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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서재

공터에서 -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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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죽음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마동수는 1979년 12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산외동 산18번지에서 죽었다." 기사라고 해도 무방할 건조한 언어로, 아버지 마동수의 생애가 먼저 이어진다. 어머니 이도순의 생애도 나올까. 아버지가 출생한 1910년부터 그의 두 아들이 살아간 1980년대까지, 현대사의 바람은 아버지와 아들들을 자꾸 집에서 몰아낸다. 그렇게 만주와 길림, 상하이와 서울, 흥남과 부산 그리고 베트남, 미크로네시아를 떠나고 되돌아 온다. 모멸과 비애를 견디며 하루를 가차없이 살아내지만, 끝내 돌아올 수밖에 없다. 


사람의 생애는 그 사람과 관련이 없이, 생애 자체의 모든 과정이 스스로 탈진되어야만 끝난다고 차남 마차세는 생각했다. 말라 비틀어진 아버지의 성기, 고등학교 때 친구를 다시 군대에서 보급계로 만난 친구 오장춘, 항상 세느주점에서 만나고 말끝마다 '니?'자를 붙이고 마차세의 딸을 낳는 아내 박상희, 아버지의 흔적을 지우고 다른 띠에서 살아보려 애쓰는 장남 마장세, 흥남부두에서 애기인 딸과 남편을 잃고 부산에서 마동수를 만나 함께 살게 된 차세와 장세 두 아들의 어머니 이도순,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해방 후 공산주의 운동을 하던 하춘파, 마동수를 길림으로 불러낸 형 마남수, 그리고 현대 시대를 거치면 만나는 군상들이 그려져 있다.


참 지독한 김훈이다. 그는 욕심이 없다고 말한다. 영웅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 쓴다고 한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지독하게 영웅이 되고 싶어하는 한 작가, 아니 한 늙으수레한 작가가 보인다. 이야기는 좀 알고 싶을 만 하면 끊긴다. 좀 이어질 만 하면 중단된다.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면 바로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찌 그리도 빈 칸을 많이 남겨두는지 모르겠다. 자기는 한 70%만 이야기 하면 나머지 30%는 독자들이 채울 줄 아나보다. 사실 몰라도 그냥 지나가는 게 좋지 설명충도 아니고 구구절절 말하는 게 오히려 추레해 보이기도 한다. 김훈은 그런 문장을 쓴다. 


고XX씨 같은 사람을 싫어한다. 진심도 없이, 무능하면서 당대의 문장가 어쩌고 하는 말을 자기 스스로 인용하는 사람, 겸손할 줄 모르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을 경멸한다. 그런 인간에 비하면 김훈은 얼마나 친절한가.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으면서도 독자에 기대고, 부탁하고, 감사하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인다.



울트라 마라톤에 출전하기 위해 봉고차를 빌려 10명 남짓한 사람들을 태우고 서울에서 가는 길이었다. 사실 여자가 가지 않았다면 가지 않았을 대회였다. 그렇다고 내가 하는 일을 여자가 간섭하진 않는다. 내 옆 자리에 앉아서 한시도 정신을 놓지 않는다. 늘 깨어있는 사람이다. 2시간 남짓 가는 동안 중간중간 이야기도 하고 웃기도 하다가 조용해지면 이 책을 읽는데 여자가 물었다.


"무슨 책이야?" 


"어, 김훈 소설 공터에서 읽고 있어." 손가락으로 읽는 페이지를 끼우고 책의 표지를 보여주었다. 


"흔들리는 차에서 읽으면 눈에 안 좋아." 여자가 말했다.


나는 '여자가 눈이 나빠지는구나'하고 생각했다. 나중에 보니 진짜 많이 나빠지고 있었다. 우리는 생각하지 않은 말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언어는 세계다. 내가 말하는 언어가 나의 세계다. 세계를 지키려면 말하지 않아야 한다. 세계를 무너뜨리려면 말해야 한다. 무너지지 않는 세계는 죽은 세계다. 여자가 언듯 스쳐가며 말한 눈이 안 좋아 진다는 말이 마음에 쿵! 하고 세게 박힌다. 아팠다.


그래서 오늘 조금은 이상한 장면이 보였다. 내가 조금은 알아 볼 수 있는 거리에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데 여자는 안 보인다는 듯이 걸어 오다가, 그렇게 걸어오다가 갑자기 나를 발견하고 포즈를 취하고, 마구 뛰어오기도 하고 했다. 그 짧은 순간이 지나고 나서야 보지 못한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하, 여자도 나와 같이 늙어가는 구나. 기쁜일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여자는 젊어지는 듯 했다. 나는 늘 늙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중요한 건 우리는 젊게 오래살길 바란다. 사실 그런 일은 행복하지 않은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나이 먹지 않고, 같이 늙어가지 않는 일, 사랑하는 사람을 늘 먼저 보내는 일은 슬픈 일이다. 함께 시대를 살았으면 함께 시대를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김훈 


“이 작은 소설은 내 마음의 깊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을 엮은 글이다. 나의 등장인물들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김훈)


"더 길게  쓰고 싶었지만, 기력이 미치지 못했다. 수다를 떨지 말아야 한다고 늘 다짐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나의 등장인물들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늙기가 힘들어서 허덕지덕하였다. "



// 여성단체


아기가 남편의 등에서 오줌을 쌌다. 남편이 처네를 풀었다. 이도순은 보따리에서 기저귀를 꺼냈다. 딸아이의 작은 성기가 추위에 오므라져 있었는데 그 안쪽은 따스해 보였다. 거기가 따뜻하므로 거기가 가장 추울 것이었다. -p.95


알라딘 ‘100자평’ 란에선 “아동성추행적 표현으로 신고하고 싶다” “구역질 난다” “여자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굉장히 불쾌하다” “(김훈 작가는) 젖, 여자 성기 묘사 없으면 큰일나나보다” 등의 분노 담긴 반응을 쉬이 찾아볼 수 있다.



소설가 김훈


1948년 서울 출생. 오랫동안 신문기자 생활을 했으며, 소설가이자 자전거레이서다. 지은 책으로 에세이 '내가 읽은 책과 세상', '선택과 옹호', '문학기행1, 2'(공저)'풍경과 상처', '자전거 여행', 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칼의 노래', '현의 노래', '강산무진' 등이 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삶의 양면적 진실에 대한 탐구, 삶의 긍정을 배면에 깐 탐미적 허무주의의 세계관, 남성성과 여성성이 혼재된 독특한 사유, 긴장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매혹적인 글쓰기로 모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산문 미학의 한 진경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훈의 문학에 대한 일갈! - 이러니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지. ^^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어떻게 문학이 인간을 구원합니까. 아니 도스토예프스키가 인간을 구원해? 난 문학이 구원한 인간은 한 놈도 본 적이 없어! 하하….
문학이 무슨 至純하고 至高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할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김훈 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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