기에 머물 수 있다. 여기서 그들은 덕의 씨앗들을 열심히 배양하고, 천국의 열매들을 즐겨 먹을 수 있다. 여기서 눈은 다음과 같은 것을 얻게 되는데, 즉 그의 고요한 눈길에 의해 신랑이 사랑으로 상처받게 되고, 맑고 순수하게 하느님을 보게 된다. 여기서 그 은수자는 분주히 여가를 즐기고 고요한 활동 안에 휴식한다. 여기서 하느님께서 그의 투쟁의 노고에 대해 최상의 상급으로, 곧 세상이 모르는 평화와 성령 안에서의 기쁨으로 보상해 주신다.

 

제7장

 

단식과 극기(De abstinentia et ieiunio)

 

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당신 발자취를 따르도록 하나의 모범을 남겨주시면서 우리를 위하여 고통 받으셨다. 우리는 이 삶의 고뇌와 고통들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리고 우리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고 하느님 자녀들의 자유 안에서 가난을 선택함으로써 그분을 따른다. 더 나아가 수도승 전통에 따라 우리는 또한 하느님께 대한 갈망이 우리 정신을 비추도록 육체를 엄격히 다루어 그것을 우리에게 복종시키면서 사막에서의 그분의 단식으로 그리스도를 따른다.

 

2. 봉쇄 수도승들은 매주, 통상적으로 금요일에 한 번의 극기를 행한다. 그 날 그들은 빵과 물로 만족한다. 연중 어떤 날들과 시기들에 그들은 수도회의 단식을 준수하고, 하루에 단지 한 번 식사한다(제48장 참조).

 

3. 우리는 단지 헌장에 대한 순종에서만이 아니라, 주로 육체의 욕구로부터 해방되어 보다 기쁘게 주님을 따를 수 있기 위하여 육체의 고행을 실천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어떤 수도승이 특별한 경우나 혹은 시간이 지나면서 앞서 말한 규율들 가운데 어떤 것이 그의 힘에 부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있어 도움이 되기보다도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을 발견하거든, 적어도 일시적으로 그가 자녀다운 정신으로 원장과 함께 그에게 적합한 양을 조정하도록 할 것이다. 그러나 부르시는 그리스도를 언제나 기억하여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부정하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면서, 그가 공동 규율을 통해서 하느님께 드릴 수 없는 바를 다른 식으로 봉헌해야 한다.

 

4. 그러므로 수련자들은 수련장의 지도 하에 현명하고 안전하게 규율의 엄격함에로 나아갈 수 있도록 수도회의 단식과 극기에 점차 익숙해져야 한다. 수련장은 특별히 식사시간에 절제가 부족한 것에 대해 우리의 단식을 핑계삼지 않도록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그렇게 그들은 육체의 그릇된 행위들을 정신으로 순화하는 법과 예수의 죽음을 몸으로 전해서 예수의 생명이 또한 그들의 몸 안에서 나타나도록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5. 우리의 초기 교부들에 의해서 도입되고 언제나 특별한 열정으로 준수된 규율에 따라 우리는 우리 삶의 양식에서 모든 육류 섭취와 사용을 배제한다. 이 극기는 수도회의 고유한 특성으로서,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그것에 항구하고자 하는 은수자적 엄격함의 표지로서 준수되어야 한다.

 

6. 음식에 대해서 불평하는 것은, 특별히 공동체 앞에서 불평하는 것은 우리가 자유롭게 받아들인 가난과 카르투시오회의 절제에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로써 누군가 자신의 필요들을 정중하고 순종적으로 원장 앞에 제시하는 것을 막으려 하는 것은 아니다. 원장은 수도회의 규정에 따라 필요한 것을 자기 수도승들에게 충분히 제공할 것이다.

