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애가 터무니없는 자만이나 자기만족으로 치닫지만 않는다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심각한 냉소주의나 자기혐오에만 빠지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살든 어떠한가.
나는 내가 경험한 것만 쓸 뿐이다. 그러나 경험한 대로는 쓰지 않는다.
겁이 없었던 게 아니라 위험을 감지하는 기능이 없었던 것 같다.
선배들처럼 모든 걸 받아들이고 인내와 순종으로 살기에는 무엇을 너무 많이 배웠다. 그러나 그것을 툭툭 털고 일어나기에는 제대로 배운 게 아무것도 없다. 모든 걸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늦은 세상에 태어났고, 극복하고 일어나기에는 너무 일찍 태어났다. 그 여자가 가끔 자신을 계곡에 빠진 세대라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그 점이다. 너무 늦게 태어났거나 너무 빨리 태어난 셈이다.
그 여자는 노동을 하듯 책을 읽는다.
어떤 상처는, 특히 어린 시절의 상처는, 일생을 두고 그 사람을 지배하는 법이다.
그 남자는 사랑에 대해 미숙했던 게 분명하다. 그렇게 저돌적으로 달려들면, 꼭 그만큼 상대가 멀리 도망친다는 그 사랑이라는 감정의 불가해성에 대해 몰랐을 것이다.
그 여자는 그 남자의 달려오는 그 속도, 그 거리만큼 뒤로 물러난다.
그 여자는 지금도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버릇이 있다. 어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얼굴뿐 아니라 손을 보아야 하고, 그다음에는 뒷모습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믿는다. 얼굴에는 대체로 그 사람의 의식이 드러난다. 그의 욕심이라든가 선량함이라든가 고통에 찬 마음 같은 것. 손에서는 그르고 나태고 손, 감성이 예민한 손 등등, 얼굴이나 손에 대한 인상은 거의 즉각적으로 온다.
그 여자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그들의 내밀한 무의식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어른스럽다는 건 싸움 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여자는 지금도 논쟁하는 사람들을 버거워한다. 저마다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믿으면 그만일 텐데, 왜 서로들 싸울까. 물론 그런 논의와 논쟁을 통해 이론의 세계가 넓어지고, 의식이 예리하게 버려지고, 새로운 이론이 탄생하기도 하는 이점은 있을 것이다. 정, 반, 합의 넓이와 깊이를 획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 여자는 논쟁을 싫어하고, 논쟁하는 사람들을 버거워한다.
사랑이, 스킨십과 성적인 접촉을 자연스럽게 요구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수원, 그 여자에게 처음으로 상실감이 무엇인가를 알려준 도시.
먹고 자고 하는 거야 어디서든 못하겠어요?
정신과 의사를 만나 스스로도 다 아는 제 문제를 시시콜콜 털어놓기보다는 역술가를 만나 그들의 들려주는 덕담을 듣는 편이 더 위안이 된다.
그 여자는 역술가의 충고나 결정을 바라는 게 아니다. 이미 결심이 선 상태에서, 후원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래, 잘 될 거야. 그런 격려의 말. 그리고 대부부의 역술가들은 그 여자에게 용기를 준다. 그거면 충분하다. 역학에서는 인간의 삶의 한 주기를 60년으로 잡는다고 한다. 환갑이란 육십갑자가 한 바뀌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점이다. 그러므로 환갑이 되면, 사주풀이상 한 살 때의 운과 똑같아진다. 역술에서 보는 인간의 운명은 60세까지다. 환갑이 넘으면 그건 덤으로 사는 생이다. 별로 조심할 것도 주의할 것도 없이, 그저 지금까지 살던 대로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환갑을 크게 기념하는 것도 그래서이고,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생긴 것도 그래서 일 것이다. 인생은 60년, 그러니 초년은 20세까지다.
때로는, 죽음이야말로 삶을 지탱해 주는 가장 든든한 밧줄일 때가 있다. 죽음이 인간을 가장 아름답게 살게 하는 저울 저편의 추일 때가 있다.
시선이 늘, 제 마음만 바라보고 있다.
거기 가서 울기 위해 그토록 오래 울음을 참은 사람처럼, 울 속을 찾아 그토록 고단한 여행을 한 사람처럼.
알프렛 알바레스는 자살자들의 하나같은 외침은 살려달라는 호소다라고 한다.
