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작성법을 다룬 책은 시중에 꽤 많다. 그에 비해 교정·교열 전문가가 쓴 책은 적다. 이 책은 20년 이상 남의 글을 교정해 온 김정선의 책이다. “문장 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문장을 어색하게 만드는 표현들을 담았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반복적인 등장’이란 습관일 것이다. 자기 습관은 스스로 잘 모르므로 교정결과를 보고 “내 눈엔 전혀 어색하지 않은데요”라고 말하는 글쓴이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이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이다.
1. “적·의를 보이는 것·들”을 없애라(22쪽)
접미사 ‘~적’, 조사 ‘~의 ’ 의존 명사 ‘것’, 접미사 ‘~들’ 은 습관적으로 쓸 때가 많다. ‘의’는 일본어, ‘들’은 영어식 표현법이다. 한국어에는 빼더라도 문장에 아무런 문제도 없을 때가 많다. “안 써도 상관없는데 굳이 쓴다면 그건 습관 때문이리라.”
‘~것’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심한 경우는,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것이다” 혹은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를 배려한다는 것이다”처럼 반복된 사용이다. ‘~’의도 마찬가지이다.
“문화적 현상, 지역적 문제, 우호적 관계”가 남발되지만 “문화 현상, 지역 문제, 우호 관계”로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더 깔끔해지고 분명해진다.
2. 굳이 있다고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는(56쪽)
‘있다’는 동사이기도 하고 형용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눈으로 덮여 있는 마을’은 ‘눈으로 덮인 마을’과 같은 뜻인데도 ‘있는’을 습관적으로 붙였다. 문미에 배치할 때가 많은 ‘있다’도 마찬가지이다. ‘길 끝으로 작은 숲이 이어지고 있었다’ 보다 ‘길 끝으로 작은 숲이 이어졌다’고 하면 같은 뜻이면서도 더 간결해진다.
‘~관계에 있다’, ’에(게) 있어‘, ’~하는 데 있어‘, ’~함에 있어‘, ’~있음(함)에 틀림없다‘ 등이 대개 습관이나 사족처럼 붙이는 대표 용어들이다. 굳이 있다고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다.
‘될 수 있는’과 ‘할 수 있는’도 마찬가지로 습관적 표현이다. 생략하면 대부분 더 간결해 진다. ‘안전하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는 ‘안전하게 도와줄 사람을 찾기 위해’로 하면 되고,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어 배고파하는 사람들’ 보다는 ‘먹을 것이 없어 배고파하는 사람들’이 더 낫다.
특히 ‘될 수 있다’와 ‘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능력을 나타낼 때 쓰는데, 가능성이 없는데도 쓰게 되면 어색해진다. 가령 ‘잘할 수 있다’는 괜찮지만, ‘못할 수 있다’는 ‘못할지도 모른다’로 고치는 게 더 자연스럽다. ‘못할 수’는 부정의 가능성인데 이를 긍정의 가능성인 ‘있다’와 결합시키는 것은 아무래도 모순이다.
3.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63쪽)
'~에 대한(대해), ~들 중 하나, ~에 의해, ~으로 인한’ 등의 표현은 주로 지적으로 보이는 문장들에 많이 등장한다. 논문이나 비평문, 칼럼 등이 대표적이다. 특정 대상이나 원인, 인과관계 등을 다룰 때 많이 쓰기 때문이다. 특히 ‘~에 대한’은 ‘~에 대한 연구’ 식으로 논문제목에서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은 ”지적인 문장이 아니라 지적으로 보이는 문장“이라고 저자는 평한다.
'그 문제에 대해 나도 책임이 있다'거나 '서로에 대해 깊은 신뢰를 느낀다'는 문장에서는 ‘대해’를 빼 버려도 된다. 이처럼 ‘대해’는 빼 버리면 그만일 때가 많지만, ‘대한’은 좀 다르다. “노력에 대한 대가”처럼 나름 역할을 하므로 마냥 뺄 수는 없다. 그러나 ‘~에 대한’이라는 식으로 뭉뚱그려, 표현을 더 정확히 하려는 노력을 못하게 한다. 즉 “지적으로 명쾌하게 정리해 주는 듯 보이지만(70쪽)” 실은 명확하지 않은 대강의 표현이 되어, 읽은 글을 토대로 이어지는 독자의 정교한 사고 행위를 제대로 유도하지 못한다.