 

7. 언제나 음식에 있어서 검소함을 지켜야 한다. 심지어 축제의 경우들에조차 그러하다. 비록 그러한 때에는 어떻게든 우리 마음의 기쁨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허용된다 하더라도 검소함이 지켜져야 한다. 만일 원장이 아마도 몰래 기어 들어왔을 지도 모를 어떤 남용들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모든 수도승들은 그의 결정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8. 원장이 모르게, 또 그의 승인 없이 헌장이 규정하는 것들 이외의 다른 고행 수행들은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원장이 누군가에게 어떤 부가적인 음식이나 잠, 또는 그 밖의 어떤 것이라도 취하게 하기를 원한다면, 혹은 반대로 그가 만약 어렵고 부담되는 어떤 것을 부과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거절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원장에게 저항하면서 우리는 실제로 그가 아닌 주님께 저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장은 우리에 대한 주님의 대리자로 행하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준수하는 것들이 많고 다양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순명의 덕 없이는 그것들 가운데 어떤 것도 우리에게 이득이 되리라고 희망할 수 없다.

 

제8장

 

수련자(De novitio)

 

1.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세상을 포기하고 영원한 것을 붙잡으려는 갈망으로 불타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오면, 우리는 그들을 같은 정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수련자들이 그들의 양성이 이루어질 그 수도원에서 정규 규율과 신심, 침묵과 고독, 더 나아가 형제적 사랑의 모범을 발견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만일 이러한 모범이 부족하다면, 그들이 우리 삶에 항구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은 헛될 것이다.

 

2. 하지만 “그들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알기 위하여 그 정신들을 시험하시오”라고 하는 사도 요한의 권고에 따라 우리에게 오는 지원자들은 주의 깊게 그리고 현명하게 시험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수와 자질 모두에 있어서 수도회의 진보와 쇠퇴는 주로 수련자들이 얼마나 잘 혹은 잘못 선발되고 양성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장들은 그들의 가정, 그들의 과거 생활, 그리고 그들의 정신과 육체의 적합성에 대해 신중하게 물어야 한다. 이 문제에 관해 우리 삶의 양식을 잘 아는 현명한 의사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고독한 삶을 지원하는 이들에게 특별히 요구되는 자질들 가운데 건전하고 균형 있는 판단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3. 20살이 안된 사람들을 수련자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관습이 아니다. 더 나아가 대상자들 가운데 오로지 원장과 공동체 다수가 판단하여 수도회의 규율들을 견디기에 충분한 신심과 성숙성과 육체적인 힘을 갖춘 사람들만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들은 물론 고독을 위한 자질을 갖추어야 하지만, 또한 공동생활을 위한 자질도 갖추어야 한다.

 

4. 이미 나이가 든 사람들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는 보다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의 규율들과 삶의 방식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총회나 혹은 총원장의 특별한 허락 없이 45살이 넘은 사람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런 허락은 또한 다른 수도회에서 아직도 서원에 묶여 있는 수도자를 수련에 받아들이기 위해서도 요구된다. 만일 그 수도자가 종신서원자일 경우, 총원장은 총평의회(General Council)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전에 다른 수도회에서 서원에 묶여 있었던 지원자의 입회를 위해서 우리는 먼저 총원장의 조언을 구하도록 권고된다.

 

5. 어떤 자격으로 우리 수도원들에서 생활하다가 후에 떠난 사람들은 총원장과 또한 이 사람들을 알고 있는 장상들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고 동일한 수도원이나 혹은 어떤 다른 수도원에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이전에 우리 수도회에서 이미 수련을 받았거나 혹은 서원을 했던 사람은 처음부터 다시 양성기(養成期를) 시작해야 한다.

 

6. 누가 봉쇄 수도승이 되기를 원하며 우리에게 올 경우, 먼저 그가 이것을 원하는 동기와 목적이 무엇인지 그에게 개인적으로 질문한다. 그리고 만일 그가 참으로 하느님만을 찾는 것처럼 보이면, 다음 몇 가지 점들에 관해 그를 심사한다. 즉 그가 성직 수도승이 되기에 필요한 학문적 교육은 충분히 받았는지, 그가 노래를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가 어떤 교회법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더욱이 만일 청원자가 라틴어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는 수련기를 시작할 수 없다.

