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가 남자를 어디까지 데려다줄까? 80살이 넘어도 하프코스 정도는 달리게 해주는 건강한 육체일까? 늘 두려움과 성취가 반복하는 경주처럼 나이와 상관없이 도전하는 강한 마인드로 안내할까? 아니면 모든 것이 떠나고 외로운 나이에 함께 할 수 있고, 내가 달리기를 버리지 않는다면 내 곁에서 친구로 남을까?
달리기가 나를 어디까지 데려주 줄지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과거는 이미 지나가서 없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환상이기 때문이다.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것에는 꿈과 희망이 있지만,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곧이어 사라지고 다음 장면이 온다. 달릴 때는 먼 앞을 쳐다보지 않는 것처럼 삶에서도 바로 앞만 보고 살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10월 3일 개천절에 열린 21회 국제 평화 마라톤 대회 풀코스 42.195km를 완주했다. 이번 풀코스 완주를 엄두도 못 낸 이유에는 한 달 전 부상이 있어서 훈련을 못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 단계를 밟아 올라간다는 일은 거의 표준이다. 9월 19일 훈련에서 하프 21km를 달리는 데 15km부터 걷고 달리고를 했지만 끝냈다. 3일 후에 22일 열린 공주 백제 마라톤에서 32km를 달리는 데 25km 지점부터 다시 걷고 달리며 완주했다. 이 정도면 예상을 한다. 이번 국제 평화 대회에선 35km 지점부터 좀 힘들겠구나. 하고 말이다.
놀기에도, 죽기에도, 달리기에도 아주 그만인 날씨다. 갑자기 가을이 와서 그런지 이른 아침엔 쌀쌀함이 느껴졌다. 5시 30분에 일어나 체조로 몸을 풀고 계란 프라이 두 개와 햇반으로 아침을 먹는다. 커피를 한 잔 타고 대회가 시작하는 한 시간 전에 마실 커피를 텀블러에 담는다. 경기 후에 먹을 사과 두 개를 챙기고 지하철을 이용해 봉은사 역으로 간다. 바람은 시원했고 8,600명 러너가 참가하는 대회장 주변은 소란스럽다. 옷을 대회 복장으로 갈아입고 짐을 맡긴다. 몸을 풀고 호흡을 가지런히 하면서 기도한다. 오늘 경주를 즐겁게 달리고, 긴 구간을 걷지 않게 하고, 시간은 상관없이 끝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메이저 대회처럼 넓은 도로를 달리는 대회가 아니라 코스는 아주 복잡하다. 봉은사 역을 출발해 양재천으로 급히 내려간다. 양재천 영동 1교를 돌아 양재천과 탄천이 만나는 곳에서 분당으로 방향을 바꾼다. 자전거 길과 보행길이 합쳐진 아주 긴 탄천을 따라 여수대로 부근에서 돌아온다. 그래도 풀코스 길이가 모자라 한강 합수부에서 성수대교 못 미쳐 마지막 5km 구간을 더 달려야 한다. 어차피 완주할 주로지만 페이스를 어떻게 할지 생각한다. 7.2km와 23.6km, 39.6km 반환점을 돌아오는데 주로는 대부분 가고 오는 길이 겹친다. 늘 그렇듯이 오늘 경주도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온다. 달리기는 늘 그렇다.
러너들이 달리는 주로는 양재천 둑이 만든 그늘과 동부 간선도로의 교각 아래 코스, 작년보다 많이 자란 나무들이 만들어 주는 그늘이라서 달리기에 편했다. 날씨가 확 바뀐 가을의 햇살은 싱글렛 자리를 제외한 몸에 붉은 태닝 걱정도 없었고 바람이 만들어 준 시원함으로 땀이 비 오듯 흐르는 일도 걱정하지 않았다. 긴 거리를 달리는 마라톤은 러너의 마음 상태와 페이스를 어떻게 일정하게 가져가는지가 승부의 핵심이다. 9km 지점에서 만난 한 그룹의 러너들을 따라 32km까지 편안히 달렸다. 이런 일이 경주에서 가끔 만나는 행운이라고 한다.
32km를 넘어서 잘 달리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과천팀 선배의 꼬임에 빠져 애써 따라가다 또 뒤처진다. 37km 지점에서 초반에 만나 페이스를 잘 맞춰 달린 그룹을 멍하니 앞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매 순간 이게 욕심인지, 내 페이스에 맞는 건지, 얼마나 무리를 해야 하는 건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런 일들이 가져오는 결과는 더욱 예상할 수 없다. 드디어 한강변으로 접어든다. 이제 5km 남았는데 다리가 무겁다.
