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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구간도 걷지 않았다. 2018년 14회 고구려 역사지키기 마라톤 대회 풀 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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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구간도 걷지 않았다. 2018년 14회 고구려 역사지키기 마라톤 대회"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간다. 좋은 순간들은 자주 오지 않는다. 설령 온다해도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요즘은 정말 그런 날들이 있었는지, 가끔이라도 오긴 오는 건지 자주 헷갈린다. 지난 1월에 열린 시즌 오픈 마라톤 하프코스를 1시간 59분에 완주했다. 내일은 고구려 역사지키기 마라톤 대회에서 풀코스를 뛰기로 했다. 두려웠다. 항상 코스에 상관없이 장거리를 달리게 되면 무서움이 고개를 들었다. 잘 뛸 수 있을까? 완주할 수 있을까? 포기하면 어쩌지? 혹시나 다치면? 하는 주저함이 시도때도 없이 생겨난다. 겨울내내 훈련이 충분치 않았고, 잦은 술자리와 게으름에 빠져 산 이유까지 합하면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한 트럭이 넘었다. 중간에 포기해도 되고, 즐겁게 달리면 된다는 위안으로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3월 말에 열리는 메이저 마라톤 대회인 국제 동아마라톤 대회가 광화문에서 열린다. 몇 개의 메이저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면서 러너들은 대회 한달 전에 장거리 훈련 대비라든가, 충분한 적응력을 갖추기 위해 다른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다. 주로 32킬로미터를 뛰거나 풀코스를 뛴다. 먼거리를 뛰는 적응력을 몸이 기억하게 만들어야 메이저 대회에서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다. 몸이 익숙함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생각대로 뛰는 것이 아니라 뛰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훌륭한 스포츠 선수들은 모두 이런 상태로 경기를 치룬다. 몸이 알게 하면 생각은 저만치 떨어져 있어도 기록이나 가능성과는 상관이 없다. 몸이 알아서 하기 때문이다. 

2월의 마지막 주말이다. 바람도 없고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나와 날씨는 춥지 않았다. 낮에는 영상 10도까지 기온이 올랐다. 장갑과 모자는 필수고 달리기 시작하면 땀이 나면서 더워지는 상태를 감안해서 적당히 보온옷을 입는다. 약 1만 2천명의 러너들이 모였다. 이전의 기록으로 배번호와 출발선의 위치를 배정한다. 풀코스 A그룹부터 D그룹까지, 32km 코스의 그룹이 이어지고 뒤에 하프 선수들, 마지막에 10km 러너들의 위치가 된다. 보통 한 그룹이 출발하고 나면 5분 정도 후에 뒤를 이어 출발한다. 혼잡함을 줄이기도 하고, 거리에 따른 왕복시간을 다르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힘찬 함성과 함께 출발한다. 풀코스 C그룹에 배정 됐는데 페이스 메이커를 해주기로 한 선배님이 B그룹이라서 같은 그룹으로 가 함께 달리기로 했다.

나이가 나보다 몇 살 더 많은 어른들에겐 적절한 자제심이 있다. 자기의 욕망이나 욕심을 적당한 선에서 멈출 줄 아는 분들이다. 나이 차이가 그리 많지도 않은 나와 비교할 때 큰 차이점이다. 먼저 달리고 싶고, 기록을 위해서 빨리 나가고 싶기도 하고,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지나치기라도 하면 저조한 기록으로 무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겠지만, 상대방을 위해 적당히 자제하고 억누를 줄 아는 마음이 있다.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 걸 닮아가야 할 나이가 됐다. 마구 올라오는 욕망의 분출을 조금은 억누르고 자제하는 방식을 나름대로 배워갈 나이가 됐다. 옆에 그런 선배가 달리고 있다. 조금 앞서 달리면서 최대한 끌어 올려주는 사람, 내가 스스로 빛나게 만들어 주시는, 더 이상 못뛰겠다고 징징대기라도 하면 아주 천천이 포기하지 않도록 달려주는 선배와 같이 뛰고 있다. 