 

7. 이러한 심사가 끝나면, 우리 삶의 목적과 우리가 구속 사업에 참여하면서 하느님께 드리기를 희망하는 영광,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리스도께 굳게 결합하는 것이 얼마나 좋고 기쁜 것인지가 그 지원자에게 제시된다. 그러나 거칠고 엄격한 것들 또한 그에게 제시된다. 그 결과 그가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그 삶의 모든 측면이 가능한 한 빨리 그의 눈앞에 드러나게 된다. 만일 이 앞에서 그가 동요되지 않고, 기꺼이 주님 말씀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분과 함께 살기를 갈망하면서 이 어려운 길을 걷고자 약속한다면, 마지막 권고로서 그가 복음의 정신에 따라 그를 적대하는 모든 사람들과 화해하도록 권고해야 한다.

 

8. 최소 3개월에서 최대 일년간 지속되는 시험이 끝난 후, 정해진 날에 그 청원자는 공동체에 추천되고, 다음 날 공동체는 그의 입회에 관해 투표한다.

 

9. 후보자가 또 다른 시험 단계에 받아들여질 때마다 공동체는 신중한 투표를 한다.

 

이 투표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만일 공동체의 대부분이 부정적으로 투표를 하거나 혹은 투표 결과 찬반이 동수(同數)로 나올 경우, 그 후보자는 퇴회해야 한다. 만일 투표가 긍정적이라면, 이는 공동체 쪽에서 그 후보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후보자를 받아들이기 위한 이 동의투표에 구속되지 않고 그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모두의 아버지로서의 원장이다(제24장 3항; 제37장 2항 참조).

 

10. 8일간의 피정(recollection) 후, 그 청원자는 원장에 의해 착복을 함으로써 수도회의 연대 속으로 받아들여진다. 원장의 부재 시, 만일 원장의 특별한 허락이 없다면, 어떤 수련자도 받아들여 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11. 수련자는 혹시 그가 가지고 왔을 수도 있는 모든 돈과 다른 소유물들을 원장에게 맡겨야 한다. 그래서 그가 아닌 원장이나 또는 원장으로부터 임명받은 누군가가 그것들을 마치 예금해 놓은 것처럼 관리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수련자는 이제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수도회에 입회하기를 원하는 사람들로부터 어떤 것도 요구하거나 요청하지 않는다.

 

12. 수련자는 공적으로 질책받지 않는다. 그가 과실을 범했을 경우, 원장이나 수련장, 혹은 그 대리자(Vicar)가 그를 교육한다. 하지만 대리자는 수련기의 지도에 간섭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수련자나 혹은 유기서원자는 그가 수련장의 지도 하에 있는 동안 공동체 휴게, 산보, 혹은 공동 작업 때 종신서원자들과 함께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들은 일년에 34번, 혹은 원장의 분별 하에 더 자주 종신서원자와 함께 휴게나 산보를 할 수 있다. 종신서원자들은 젊은 수도승들의 양성에 간섭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들은 수도 정신과 젊은 수도승들의 항구함조차 그들의 모범에 달려있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한편 수련자는 그의 새로운 수도생활 초기부터 형제들을 사랑으로 바라보고, 침묵 중에 머무르는 것을 배워야 한다.

 

13. 수련기는 2년 간 지속되며, 원장은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지만, 6개월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14. 만일 수련기에 받아들여진 누가 다른 수도회에서 종신서원을 했다면, 그는 5년 간 수련자로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일년을 종신서원자들 가운데서 보낸다. 그런 다음 공동체에서 사제나 혹은 부제로서의 역할들을 수행할 수 있다. 그를 수련기에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는 위에 제시된 절차(제8장 9항)를 따른다. 우리는 2년 후에, 그 다음 또 2년 후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신서원 전에도 똑같이 한다.

 

15. 봉쇄 수도승들을 위한 수련기는 평수도승들을 위해서 유효하지 않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16. 수련자는 사막에서 늘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을 노리고 있는 유혹들로 인해 소진되어서는 안 된다. 그는 또한 자신의 능력을 신뢰해서는 안되고, 그를 불러주셨고 그가 시작한 일을 완성시켜주실 주님을 신뢰해야 한다.