'종말에 대한 동경이 구원에 대한 희망을 능가했다'는 '종말을 향한 동경이 구원을 바라는 희망을 능가했다'로 고치면 의미가 더 명확해진다. 즉, ‘대해(서)’나 ‘대한’은 ‘맞선’, ‘향한’, ‘다룬’, ‘위한’ 등으로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쓰이는 표현이 ‘~들 중 한 사람’ 혹은 ‘~들 중 하나’, ‘~들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가 상부에 제안한 것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회의 안건으로 채택되었다”는 “우리가 상부에 제안한 많은 것들이 회의 안건으로 채택되었다”로 고치면 덜 어색해진다.
사례 혹은 케이스(case)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꽤나 습관적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중국 같은 경우는’, ‘그 같은 경우에’처럼 흔히 보는 문장에서 ‘나’와 ‘ 경우’, ‘중국’과 ‘ 경우’, ‘그’와 ‘ 경우’는 동격이다. 굳이 경우를 써야겠다면 ‘내 경우에는’, ‘중국의 경우는’, ‘그 경우에’라고 쓰면 될 일이다.
‘의하다’, ‘인하다’는 모두 한자어를 품고 있다. ‘의하다’는 ‘따르다’로, ‘인하다’는 때문이다 ‘ 또는 ’비롯되다 ‘, ’ 빚어지다 ‘ 따위로 바꿀 수 있다. ’~에 의한‘과 ~으로 인한’도 다양한 표현을 막는 꼰대 같은 표현들이다.
4. 내 문장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나?
‘여기저기 지하수로 젖어 있는 회색 암벽들’보다는 ‘여기저기 지하수에 젖어 있는 회색 암벽들’이 더 자연스럽다. 암벽이 ‘지하수에’ 젖는 것이지 ‘지하수로’ 젖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로의’ 나 ‘~에게로’처럼 조사가 겹친 표현은 쓰지 않는 게 좋다. “낯선 세계로의 진입이 시작되었다”에서 ‘로’는 필요 없는 군더더기이다.
‘~로부터’는 대개 ‘~에게’, ‘~와(과)’, ‘~에서’로 나누어 써야 할 표현을 하나로 뭉뚱그려 대신한 것이다. 습관이거나 중독일 뿐이다. 적확한 단어를 찾을 생각 않고 그냥 ‘~로부터’ 하나만 쓰면 되니 얼마나 편할까? 그만큼 문장은 어색해진다.
5. 과거형의 문제(175쪽)
우리말의 시제는 과거, 현재, 미래뿐이며 과거완료는 없다. 그런데도 동사의 과거형에 어미 ‘~던’을 붙여 관형형으로 만들어 쓰는 경우가 많다. 한 문장에서 과거형을 여러 번 쓰면 가독성도 떨어지고 문장도 난삽해진다. 과거형보다 현재형으로 쓰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작년에 그와 처음 만났던 공원에 가 보았다’는 ‘작년에 그와 처음 만난 공원에 가 보았다’로 고칠 수 있다.
6. 문장은 손가락이 아니다(160쪽)
지시 대명사는 꼭 써야 할 곳에만 쓰자. 적소에 잘 쓰면 문장에 질서를 주는 효과를 거둔다. 그렇지만 버릇처럼 여기저기 쓰게 되면 좋지 않다. 더구나 ‘그, 이, 저’ 뿐만 아니라 ‘이러한’, ‘그러한’ 혹은 ‘이렇게’, ‘저렇게’ 등의 표현을 한 문단에 섞어 쓰면 정신없어지는 글이 된다. 저자는 이를 일러 “‘그, 이, 저’ 따위를 붙이는 순간 문장은 마치 화살표처럼 어딘가를 향해 몸을 튼다”라고 표현했다.
7. 접속사는 삿된 것이다(188쪽).
김훈의 소설에서는 불가피할 때가 아닌 한 ‘이, 가’가 튀어나오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저자는 “접속 부사는 삿된 것이다”라고 혹독하게 비판한다. “말과 말을 이어 붙이거나 말의 방향을 트는 데 쓰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리고, 그래서, 그러나’로 기워진 말들의 허접함이, 말하는 자 혹은 말해야 하는 자를 비참하게 만들 때 세상은 삿되다.”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접속사는 소설이나 기타 문학적 표현에는 조심해야 할 표현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그 효용성을 따져본다면, 말과 말을 이어 붙여 논리적인 전개를 돕거나 말의 방향을 틀어 자신의 논지를 강조하고 타인을 공박하는 등의 논설문에는 유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지나치면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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