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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가 죽지도, 우리를 죽여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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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가 죽지도, 우리를 죽이지도 않기를...

 

이라고 썼다가 죽여주기를 이라고 바꿨다. 그러니까 우리를 죽이지 않기를... 은 욕망이다. 하지만 죽여주기를... 욕망이 아니다. 꽃이 피기를, 계절이 가기를... 과 같은 자연스러움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기대하거나 바랄 때 바보가 된다. 놓아버리는 순간 지혜를 얻는다. 남자는 늘 생각한다. 바보가 되겠다고 말이다. 바보는 다 얻지만 지혜로운 인간은 모든 걸 잃기 때문이다.

 

간혹 글을 올리면 오히려 남자가 감동받는다. 어쩌면 내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감동 말이다. 이게 나에게서 나온 건지조차 의심이 될 정도fh 글을 몇 번이고 읽는다. 처음 한 번은 요란 떠는 심장을 고요하게 만들고, 그다음 다시 읽을 때는 심장을 벌떡거리게 만든다. 남자는 이 자극이 좋아 계속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사는지도 모른다. 자극이라는 단어, 아주 좋은 말인데 참 안 쓰는 단어다. 


 

클리셰인 원래 제목은 '사랑이 죽지도, 우리를 죽이지도 않기를...'이다. 영국 르네상스 후기의 시인이자 성직자인 John Donne의 詩 'The Good-Morrow' 마지막 구절을 '쓸모의 철학' 번역가가 기가 막히게 잘 옮겼다.

 

우리를 죽이는 것은 우습게도 우리가 가장 시선을 많이 두는 곳, 마음에 둔 것들,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들이다. 달리기가 죽지도, 우리를 죽이지도 않기를 기도한다.

 

마라톤은 언제나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지만, 피니시 라인을 밟고 들어온 순간에는 이전에 출발했던 사람은 이미 없다. 항상 출발했을 때와 다른 사람으로 돌아오는 그 매혹적인 유혹이 달리기를 멈추지 못하게 한다.

 

다행히 날씨는 8도라서 춥지 않았다. 한강에서 부는 바람이 제법 예리하다. 대회에 나갈 때도 청바지와 후드티, 개발자 복장을 한다.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추워 보였는지 윤자 선배가 우비를 챙겨주고, 정자가 등번호(Bib Number)를 가슴 4군데 오핀을 꽂아 달아 준다. '조심해, 가슴 찌르지 말고!'

 

32km 지점에 도착한 시간은 2시간 58분이다. 4시간은 적어도 넘기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덜 망하려면 끝까지 집중하고 경계를 풀지 않았어야 했다. 지금까지는 그저 달리기였다면, 이제부터가 진짜 마라톤이다.

 

남은 10km는 영혼이 빠져나가고, 육체가 가진 힘을 내는 엔진은 꺼진 상태고, 호흡을 맞춰주는 동료 러너나 페이스메이커도 없었다. 주로는 안양천 합수부에서 양천구청, 광명으로 가는 안양천으로 방향을 튼다. 철산교 근처 2차 반환점을 돌아 나와야 한다.

 

한강을 다시 만나 반가웠다. 한강공원 물빛무대 광장까지 남은 5km는 거의 탈진 상태로 들어왔으니 기록은 좋지 않았다. 삶의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좋은 달리기와 나쁜 달리기 모두 러너에게 숙명이다. 기관에 소속된 프로 선수를 엘리트라 부르고, 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달리는 아마추어 러너를 마스터즈라 부른다. 달리기가 좋아서 달리는 나머지 러너는 그냥 일반 러너다.

 

기록에 관계없이 풀코스를 달리는 일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힘들다. 고통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새로운 목표를 세웠고, 좋은 기록을 위해 겨울에 맞서 훈련했고, 올해 첫 참가한 공식적인 달리기로 남을 마라톤을 끝낸 것이다. 그 여정이 즐거웠으면 되었다고 위로한다.

 

운동장 트랙을 달리며 집중할 때의 기분을 느끼길 바랐지만 돌아보니 이번 경주에서는 한 순간도 그렇게 달린 적이 없었다. 달리고 나면 늘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2026년 처음으로 뺏은 보라색 줄과 노란 메달이 예뻤다. 메달 안의 하얀 가루는 눈이다. 절대로 녹지 않는 눈. 

 

 

3월 15일 서울 마라톤 풀코스를 또 달리기로 했다. 삶은 이어지고 달리기도 이어진다. 자유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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