 

제9장

 

수련장(De Magistro novitiorun)

 

1. 수련자들의 양성은 수련장에게 맡겨져야 한다. 수련장은 현명함과 형제적 사랑, 그리고 열성적인 규율 준수로 뛰어난 수도승이어야 하며, 수도회 일들에 대한 경험과 필요한 성숙함을 지녀야 한다. 그는 독방과 관상적 휴식의 탁월한 개척자여야 한다. 그는 우리 소명에 대한 사랑으로 빛나는 사람이어야 하며, 영혼들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젊은이들의 필요들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편 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젊은 수도승들의 영적인 완성에 대해 온 마음으로 보살피면서 다른 사람들의 결점들을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

 

2. 그가 종신서원자들과의 대화를 중단하지 않도록, 또한 보다 자주 공동체 휴게에 참여하도록 권고된다. 왜냐하면 이것들을 통하여 수도승들은 서로 더 잘 알게 되며, 상호간에 사랑이 촉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장은 수련장이 부차적인 문제들로 메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일차적인 직무는 독방과 고요에 전념함으로써 명상(recollection)의 모범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수련장은 수보다 자질을 중시하면서 수련자들을 받아들임에 있어 주의하고 신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름으로 뿐 아니라 실제로도 카르투시오회 수도승이 되는 것은 오로지 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독과 우리 삶에 대한 사랑 외에도 어떤 특별한 정신과 육체의 능력이 요구된다. 이 능력으로부터 하느님의 부르심이 알려지게 된다. 후보자들을 검토하고 시험하는 일은 주로 수련장에게 속해 있는데, 그는 이것에 주의해야 한다. 그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이던 어떤 결점들이 서원 후에 종종 더욱 자라나고 발전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누군가를 거부하거나 떠나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임이 틀림없다. 따라서 그러한 결정은 충분한 숙고 후에 취해져야 한다. 한편 후보자가 필요한 자질들을 결여하고 있음이 드러났을 때, 그를 받아들이거나 계속 머무르게 하는 것은 그릇된 동정심이다. 우리는 거의 잔혹한 동정심이라고까지 말하였다. 수련장은 수련자가 완전히 자유롭게 자신의 성소를 결정하도록 전적으로 주의해야 하며, 어떤 식으로든 서원을 하도록 그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4. 적절한 때에 수련장은 수련자를 방문하여 수련자가 알아야 할 수도회의 규율들을 그에게 가르칠 것이다. 그는 그 수련자가 우리의 헌장을 주의 깊게 공부하도록 큰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수련장의 임무는 또한 수련자의 품행을 지도하고, 그를 영적인 수행들로 이끌며, 그의 유혹들에 적절한 치료법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는 수련자들이 매일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사랑에로 나아가도록 힘써야 한다. 비록 우리의 사부 성 브루노처럼 그도 어머니의 부드러움을 지녀야 한다 하더라도, 그는 또한 수련자들이 수도승적이며 동시에 남성답게 양성되도록 아버지의 엄격함도 보여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는 수련자들이 독방에서의 고독한 생활과 독방의 엄격함을 체험하게 해야 하며, 그리고 진정하고 단순한 사랑의 정신으로 서로에게 영적인 도움을 주도록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5. 수련장이 공부와 손노동에 전념하는 것은 참으로 수련자들에게 매우 유익하다. 하지만 수도승이 독방에 머물며 거기서 죽을 때까지 훌륭히 스스로를 지키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그 이상의 어떤 것, 즉 기도의 정신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만일 그리스도와의 삶과 하느님과 영혼의 친밀한 결합이 부족하다면, 예식들과 정규 규율에 대한 충실성은 별로 유익하지 않으며, 우리 삶은 바로 영혼 없는 육체에 비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련장의 첫 번째 임무는 이러한 기도의 정신을 가르치고 분별로 그것을 발전시켜서 수련자들이 서원 후에 매일 더욱 더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 그들 성소의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것이다.

 

6. 수련장은 언제나 모든 그리스도교적 삶의 원천들과 수도승 전통의 가르침, 그리고 우리 수도회의 최초의 영감에로 되돌아가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는 우리 사부 성 브루노의 정신을 충분히 설명해야 하며, 수도회 초기부터 준수되어 온 건전한 전통들을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전통들은 주로 귀고에 의해서 수집되었다.

 

7. 유기서원자는 유기서원기 처음 3년 동안 수련장의 지도 하에 남아 있게 된다. 수련장은 유기서원기 시작부터, 그러나 특별히 마지막 해에 그들이 점차 우리 소명의 거룩한 자유와 고독에 익숙해지도록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들이 종신서원을 하면, 그들은 더 이상 수련장의 지도 하에 놓이지 않는다.

