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IT 기업 위프로의 회장 아짐 프렘지는 한때 인도 최고 부자였다.
하지만 그의 삶은 누구보다도 단순하고 검소했다.
직원들 사이에선 ‘인도의 워런 버핏’으로 불릴 만큼 화려한 소비보다 절제된 리더십으로 존경받았다.
1966년 아짐 프렘지가 겨우 21세였을 때 갑작스런 부친의 사망으로 그는 가정용 식품회사였던 위프로의 경영을 물려받게 된다.
당시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을 공부하던 중이었고 장례식을 치른 뒤 학업을 중단하고 인도로 돌아왔다.
“나는 경영도 모르고 사람을 다루는 법도 몰랐습니다. 그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회사 문을 열었던거죠.”
그가 도착한 회사는 시골 마을에 있었고 주요 제품은 식용유였다.
프렘지는 가장 먼저 제품 품질을 바꾸고 위생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나중엔 IT 기술로 사업을 전환했다.
1980년대 인도 정부가 IBM을 퇴출시키자 그는 과감하게 가전과 컴퓨터 부품 그리고 소프트웨어 개발로 사업을 다각화한다.
당시 인도에선 거의 미개척 시장이었다.
그는 단순히 하드웨어 유통에 머무르지 않고 고급 기술 인력을 양성해 글로벌 아웃소싱 시장을 선점했다.
그는 회사를 이렇게 정의하고 인재 양성에 집중 투자했다.
“사업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사람을 성장시키는 도구입니다. 고객보다 먼저 당신이 성장해야 회사가 살아납니다.“
프렘지는 저가 경쟁보다 품질 중심 전략을 택했고 북미와 유럽의 까다로운 고객사들을 사로잡으며 급성장했다.
그가 이끈 위프로는 현재 시가총액 약 322억 달러(약 43조 원)에 달하며 TCS, 인포시스와 함께 인도 IT 3대 기업으로 불린다.
프렘지는 30년 넘게 일반 사무용 택시로 출퇴근하고 자신의 집에서 단 한 명의 하인 없이 생활했다.
출장 시에도 비즈니스석 대신 이코노미석을 이용했고 호텔 대신 회사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검소함은 돈을 아끼기 위한 게 아니라 본질을 잊지 않기 위한 연습입니다.”
위프로가 수십조원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그는 자신의 급여를 제한하는 한편 재산의 3/4 이상을 사회에 기부했다.
그가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은 210억 달러(약 29조원)에 달하며 인도 전역에서 수천 개의 공립학교와 보건 인프라가 그의 이름 없는 지원으로 유지되고 있다.
위프로의 기업가치는 단지 숫자가 아닌 사람 중심의 경영 철학이 이룬 결과였다.
그리고 검소함은 그가 남긴 소리 없는 메시지이자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영향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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