그 여자에게 죽음은 단 한 가지 의미를 갖는다. 자신이 제 생명과 운명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굴욕을 참으며 억지로 사는 삶이 아니라, 존엄성을 훼손당하면서 꾸역꾸역 사는 삶이 아니라, 필요하다고 느끼는 때에, 가장 적절한 시기에 언제든 제 생명을 제 손으로 끝낼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이 바로 자살에 대한 그 여자의 생각이다. 언제든 끝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 지금의 이 어려움을 조금쯤 참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그래서, 그 여자에게 자살이란, 삶을 지탱해 주는 가장 든든한 기둥인 셈이다. 목숨을 이 세상에 이어주는 가장 든든한 밧줄인 셈이다.
마음이 사막이 된다. 그 여자를 갈등과 혼란으로 밀어 넣으면서도, 그 여자의 마음에 물기를 공급한 것은 잿빛 바바리다. 그가 떠나자, 그 여자는 사막이 된다. 아무것도 없다.
문학도 하나의 직업이어서, 그 중에서도 한 코, 한 코 실을 엮어 스웨터를 짜는 가내 수공업 같은 직업이라는 것을 안다. 그로부터 4년쯤 후, 그 여자가 직접, 어두운 방 안에서 뜨개질을 해본 이후에야 그것을 이해한다.
성격이 곧 운명이라는 말, 그 여자는 그걸 몸으로 안다.
집시들이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집을 짓지 않는지, 집을 짓지 않기 때문에 떠돌아다니며 사는지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로.
정상적인 성의 과정을 폭력으로 간략화시킨 결과로부터는 애정이 커나갈 기회는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그렇게 오래도록 추운 거리에서 떨게 하는 게 무슨 대통령이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동차 안에 앉아 지나가버리는 게 무슨 대통령이야. 그 여자, 대통령에 대해 갖게 된 최초의 인식은 그거다. 국민교육헌장을 외게 하여 몹시 부끄럽게 만들거나, 추위에 떨다가 결국 화나게 만드는, 그 두 가지다.
그 여자가 진달래를 좋아하는 것은, 그것이 봄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이기 때문이다. 황량하게 말라 있는 산기슭에, 전령처럼, 척후병처럼 진달래는 핀다. 그리고 먹을 수 있는 꽃이기 때문이다.
그 여자도 입대를 하고 싶었다. 입대하기 위해 휴학을 할 수 있는 남학생들이 부러웠다.
떠나는 마당에, 그렇게 마음을 온통 드러내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뒤에 남은 사람에게 가하는 고문이다.
어떤 인간도 다른 인간에 대해 그렇게 폭력적으로 행동할 권리는 없다. 인간의 존엄성은 누구나 똑같은 질량을 갖는 것이다.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성취하지.
경아는 아직도 건강해 보인다. 그 건강이란 아마 정신력일 것이다.
그걸 왜 최루탄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단순히 눈물만 흘리게 하는 게 아니라 호흡이 멎도록 기관지를 아프게 하고, 살갗이 떨어져 나가도록 온몸을 긁어대고 급기야는 탈진 상태로 몰고 가는, 그것을 왜 단순히 최루탄이라고만 하는지. 그 여자는 그때의 시위에서 폭력의 상대성에 대해 알게 된다. 처음에는 맨손으로 교문을 향해 돌진했던 학생들이, 이틀째 되는 날부터 돌멩이를 집어 들기 시작한다. 울분과 좌절과 부당한 폭력을 겪은 이후, 이쪽에서도 자신을 방어할 어떤 도구가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나 둘 진압대를 향해 돌을 던지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나중에는 조직적으로 돌을 준비한다. 저쪽에서는 더 많은 최루탄을 준비하고, 아낌없이 그것을 쏘아 올린다. 폭력의 상대성, 상대성을 띠며 더욱 강도를 높여가는 폭력의 자기 증식성.
나중에,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어, 투신과 분신을 하는 학생들이 나올 때, 그 여자는 그들을 이해한다. 처음에는 최루탄과 돌의 대응이다. 다음, 경찰들이 직격탄을 쏘고 학생들은 화염병을 준비한다. 아예 헬기를 동원해 학생들의 머리 위에서 최루 분말을 투하하고, 여기저기서 의문의 변사체가 발견될 때,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이란 제 목숨을 거는 것밖에는 없다. 그 여자는 이해한다. 목숨을 버리는 그 극단적인 방법까지 완전히 수용하지는 못하지만, 그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마음은 이해한다. 그것은 폭력의 상대성에 대한 이해다. 바로 눈앞에서 점점 더 강화되어 가는 폭력의 상대성, 폭력의 자기 증식성을 지켜보았으므로.