 

8. 일년에 4번 원장과 그의 평의회의 참석 하에 수련장은 각 수련자의 상태에 관해 보고해야 하며, 또한 유기서원자들에 관해 제기된 질문들에 대답해야 한다. 수련장과 그의 대리자 모두 새로운 양성의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 수련원의 형제들을 공동체에 소개해야 한다. 그들의 결점들과 동시에 좋은 자질들이 분명하고 정확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공동체는 수련장이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하여 판단을 내리고, 그들의 입회에 관해 투표할 과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9. 원장은 수련자들에 대한 개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들의 수련을 감독해야 한다. 하지만 수련장이 수련자들을 책임감을 갖고 자유로이 지도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렇게 해야 한다. 수련장은 자기 직무에 관한 일들에 있어서 기꺼이 원장에게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수련자들이 그들의 공동 사부에게도 같은 신뢰를 가지도록 가르쳐야 한다.

 

10. 수련기 제2년차 때, 수련자들은 학업을 시작한다. 이들은 학사 일정 지침들에 따라 수도승적이며 동시에 사제적인 양성에 맡겨져야 한다. 수도승들은 하느님의 이 선물에 보다 완전히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충분한 인간적, 영적 성숙에 도달하기 전에 사제직에 올려져서는 안 된다.

 

제10장

 

서원(De Professione)

 

1. 세례를 통해서 이미 죄에 죽고 하느님께 축성된 수도승은 서원을 통해 보다 전적으로 성부께 봉헌되고, 완전한 사랑을 향해 보다 직접적으로 노력할 수 있기 위하여 세상으로부터 해방된다. 확고하고 안정된 계약으로 주님과 연결된 그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해소할 수 없는 결합의 신비에 참여하며,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생명을 세상에 증거한다.

 

2. 수련기 제2년차 말경에, 만일 그 수련자가 적합하게 보이면 그를 공동체에 소개해야 한다. 공동체는 몇 일 뒤 그 문제에 대해 신중히 검토한 후, 그의 입회여부를 투표할 것이다(제8장 9항 참조). 그 수련자 쪽에서는 오로지 완전한 자유와 신중한 숙고로 서약해야 한다.

 

3. 만일 그 수련자가 원장에 의해 받아들여진다면, 그는 8일간 피정을 한 다음 아래 언급된바와 같이 서원을 발할 것이다(제36장 8-10항). 그때부터 그는 자신이 첫 서원을 한 그 수도원의 서원자로 남아있게 된다.

 

4. 첫 서원은 3년 간 발해진다. 그 시기 끝에 원장은 공동체의 투표 후(제8장 9항), 그 유기서원자를 받아들여 2년 간 종신서원자들과 함께 지내게 한다. 그 경우에 그 수도승은 2년 간 그의 유기서원을 갱신할 것이다. 이 기간 중 보통 두 번째 해 동안 그는 학업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보다 깊은 숙고를 통해 종신서원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유기서원기의 시험 기간은 처음 3년 후 종신서원자들 가운데 살도록 허락되기 전이든지, 혹은 5년 후 종신서원을 하기 전이든지 원장의 판단에 따라 연장될 수 있음에 주의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기서원기의 이 시험 기간은 결코 6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정당한 이유로 총회나 혹은 총원장은 교회법의 규정들을 참작하여 어떤 사람을 수련자로서의 시험기뿐만 아니라 또한 유기서원기의 시험 기간으로부터 면제할 수 있다.

 

5. 비록 그가 전 유기서원기 동안 자기 재산 소유권을 보유한다 하더라도, 그 수련자는 첫 서원 전에 그가 원하는 누군가에게 그 관리를 맡겨야한다. 그리고 그때 그는 자기 재산과 그 사용에 대해 자유롭게 양도할 수도 있다. 만일 유기서원자가 정당한 이유로 이러한 조치들을 변경하고자 하거나 혹은 자신의 세상 재물에 대해 어떤 것을 하고자 할 경우, 그는 자기가 서원한 공동체의 원장으로부터 허락을 얻어야 한다.

