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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21.0975km 하프 완주가 준 교훈 - 20170514 과천 마라톤 완주 후기

지구빵집 2017. 5. 1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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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21.0975km 하프 완주가 준 교훈 - 20170514 과천 마라톤 완주 후기


헉헉~ 도저히 안 되겠다. 걷자. 안돼! 18킬로 표지판이 아까 지났는데 왜 19km 표지판이 안 보이는 거야.

아르바이트생이 빠뜨린 건가? 아님 2km 간격인가? 저기 보이는 게 20km인 줄 알았는데 와보니 19km. 으아~~$@#%#$%#$^#$^


어제 강풍을 동반한 세찬 비로 날씨는 맑았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연한 녹색의 나무가 주는 대비가 선명해서 좋은 날이다. 2주 전 서울 하프 마라톤을 2시간 29분 기록으로 완주하고 오늘은 과천 마라톤에 출천해 두 번째 하프에 도전하게 된다. 어제의 두려움은 맑은 바람에 쓸려가고 일찍 길을 나섰다. 과천을 크게 한 바퀴 돌고, 영동대교 전 수영장 부근에서 돌아 다시 관문체육공원까지 오는 코스다. 코스가 홈그라운드요, 날씨도 좋으니 많이 고생하지 않겠구나 라는 순진한 생각으로 청계산 자락이 내려오는 마을 뒷산을 넘어 경기장으로 갔다.


고구려대회 자원봉사, 서울 하프에 이어 과천 마라톤까지 참석하여 보니 대회 시작 전의 분주하고, 생기있는 어수선한 분위기는 이미 익숙한 모습이 되었다. 여유 있게 옷을 갈아입고, 맡기고, 모여서 체조하고 달릴 준비를 하였는데 따가운 날씨로 인해 갑자기 가방에 있는 선크림도 안 바르고, 모자도 꺼내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이런~ 창피함을 무릅쓰고 가방을 다시 달래 모자도 꺼내고 선크림도 바르고 다시 물품 보관소에 맡겼다. 


모두 출발선에 모였다. 노련한 선배님들은 약간 앞에서 뛰시고 나와 함께 달리는 동료들은 중간에 모여서 달리기로 하였다. 전반 10km 코스는 과천을 크게 한 바퀴 도는 코스였다. 날은 청명했지만 햇살이 눈부셨다. 이미 더위가 시작되었지만 나무 그늘로 달리게 되어서 덥다고 느끼지 못했다. 9km 정도까지 달려 관문 운동장 도착 때까지 영희, 종완 선배님하고 함께 달렸다. 과천에서 10년 정도 살아오면서 함께 했던 사기막골 주말농장이 여기고, 착한 낙지는 이곳으로 들어가면 있고, 이 골목 위에 우리 집이 있고... 설명해가면서 여유만만이었다. 약간 빠르게 달린 감이 느껴졌지만, 그런대로 잘 달렸다. 9km를 지나며 서로 힘내라 격려하며 헤어졌다. 


아이고~ 이제부터 눈앞이 깜깜해짐을 느꼈다. 앞에서 달린 선배들은 이미 까마득하게 멀어지고, 반만 달리기로 한 을기씨나 경미님도 만나지 못할 것이고, 그렇다면 죽기 살기로 뛰는 일만 남은 거였다. 드디어 10km 지점인 관문체육공원을 지나칠 찰나 '그만 뛸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날씨도 뜨겁고, 컨디션도 별로고, 같이 뛸 사람도 없고... 그만둘 이유는 차고 넘쳤다.

 

기록경신도 해야하고, 지루함을 느끼고, 혼자 달리는 연습도 해야 하고... 계속 달릴 이유 또한 충분했다. 과감하게 양재천으로 뛰어 내려갔다. 양재천 변은 뜨거운 햇살로 벌써 산책로가 달구어져 있었다. 벌써 땀은 흘리고, 힘도 빠져가는 상태다. 그늘은 중간 중간 있는 다리 밑에만 있었다. 남은 12.0975km 를 혼자 달려야 했다. 힘들었다. 전반부에 벌어놓은 시간을 후반에 다 써버렸다. 어쨌든 영동 1교까지는 달려야 나중에라도 집에서 뛰어가든지 걸어가든지 할 터였다. 3킬로마다 있는 중간 급수대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우선은 배가 고픈데 15킬로 반환점 돌아 있는 초코파이와 바나나는 보이지 않았다.


약 13킬로 지나갈 때 이종현 감독이 반환점을 돌아 방금 전에 남자 1등이 지나고 그 외 몇몇이 달려갔으니 10등 안에는 든 것 같다.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화이팅! 하고 손끝을 살짝 부딪힌다. 그리고 달리니 갑열씨, 오명순, 배용한, 윤환구, 한순분, 김주언, 이준형님 까지 모두 지나간다. 이때다 하고 선배님들 지나갈 때마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러주었다. 윤환구 화이팅! 배용한 화이팅! 오히려 내가 다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반환점을 돌아 급수대에서 초코파이 3개와 바나나 2개를 물과 함께 먹고 다시 달리기 시작이다. 날은 너무 더웠다. 모자 양쪽으로 땀방울이 아른거리는데 반짝이는 구슬같이 매달려 있었다. 발은 무겁고 빨리 달리고 싶어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점점 느려졌다. 거리를 알리는 표지판은 점점 간격이 늘어나나 보다. 드디어 관문사거리를 지나고 관문 체육공원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 이제 다 왔구나. 흑흑~~


생애 두 번째 하프를 완주했다. 회원님들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니 정말 기뻤다. 삶에서 이런 날이 오리라곤 상상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한 발 한 발 러너의 길을 달리고 있다. 무릇 생명의 본질적인 목적은 생존과 유전자의 다음 세대로의 전달이라고 한다. 그래서 최초의 인류도 달렸고, 최후의 인류도 달릴 것이다. 누가 얼마나 오래 달릴 지 알 수 없다. 누가 우리의 앞을 보겠는가.



2017년 4월 30일 서울 하프 마라톤 2시간 29분


2017년 5월 14일 과천 하프 마라톤 2시간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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