아직도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가슴에서 썰물이 지는 것 같은 사람.
두려움 없이 함께 있는 것, 그것이 투쟁의 시작이야.
브레히트가, 영웅이 없는 시대는 불행하다. 그러나 영웅을 필요로 하는 시대는 더 불행하다고 했잖아. 김우창 교수는 의사義士를 필요로 하는 시대는 영웅의 시대보다 조금 더 불행할 거라고 말해. 의인을 낳지 못하는 시대는 더 불행하고, 그보다 더 불행한 것은 시인만을 가진 시대라는 거야. 한용운을 가졌던 시대...
그 남자는 파리지엔처럼 파리 거리를 걷는 것을 꿈꾸고, 그 여자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설원을 달리는 것을 꿈꾼다.
그 남자는 자신이 읽은 책을 그 여자에게 권한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 남자가 권하는 책은 절대로 읽지 않는다.
그 여자는 그 남자를 알면 알수록 점점 더 드러나는 그 차이점을 감당할 수 없다. 그 남자의 무엇도 받아들일 수 없다.
참을 수 없는 부분은 외면하고, 외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또 참는다.
심각한 공포에 빠져본 사람이, 비슷한 상황에 처하기만 해도 지레 질려버리는 공포.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이미 하나의 생명체라는 것이다. 작품에 대해 독자나 평론가가 무어라 하든, 한 생명체로써 그 작품이 답하도록 내버려 두라. 문학작품은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므로 남들이 무어라 하는 말에 신경 쓰지 마라. 그 대신, 작품이 혼자서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튼튼한 팔다리와 건강한 심장을 달아서 내보내라.
그들은 저마다 자신이 본 베토벤을 자신의 감각과 정서로 연주한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예술은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다.
맹자 어머니는 무덤 근처에 살며 먼저 자식에게 인간 존재의 본질에 관해 가르친다. 인간 존재의 유한성. 누구나 죽음을 맞게 되며, 그렇기 때문에 삶 앞에서 겸허해야 함을 가르친다. 그다음으로 시장거리에서 현실적인 삶의 법칙들을 가르친다. 경쟁과 거래와 생존을 위한 악다구니, 그런 일상적 삶에 대해서. 인간 존재의 유한성에 대해 알고 나면 시장의 원리를 받아들일 때도 탐욕스러워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다음에야 학교에서 학문을 가르친다. 인간 존재의 법칙들을 이해하고, 그다음에는 일상을 지배하는 생존의 법칙들을 이해하고,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학문을 할 자격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모르겠다. 그 여자의 해석 역시 오류일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많은 지식을 저 나름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기도 했을 것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모든 것은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고, 그 점에 있어서는 예술도 마찬가지다.
콩트나 에세이를 쓸 힘이 있으면 그걸 모아두었다가 소설을 쓰라. 그 여자는 고개를 주억거린다.
황순원 교수는, 소설이란 사나이가 한번 인생을 걸어볼 만한 대상이다, 고 말씀하신다.
어떤 일을 하든 순결한 마음으로, 인생을 걸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
자연 속에서 자연을 도우며 자연을 닮아가는 일을 좋아한다.
아버지는 나를 부끄러워하시는구나. 당신의 인생에 한 번 실패한 가정이 있었고, 그 가정에 이토록 큰 자식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으시는구나. 사람들이 붐비는 터미널에서, 나와 함께 있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이게 될까 봐 염려하시는구나. 당신의 지난 삶을 부끄러워하듯이, 나를 부끄러워하시는구나.
다른 어떤 감정도 섞이지 않은 오직 고통뿐.
외할머니는 그 여자가 아주 나중까지도 인간에 대한 진정한 애정과 신뢰로써 기억할 사람이다. 가장 나중까지도.
마음을 다친다.
모든 것을 포기함으로써 얻은 자유. 완전한 맹종은 완전한 자유다.
첫 월급을 탈 때, 그 여자는 또 한 가지 결심을 한다. 앞으로 모든 수입의 10%는 책을 사는 데 쓰리라. 그 여자에게는 늘 책이 필요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 여자는 책 속에서 안전하다. 책으로부터 위안을 얻고 책으로부터 세상을 배우고 책으로부터 기쁨을 얻는다. 책 속에는 모든 것이 있다. 그때까지도 그 여자는 책 속에 길이 있다는 고색창연한 격언을 믿고 있다.
어떤 대상에게 진정으로 마음을 바치기 위해서는 적어도 자신이 가진 것의 10%는 내놓아야 하는 모양이구나 생각했던 것만은 기억한다.