 

6.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는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서원할 수도승은 종신서원 전에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내어놓아야 한다. 그리고 만일 그가 원한다면, 그는 동시에 그에게 권리권이 있는 재산을 처분할 수 있다. 수도회의 어느 누구도 유기서원자의 소유물에서 결코 어떤 것도 요청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누군가에게 자선을 하거나 혹은 어떤 경건한 일에 대한 기대에서조차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자기 재산을 처분해야 한다.

 

7. 종신서원을 할 때가 이르렀을 때, 그 서원 대상자는 참사회 날이나 혹은 그 전 날에 자비를 구하고 모든 이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종으로 받아들여지도록 요청할 것이다. 그런 다음 원장이 임명한 두 명의 수도승이 그를 공동체에 소개할 것이다. 그들은 며칠 후에 그의 입회여부에 대해 투표할 것이다(제8장 9항 참조). 원장은 그 대상자를 종신서원에 받아들이기 위해 총원장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8. 정한 날에 그 종신서원 대상자는 공동체 미사에서 복음 낭독 후, 혹은 사도신경 후에 서원을 발한다(제36장13-14항). 이는 그가 그리스도께 봉헌하고자 하는 바로 그때, 그의 봉헌이 원장의 손을 통해 하느님께 받아들여지고 축성되기 때문이다.

 

9. 서원 대상자는 서원장을 모국어로 다음과 같이 손수 작성해야 한다.

 

“저, (성, 이름) 수사는 (성, 이름) 원장 신부님의 입회 하에 하느님과 성인들, 하느님께 대한 경의로 세워진 이 은수처에 속한 유해들과 복되신 영원한 동정 마리아, 그리고 세례자 성 요한 앞에서 정주와 순명과 수도승답게 생활할 것을 서약합니다.” 첫 유기서원의 경우, “서약합니다”란 말 앞에 “3년 간”이란 말을 삽입한다. 그리고 이 서원이 연장될 때, 그 연장 기간이 명시된다. 종신서원의 경우에는 “종신토록”이란 말이 부가된다.

 

10. 우리의 모든 은수처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주된 천상 수호자들인 복되신 영원한 동정 마리아와 세례자 성 요한에게 바쳐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서원자 자신과 그의 서원을 받아들인 원장이 서명하고, 거기에 날자가 명시된 모든 서원증서는 그 수도원의 문서고에 보관되어야 한다.

 

11. 받아들여진 사람은 그가 발한 서원에 의해 그가 장차 자기 원장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것에 대해서도,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전혀 권한이 없을 정도로 자신이 세상의 모든 것에 이방인임을 안다. 왜냐하면 하나의 규칙에 따라 살고자 결정한 모든 사람이 큰 열정으로 순명을 준수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받아들인 더 힘들고 엄격한 삶의 양식을 더 열렬하고 정성껏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불행하게도 만일 순명이 부족하게 되면, 이 모든 노력들은 결실을 얻지 못하게 된다. 사무엘이 “순명은 어떠한 희생보다도 더 낫다. 그리고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것은 숫양의 기름기보다 더 낫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12. 만일 그의 원장이 참석하여 예식을 거행하지 않는다면, 유기서원이건 또는 종신서원이건 아무도 서원을 할 수 없다. 만일 원장이 합법적으로 참석하지 못하게 될 경우, 그는 우리 수도회의 다른 원장이나 또는 다른 사제를 위임할 수 있다. 위임받은 그 대리인은 그 공동체의 원장의 이름으로 서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 서원 양식 안에 “(성, 이름) 원장 신부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성, 이름) 신부님의 입회 하에”라는 내용이 읽혀질 것이다. 하지만, 수도회에 편입된 수도원들의 장상들은 그들 자신의 이름으로 서원을 받을 수 있다.

 

13. 성부의 뜻을 행하러 오신, 그리고 종의 형상을 취하시고 그가 당하신 고통을 통하여 순명을 배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수도승은 서원을 통해 하느님의 대리자로서의 원장에게 자신을 종속시킴으로써 그리스도의 충만한 생애의 수준에도달하고자 노력한다. 

 

 

 

영화 &nbsp;< 봉쇄수도원 카르투시오 > 포스터&nbsp;https://naver.me/5hgntL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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