잠실 종합 운동장에서 한강변으로 나와 청담대교, 영동대교, 성수대교, 동호대교, 한남대교를 지나 반포대교를 못미쳐 돌아서 다시 탄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양재천을 따라 늘 달리는 길인 관문체육공원까지 왕복하고 다시 잠실 주경기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양재천으로 들어와 조금 가면 하프 반환점이 있고 거기서 6킬로미터 정도 달려서 영동1교를 지난 지점에 32km 반환점이 있다. 반환점에 다다르면 항상 이제 여기서 돌아갈까 하는 마음이 든다. 사실 목표한 코스를 모두 달리지 못하고 돌아가도 아무렇지 않은 일이다. 가까스로 반환점을 지나치면 다시 마음은 평온을 유지한 채 마지막까지 계속 달리게 된다.

10km, 21, 25, 32km, 35, 36, 38, 39km 표지판이 반갑다. 거기서 195미터를 지나고 나면 표지판이 바뀐다. 피니시라인까지 남은 거리를 표시한다. 남은거리 3킬로미터를 나타내는 표지판이 보인다. 더 뛸 힘이 남아있다손 치더라도 속도를 마음대로 낼 수 없다. 발은 부지런히 내 딛지만 중력은 중력인지라 이탈은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다. 먼거리인지라 주위에 주자도 별로 없다. 관문체육공원을 지나 과천 성당 앞에 풀코스 반환점이 있다. 늘 훈련하는 주로이면서도 낮설다. 반환점을 돌아 영동 1교, 등용문, 탄천 합수부까지 쉬지 않고 달린다. 한강변으로 다시 달려 나간다. 멀리 잠실 종합 운동장이 보인다. 

온화한 표정과 웃는 얼굴로 마지막 속도를 낸다. 기분만 그렇다. 운동장으로 들어와 피니시 라인으로 미끌어져 들어간다. 10km와 하프, 32km를 먼저 달린 동료들이 모두 피니시 라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까지 함께 달려준 선배님과 손을 잡고 마지막 피니시라인을 넘었다. 선배님과 어찌나 옆에 붙어서 달렸는지 하프기록과 골인 기록이 완전 동일하다. 모두가 환영해준다. 선배님에게 고생하셨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3시간 28분 09초. 춘천 마라톤 완주 기록보다 다시 2분을 줄였다. 너무나 기뻤다. 두려움은 어디로 갖는지 찾을 길이 없다. 성실하고도 착실하게 삐뚫어지지 않고 달려준 나의 몸과 다리에 감사했다. 러너들은 20분의 기록 단축보다 강인한 정신력과 자기를 아는 몸, 그리고 함께 달리는 동료들에게 더 기뻐하는 사람들이다. 

단 하나의 구간도 걷지 않았다. 묵묵히 긴 거리를 달려왔다. 썩 좋은 주로는 아니었다. 왕복하기에는 좁기도 하였고, 중간 중간 질주하는 자전거들이 위협적이기도 했다. 

생에 3번째 마라톤 완주가 끝났다. 2017년 2월 마라톤 입문 후 세 번째 완주를 무사히 뛰었다. 저릿한 다리의 통증이 기분 좋다. 계단을 오르내리기 불편하지만 2~3일 지나면 말끔하게 회복된다. 

언제 어디서든 어떤 거리를 달린다 해도 달리는 일은 모두 같다. 과거에 대한 회한과 미래에 대한 불안은 늘 우리와 함께 있다. 사람들은 제각기 행복하지 않다. 지나쳤던 날들에 대한 애틋한 기억들, 아쉬움, 그리움이 늘 남아있다. 앞으로 닥칠 걱정과 불안,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나는 벗어나기로 했다. 지난 일들에 기뻐하고 아파하는 삶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오지 않을 미래를 걱정하는 일도 멈추기로 마음 먹었다. 달리기로 이야기 하고 싶었다. 내가 달리는 길의 3미터 앞만을 바라보기로 했다. 결승선이 어디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달리기 시작한 지점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중간의 거리 표지판을 다 무시하기로,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내가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바로 눈 앞 주로만을 바라보기로 했다. 지금 나에게 맡겨진 유일한 일이다. 내가 지나쳐 뛰어온 거리가, 앞에 남겨진 뛰어야 할 거리가 나를 지배하게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달리면서 생각했다. 철저하게 내가 금방 도착할 바로 앞의 길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나의 몸 중심을 바로 하고, 옴 몸의 힘을 빼고, 두 발을 굳게 딛고 무릎에 의지해, 중력을 이기고 중력과 타협하며 나아가려 한다. 그게 바로 내가 지금 달리는 이유다.-見河-


No이름소속참가부문배번호반환기록최종기록부문순위기록증출력
1김봉조개인풀코스 남자702992:15:514:2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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