한강과 탄천 합수부에서 만난 미국 미저리 출신의 요시아란 젊은 군인과 함께 달리게 되었다. 35살이고 한국에 온지 3년 되었고, 군인으로 근무한다고 했다. 마라톤 풀코스에 처음 도전하는 요시아는 힘들어 했다. 여자를 사귀는 데 있어서 얄팍한 플러팅이나 외국인을 만나 대화할 때 유창한 영어 실력은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자신감이 없다면 아무리 기회가 많이 와도 잡을 수 없다. 자신감만 충분하다면 어떤 기회든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요리할 수 있다.
요시아를 먼저 보내고 잠시 걷다가 다시 요시아를 만나고, 또 먼저 보내고 걷다가 달리면 또 요시아가 걷고 있다. 대화하고 서로 용기를 부추겨 함께 피니시라인을 밟았다. 완주 시간은 4시간 18분이고 역시 35km 지점부터 많이 힘들었다. 3가지 목표인 즐겁게 달리고, 많은 구간을 걷지 않고, 완주한다는 결과를 갖는다. 다음 날 아침 출근 길이 환하다. 새삼 복잡한 도로를 지나도 즐겁다.
이제 올해 마지막 메이저 마라톤 대회인 춘천마라톤이 남았다. 풀코스까지 달려 두려움을 없애서인지 아주 잘 달리겠다. 삶은 마라톤과 닮아서 늘 겸손을 유지한다. 위험을 감수하는 것도 좋지만 욕심과 넘치는 욕망을 구분한다. 작은 성취가 큰 업적을 만든다. 순간적인 작은 만족을 거부하고 무엇이든 견디고 인내한다. 10월 27일 춘천 대회 날까지 매주 훈련은 계속하고 몸을 잘 만들기로 한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모든 면에서 좋은 상태를 유지하지 않으면 대부분 목적한 바를 이루기는 어렵다.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9가지 습관을 갖추어야 한다.
"잠을 많이 자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다. 활동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밖으로 나간다. 명상하고 실패를 받아들인다. 도움을 요청하고 에고를 버린다. 마지막으로 독성이 있는 사람들을 멀리한다."
뒤풀이는 국기원 지하 대동천에서 아쉬운 무용담을 이야기하고 서로를 치하하고 위로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나마 마음이 맞는 선배들이 있을 때는 대회날 새벽 5시에 나와 다름 날 새벽 2시에 지주 들어갔는데 지금은 없으니 7시 정도에 자리를 파한다. 항상 변하기 마련이다.
자세한 기록을 검토한다. 이번 대회를 되돌아보고 다음 대회에 어떻게 달려야 하는지 배운다. 무턱대고 시작인 인생이 무턱대고 끝나지 않아야 한다. 완주 메달을 받으면 대회는 끝난다. 생고생에다가 어지럽고 다른 러너들의 도움을 받으며 완주하면 달랑 메달 하나가 주어진다. 기록증도 받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속에 있다. 그것으로 다 되었다.
마라톤은 출발 선과 피니시 라인이 다를지라도 인생처럼 늘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온다. 우리의 삶처럼 가끔은 운명을 거스를 수도 있고, 신에게 불평하지만 언젠가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달리기가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다 줄지 아무도 모르지만 자신은 알 수 있다.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끝내는지도 모두 자신에게 달려있다.
전 구간의 기록이다. 반환 구간마다 기록을 측정하는 이유는 중간에 돌거나 어느 구간을 건너뛰면 거짓 기록이기 때문에 반드시 전 구간의 체크 포인트에서 기록을 측정해야 한다.
25km까지 5분 40초 페이스, 그러니까 sub4 페이스로 잘 달렸지만 35km 지점 이후로 점점 늦어진다. 마라톤은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는 순간에 자신이 달리기에 대해 얼마나 진지했는지를 모두 보여준다. 그곳에는 요행도 없고, 파워젤이나 특효약도 소용이 없다. 오로지 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매달 달린 거리와 대회날 얼마나 페이스를 잘 조절했는지가 결정한다.
순위 조회다. 전체 824명이 풀코스를 달려 498등이다. 남자 러너 695명 중 437등이다. 나이 구간에 따른 순위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주 멋진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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