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마라톤 준비 마지막 장거리 달리기, 그리고 봄이 오겠지.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김애란, <바깥은 여름>
이렇게 맑고 따뜻한 날, 오후에 키 큰 나무들이 보이는 곳에 나란히 앉아 차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한동안 못 만나다 가끔 만나면, 키가 조금 큰 것처럼 보이고, 머리가 많이 길었고, 새 신발을 신고 나오는 사람. 따뜻하고 귀여운 차림에 오랜만이라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고, 주머니에서 차를 몇 개 꺼내 따뜻한 물을 몇 번이고 얻어다가 우려내 오랫동안 마시는 남자.
오늘은 좀 그런 날이었다. 마치 아침 달리기 운동을 마치고 나서는 내일을 오늘 당장 살아버리고 싶은 그런 하늘과 날씨로 보냈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일이 옆에서 보기엔 답답하게 보여도 행복에 가까이 가는 길이라는 것을 언제 알게 될까. 담배를 참은 지 13일이 지나고 있다.
3월 17일 열리는 서울 국제마라톤/동아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느라 12월 초 장거리 훈련을 시작했다. 주중에 세 번 하는 훈련과 매주 일요일 장거리 경주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달린 남자는 조금 더 나이를 먹었다. 달리기의 일상이 모든 계절마다 순환하는 삶을 보고 있다. 마지막 달리기 점검으로 운동장의 붉은 400미터 트랙을 50바퀴 20킬로미터 혹은 62바퀴 25킬로미터를 달리는 게 목표다. 아무리 느리게 달리거나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해도 목표를 완수하는 일은 여전히 지켜야 한다. 남자는 물론 지킬 것이다. 이렇게 치러지는 하나의 행사나 시간 순서로 정해진 일을 마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왜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이 드는지 의아하다. 시간이 절실한 건지, 사람이 절실한 건지 그 둘 다인지 모르겠다.
왜 이런 좋은 날에도 쓸쓸한 사람을 만난 것일까? 왜 내 앞에서 울 용기가 없는 사람이 불현듯 나타난 건지, 행복할 줄 알면서 아픈 사람을 보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그와 마주 앉아 술잔을 부딪치기라도 하면 최대한 가속 페달을 밟아 온몸이 부서지도록 곤두박질치고 싶었다. 특별히 위안을 받고 싶은 날이 자주 오지 않기를. -見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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