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 바른 글

조길성 시인의 '나는 보리밭으로 갈 것이다'

지구빵집 2017. 5. 9. 00:34
반응형


그렇게 늦은 밤은 아니었다. 시인이 SNS에 글을 올렸다. "저 늦사랑 고백했는데 통과됐어요. 지금 이 순간 죽을 때까지 사랑할 겁니다"라고 했다.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자기도 이제야 사랑할 여자가 생겼다고 수줍게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얼굴이 환해 보였다. 아주 행복하게 웃을 때 입이 귀에 걸린다고 하는데 시인은 진짜로 입이 귀 바로 아래 걸릴 정도로 웃는다. 합석한 사람이래 봤자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지역 활동가들과 이사 온 다음 해에 친하게 된 나 정도이지만 모두 이쁜 사랑 하시라고 축하해 주었다.


그때가 작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찬바람이 막 피부를 찔러대어 한겨울보다 더 춥게 느껴지는- 때였다. SNS를 열어 손을 가리며 보여주는 사진 속의 얼굴은 시인보다 많이 어려 보이는 여자 사람 사진이었다. 시인이 이전에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어떤 사랑을 했는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나는 잘되기를 바랐다. 시인은 아직도 혼자다.


시인은 늘 술을 샀다. 나는 한 번도 대놓고 술을 시인에게서 술을 얻어 마신 적이 없었다. 돈 가지고 마실 수 있는 술은 한정돼 있지만 돈 없이 마실 수 있는 술은 거의 무한대였다.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앓기도 많이 앓았다. 병원 신세를 지면서도 미소는 멀쩡했다. 무한대의 낙천성은 시인으로 타고난 재주가 아닌가 싶다.


분노였다. 시인의 시는 분노의 다른 표현이었다. 시구는 사나웠다. 단어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가슴을 찌른다. 시를 읽는 내내 숨이 턱턱 막힌다. 그 분노에 동의하지 못하는 죄책감에 불편했다. 누구에게나 자기 삶이 가장 중요하고, 자기 경험이 가장 의미심장하다고 한다. 그러한 느낌들을 우린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고 있다. 누구나 그렇다.


가족, 집, 밥, 애정, 연민, 동감 등 함께 느껴야 마땅한 소중한 것을 누려본 적이 없는 사람이 내뱉는 언어는 불편하다. 균형감이 없기 때문이다. 자연은 균형과 진공을 싫어한다. 크게 보면 균형이 잘 잡혀 있지만 좁혀보면 전혀 균형을 이루고 있지 않다. 자연에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한 것을 메꾸려 하는 자연 현상이기에 그렇다. 연인을 만들지 못한 사람이 내뱉는 연애론은 공허한 울림이다. 그래서 시인의 모든 시는 거짓이 없다. 불편하지만 모두가 진실이다. 때로는 폭력이라고 느껴지지만 얻어터져도 기분 나쁘지 않다. 우리는 바로 곁에서 지켜보았다. 시인이 어떻게 세상에 분노하고, 그 분노를 어떻게 푸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극복하며 지내는지 알게 모르게 가끔 지켜보았다.


시집 맨 앞에 나오는 시인의 말이다. "그나마 마음 주고자 노력했던 세상 모든 고향이 나를 버리고 떠나가고 있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란 말로 시작된다. 황지우 시인의 <뼈아픈 후회>는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라는 말로 시작된다.


『나는 보리밭으로 갈 것이다』는 시인이 7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시집으로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54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시인의 첫 시집 [징검다리 건너](2010) 이후 7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시집이다.


출판 기념회에 다녀온 뚱보가 특별히 가져다주었다. 그것도 선거 운동이 한창인 어린이날 오전 대공원 앞에서 나에게 시집을 주었다. 투표일 전 마지막 휴일에 역시 선거운동을 나가서 시집을 읽었다. 미세먼지 대란이 시작되어 어제, 오늘 대공원에는 지하철이 서는 때를 제외하고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시인이 말했다. '그녀는 나의 글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그녀는 차를 좋아하면서도 커피를 자주 마신다. 난 커피를 자주 마시면서 차를 좋아한다. 간혹 조금 남은 커피에 따뜻한 물을 길어, 커피잔에 부어 나에게 따라주기를 좋아했다.'

조길성 시인의 '나는 보리밭으로 갈 것이다' 이제 시집 이야길 해보자.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