그 여자는 지금도 수입의 10%를 책을 사는 데 쓴다. 책에 속았다고 선언한 지 이미 오래되었으면서도 그 버릇은 여전하다. 그래, 그 여자는 지금 책에 속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질투가 심한 사람들의 특성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점일 것이다.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 타인과 타인을 비교하며, 잘난 부분과 못난 부분을 재어보는 성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자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오직 자신의 내부만 들여다보며 살아왔다. 오직 혼자서, 아마 그 여자의 환경이 그런 기질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문학청년들이 군대에서 문학을 버린다는 얘기를 들은 일이 있다.
그 여자는 언젠가, 혜화 같은 학생을 교탁으로 불러내어 지휘봉으로 배를 쿡쿡 찌르며, 대체 무슨 백 믿고 그러는 거야? 그렇게 말하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언젠가는, 장기 결석자 때문에 출석부가 지저분해진다고, 출석률이 낮아진다고, 짜증 섞어 말하게 될까 봐 두렵다. 매점 뒷방에 모여 앉아 군것질을 하며 교감을, 동료교사를 씹는 것으로 일상을 보내는 날이 올까 봐 두렵다. 그런 일은 받아들일 수 없다. 비록 저 자신이라 해도.
그런 일 자체가 벅찬 게 아니다. 그 아이들에게서 반복해서 그 시절의 자신을 보는 일, 그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는 세상의 정당함과 온유함을 설명하는 일이 고통스럽다.
그 여자는 지금도 삶의 어떤 시기마다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고 믿는다. 어떤 나이가 이르기 전까지는 아무리 하려 해도 불가능한 일, 그러므로 섣불리 덤벼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하다 못해 책 읽기도 그렇다. 제 나이에 맞지 않는 책을 읽으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책장만 넘길 뿐이다. 그런 일들 중 하나가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다. 남에게 무얼 가르치려면 적어도 서른이 넘어야 한다.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이 교사가 되는 제도는 불합리하다. 대학을 졸업해 봐야 고작 스물둘이나 스물셋. 그 나이에는 남에게 무얼 가르칠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심지어는 자신을 바로 세우지도 못하는 나이다. 비단 지식만이 아니라, 세상의 이치거나 인간의 도리거나 시간의 흐름 같은 것, 그런 것들을 체득하여 남에게 설명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서른은 되어야 한다. 그 여자의 생각은 그렇다. 교직에 있던 나날들이 고통스럽고 힘에 겨웠던 이유는 바로 그거다. 다시 그 자리에 선다면, 지금은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쓰는 것, 영혼을 달구는 독서와 정신을 모조리 쏟아붓는 습작의 시간이 필요하다.
읽고 싶었던 책들을 일고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사는 것, 온전히 소명에 따라서만 사는 일의 만족감에 대해 꿈꾼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누리는 평화. 그것이 있다면 일상의 어려움들은 다 이겨낼 수 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궁극적으로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어디인가. 그 여자는 늘 그 목소리를 따라 살고 있다.
그 여자에게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는 버릇이 생긴 것은 바로 그 어려움을 잠깐이나마 피해보고자 하는 무의식에서였을 것이다.
터미널에 가서 마음에 드는 지명을 고른 다음 버스를 탄다. 목적지에 내리면 돌아가는 차 시간을 수첩에 옮겨 적고 근처에 있는 관광안내 입간판 앞에 선다. 그 여자가 알기로 전국의 모든 터미널에나 역 앞에는 그런 지도들이 있다. 입간판에 표시된 관광지 중 한 군데를 고른 다음 다시 택시나 버스를 탄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배운다고 하지만 그 여자는 다르다. 그 여자가 여행을 하는 것은 늘 자신으로부터 달아나는 행위다. 답답한 일상으로부터,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운명으로부터, 늘 다스리기 힘든 자아로부터, 아주 멀리 달아나는 행위다. 그러므로 여행하는 곳이 어디인가는 중요하지 않고 그곳에서 무엇을 보는가 하는 점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잠시만이라도 그곳에서 무엇을 보는가 하는 점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잠시만이라도 자신을 벗어나는 것, 그것만이 중요하다. 금이 그토록 가치를 가지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게 증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사람은 니체다. 어쩐지 니체가 하지 않았을 법한 말이다. 그 여자는 금이 가지는 것과 같은 증여의 가치를 바로 여행에서 발견한다. 여행은 자신의 존재를 다른 곳에 증여하는 행위다. 낯선 도시에, 낯선 길목에, 낯선 사물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온통 쏟아붓는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린 다음, 아주 가벼워진 마음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다시 현실을 버텨볼 힘이 조금 생기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모든 돌에는, 그 여자가 여행을 통해 벗어나려 했던 답답한 일상, 어두운 혼돈,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운명... 그 시절의 모든 기억들이 담겨 있다.
