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는 방법에 나온 방식들을 적용하면 글 양이 줄어드는 줄 알았다. 음, 저, 어느... 같은 것 빼고, 부사와 형용사 다 빼면 당연히 필요한 단어만 남아서 단순해지니 글의 양이 줄어들 거란 생각이었다. 아니다. "그해 여름이었다."처럼 쓰고 그다음은 "남자가 곧 꽃이 핀다고 말했다."라고 쓴다. 앞 문장이 뒷 문장을 불러오도록 쓰는 걸 반복한다. 단순하다.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 없는 글을 쓴다.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말은 장황하고 반복되니 어느 순간에 거짓말이 된다. 글은 정확히 언어와 같다. 언어란 우리가 쓰는 말이다. 남자의 마음은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시끄럽다.
"그래." 지난주는 대회에 나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해서 정신과 몸을 좀 쉬게 한 거라고 생각하자. 은근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을 자책할 필요 없다. 늘 용서하는 행위는 대상이 누구든 간에 실행하기 힘들다. 조금 일찍 나가 지하철을 탄다. 과천역에서 4호선을 차고 금정역에서 굼벵이 1호선으로 갈아타고 수원역에서 내린다. 9번 출구로 나가 버스를 타고 식당 근처에 도착하니 약속 시간인 5시 30분 전에 도착했다.
남자가 만나는 친구들은 따따모 모임이다. 남자들은 같은 학교 거나 근처에 있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중소 도시에서 다녔다. 민자는 수원에서 학교를 다니고, 김교수는 서울에서 다니고 나머지는 모두 대학도 그 동네에서 다녔다. 15살 즈음부터 알고 지냈으니 햇수로 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다. 50대 중반의 시시콜콜한 남자들 9명이 모이면 무얼 할 거 같은가? 맞았다. 아무것도 안 한다. 일찍 한 잔 하고, 인계동 나혜석거리를 걷고, 대다이가 있는 당구장을 간다. 당구를 치고 나와 갈 데가 없으니 준코에 가서 노래하고 놀기로 한다. 처음 와보는 얘들이 있어 잘 아는 아이가 주문을 한다. 태자성자는 노래를 잘해 계속 노래를 부른다. 남자는 노래책에서 5번 목로주점을 부르고 다른 아이가 노래할 때 아타라시 가코가 추는 춤을 춘다.
그동안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 일자구자가 당구장에서 커피 시킨 이야기, 성자가 갔더니 젊은 사람들이 왔다는 다방 이야기, 노래방에 굴 까는 아줌마 온 이야기까지 모두가 지난 이야기다. 모든 사람이 쉽게 이야기하는 추억이란 것과 경험이 만든 일들을 이야기한다.
“나의 존재가 믿어지려면 나는 사람들에게 보여야 한다(I have to be seen to be believed).”라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생전 자신의 자서전 집필자 샐리 스미스에게 한 말이다. 친구들 모임에서는 존재가 분명 해지는 느낌이 든다. 다 보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계속 웃는다. 너무 재미있어 웃기만 한다. 아무리 웃어도 질리지 않는다. 오전 3시에 충주에서 온 아이들이 잡은 호텔에 들어가 5시까지 떠들다가 잔다. 의도하지 않는 1박이 이렇게 지난다.
남자의 삶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시간을 달리 쓰지 않고, 사는 곳을 바꾸지 않으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않기 때문이다. 바다에 빠져 가라앉는 배처럼 살고 있다. 생각은 늘 요동치고 변화해야 한다고 비명을 지르지만 정작 관찰에 미숙한 남자는 운명이려니 하고 생각한다.
여자가 믿는 신뢰에 구멍을 낸 남자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 사람이 어떤 결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모두 이유가 있다. 따뜻한 밥이 문제고, 자식을 키우는 문제고, 살림이 문제고, 변하지 않는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만든 사람도 문제고 문제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도 문제가 된다. 남자는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심한다. 어떻게든 행동해야 문제를 해결할 길이 생긴다.
모든 타임라인 영화들이 모르는 게 있는데 지난 간 일을 바로잡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바로잡다가 진짜 창세기 1장 1절로 간다. 그래서 함부로 쓰면 안 된다. 바꿀 수 있는 것은 미래다. 지금 잘해야 미래를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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