어차피 함께 흐르지 못할 거라면, 징검다리가 적을수록 좋을 것이다.
글의 내용보다 글씨 자체가 더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밥 짓는 냄새라도 맡고 싶다.
그 여자가 잿빛 바바리의 안위를 그토록 궁금해하는 것은, 그가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인간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몸이 가벼워지면 마음도 자유로워진다.
싸움이라는 것에는 결코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는 타인을 향해 주먹을 내밀기보다는 그 주먹으로 제 가슴을 치는 사람이다. 작은 폭력, 내밀한 갈등, 오래 지속되는 긴장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여자가 그걸 아는 이유는, 바로 그 여자 자신이 그렇기 때문이다.
어디든, 어디든 마음을 묶어두어야 한다.
처음부터 내 몫이 아니었던 사람.
그에게도 사랑이 필요할 거야. 늘 곁에 있는 사랑,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사랑, 고통이 아니라 기쁨을 주는 사랑. 그런 사랑이 필요할 거야.
그 여자는 천천히 걸어 잿빛 바바리에게서 멀어진다. 영원히, 그의 인생에서 걸어 나온다.
음식을 먹으면서 무얼 생각하는 건 좋지 않다.
책을 읽고 습작을 하는 도취의 시간은 행복한 천상의 영역이고, 먹여 살려야 하는 육체를 가진 남루하고 고통스러운 삶은 지상의 영역이다.
승부를 보리라. 먼저 문학으로 승부를 본 다음, 그런 다음 내 몸을 살리고 세상을 돌보리라.
그 여자는 자신의 삶에서 결여되어 있던 것 하나를 발견한다. 타인의 삶에 관심이 없었다는 점. 언제나 제 속으로만 파고들어 가 자신의 내부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데만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세상을, 인간 존재를 탐구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방법과, 타인을 관찰하는 방법. 첫 번째 방법은 어렵고 더디지만 성과가 크고, 두 번째 방법은 손쉽고 빠르지만 자칫 깊이를 획득할 수 없는 위험이 있다. 선미 엄마는 타인을 관찰함으로써 세상을 파악해 나가는 유형이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타인을 관찰하고, 지치지 않는 호기심을 느끼고, 그 호기심을 잘 참지 못해 거친 손을 들어 상대방의 심장을 파헤쳐보고 싶어 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행위를 친근함의 표시이고 애정의 손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성인이 되면 고아라는 게 별 의미가 없다. 그때면 누구나 혼자, 제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한번 지나온 길은 돌아가지 않는다.
집이 아니라 방이다.
그 여자는 꿈은 직장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제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 남자가 집에 있고 그 여자가 출근했을 때, 갑자기 비가 온 날이 있다. 그 여자가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 뜻밖에도 그가 우산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 그 여자는 그가 들고 있는 우산보다 먼저 그의 바지를 본다. 그는 파란색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다. 바지 아래로 털이 숭숭한 다리가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그 남자가 다가와 우산을 씌워줄 때, 그 여자는 얼굴을 찌푸린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어떻게 그런 차림을 하고 여기까지 나올 수 있어?’ 그 남자는 서운했을 것이다. 기껏 생각해서 우산을 들고 나왔더니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화를 내다니. 그러나 그 남자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여자는 그가 집에서 그런 모습을 하고 있어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런 차림으로 마당으로 나가려고만 해도, 긴 바지로 갈아입으라고 성화를 한다.
성도 하나의 생물학적 배설행위 같은 것이어서, 젊고 건강한 남자가 몇 달씩이나 성으로부터 차단된 채 지내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많은 월급을 받고 편하게 사는 게 아니라 조금 힘들더라도 내 세계를 지키는 거야.
인생에는 만약에,라는 게 없다. 일어나지 않은 일은 없는 일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내가 나쁘지만, 속을 알고 보면 네가 더 나빠.
정작 그 남자를 떠난 건 자신이면서도, 그 여자는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기를 안은 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그들은 행복해 보였으므로...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 하는 점. 그때, 아주 예민하고 날카로워져 있던 그 여자의 시선이 사물을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게 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 여자는 가장 좋은 영화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꼽는다. 그 영화에는 인생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아니, 인생 바로 그것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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