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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사 ( Mi Ultimo Adios ) - 호세 리잘

지구빵집 2019. 3. 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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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인사 ( Mi Ultimo Adios ) " 호세 리잘

 


잘있거라 내 사랑하는 조국이여


태양이 감싸주는 동방의 진주여


잃어버린 에덴이여 !


나의 슬프고 눈물진 이 생명을


너를 위해 바치리니


이제 내 생명이 더 밝아지고 새로워지리니


나의 생명 마지막 순간까지


너 위해 즐겁게 바치리

 


형제들이여, 그대는 한 올의 괴로움도


망설임도 없이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아낌없이 생명을 바쳤구나


월계수 백화꽃 덮인 전나무관이거나


교수대거나 황량한 들판인들


조국과 고향을 위해 생명을 던졌다면


그게 무슨 상관이랴

 


어두운 밤 지나고


동녘에서 붉은 해 떠오를 때


그 여명 속에 나는 이 생명 마치리라


그 새벽 희미한 어둠 속


작은 불빛이라도 있어야 한다면


나의 피를 흩뿌려


어둔 새벽 더욱 밝히리라

 


나의 어린 시절이나


젊은 혈기 넘치는 지금이나


나의 소망 오직


동방의 진주 너를 흠모하는 것


검고 눈물 걷힌 너의 눈


한 점 꾸밈도 부끄럼도 없는


티없이 맑고 부드러운 눈


동방의 진주 너를 바라보는 것이었노라

 


이제 나는 너를 떠나야 하는구나


모든 즐거움과 절실한 열망을 버리고


아 너를 위해 가슴 속에서 우러나


만세 만세를 부르노라


우리에게 돌아올 최후의 승리를 위해


나의 죽음은 값지리니


네게 생명을 이어주기 위해


조국의 하늘 아래 숨거두어


신비로운 대지에 영원히 잠들리니


아 행복하여라

 


먼 훗날 잡초 무성한 내 무덤 위에


애처로운 꽃 한 송이 피었거든


내 영혼에 입맞추듯 입맞추어다오


그러면 차가운 무덤 속


나의 눈썹 사이에


너의 따스한 입술과 부드러운 숨소리


느끼게 되리 니


부드러운 달빛과 따스한 햇빛으로


나를 비쳐다오


내 무덤가에 시원한 솔바람 불게 하고


따스하게 밝아오는 새 빛을 보내다오

 


작은 새 한 마리


내 무덤 십자가에 날아와 앉으면


내 영혼 위해 평화의 노래를 부르게 해다오


불타는 태양으로 빗방울 증발시켜


나의 함성과 함께 하늘로 돌아가게 해다오


너무 이른 내 죽음을 슬퍼해다오


어느 한가한 오후


저 먼 저승의 나 위해 기도해다오


아 나의 조국


내 편히 하늘나라에 쉬도록 기도해다오

 


불행히 죽어간 형제들을 위해


기도해다오


견디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죽어간 이들을 위해


기도해다오


고난 속에 눈물짓는 어머니들을 위해


기도해다오


감옥에서 고문으로 뒹구는 형제들


남편 잃은 여인들과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다오


……


내 무덤가 십자가 비석도 잊혀져 가면


삽으로 밭을 일궈


내 무덤에서 시신의 재를 거두어


조국 온 땅에


골고루 뿌려다오

 


내 영원히 사랑하고 그리운 나라


필리핀이여


나의 마지막 작별의 말을 들어다오


그대들 모두 두고 나 이제 형장으로 가노라


내 부모, 사랑하던 이들이여


저기 노예도 수탈도 억압도


사형과 처형도 없는 곳


누구도 나의 믿음과 사랑을 사멸할 수 없는 곳


하늘나라로 나는 가노라

 


잘있거라, 서러움 남아 있는


나의 조국이여


사랑하는 여인이여


어릴 적 친구들이여


이 괴로운 삶에서 벗어나는 안식에


감사하노라. 잘있거라


내게 다정했던 나그네여


즐거움 함께했던 친구들이여


잘있거라 내 사랑하는 아들이여


아 죽음은 곧 안식이니……

 


 


Last Farewell (마지막 작별) Jose Rizal


 


Farewell, dear Fatherland, clime of the sun caress'd,


Pearl of the Orient seas, our Eden lost!


Gladly now I go to give thee this faded life's best.


And were it brighter, fresher, or more blest,


Still would I give it thee, nor count the cost.


 


On the field of battle, 'mid the frenzy of light,


Others have given their lives, without doubt or heed;


The place matters not - cypress or laurel or lily white.


Scaffold or open plain, combat or martyrdom's plight,


'Tis ever the same, to serve our home and country's need.


 


I die just when I see the dawn break,


Through the gloom of night, to herald the day;


And if color is lacking my blood thou shalt take,


Pour'd out at need for the dear sake,


To dye with its crimson the walking ray.


 


My dreams, when life first opened to me,


My dreams, when the hopes of youth beat high,


Were to see thy lov'd face, O gem of the Orient sea.


From gloom and grief, from care and sorrow free;


No blush on the brow, no tear in thine eye.


 


Dream of my life, my living and burning desire,


All hail ! cries the soul that is now to take flight;


All hail ! And sweet it is for thee to expire,


To die for thy sake, that thou mayst aspire,


And sleep in thy bosom eternity's long night.


 


If over my grave some day thou seest grow.


In the grassy sod, a humble flower,


Draw it to thy lips and kiss my soul so,


While I may feel on my brow in the cold tomb below


The touch of thy tenderness, thy breath's warm power.


 


Let the moon beam over me soft and serene,


Let the dawn shed over me its radiant flashes,


Let the wind with the sad lament over me keen;


And if on my cross a bird should be seen,


Let it trill there its hymn of peace of my ashes.


 


Let the sun draw the vapors up to the sky,


And heavenward in purity bear my tardy protest;


Let some kind soul o'er my untimely fate sigh,


And in the still evening a prayer be lifted on high


From thee, O my country, that in God I may rest.


 


Pray for all those that hapless have died,


For all who have suffered the unmeasur'd pain;


For our mothers that bitterly their woes have cried,


For widows and orphans, for captives by torture tried;


And than for thyself that redemption thou mayst gain.


 


And when the dark night wraps the graveyard around,


With only the dead in their vigil to see;


Break not my repose or the mystery propound,


And perchance thou mayst hear a sad hymn resound;


'Tis I, O my country, raising a song unto thee.


 


When even my grave is remembered no more,


Unmark'd by never a cross or a stone;


Let the plow sweep through it, the spade turn it o'er


That my ashes may carpet thy earthy floor,


Before into nothingness at last they are blown.


 


Then will oblivion bring to me no care;


As over thy vales and plains I sweep;


Throbbing and cleansed in thy space and air,


With color and light, with song and lament I fare,


Ever repeating the faith that I keep.


 


My fatherland ador'd that sadness to my sorrow lends,


Beloved Filipinas , hear now my last good-bye !


I give thee all; parents and kindred and friends;


For I go where no slave before the oppressor bends,


Where faith can never kill, and God reigns e'er on high !


 


Farewell to you all, from my soul torn away,


Friends of my childhood in the home dispossessed !


Give thanks that I rest from the wearisome day !


Farewell to thee, too, sweet friend, that lightened my way;


Beloved creature all, farewell ! In death there is rest !


** 이 시는 스페인어로 쓰여진 것을 Charles E. Derbshire씨가 영역한 것을 옮겼다. 이 영역본이 현재 가장 많이 읽혀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영역된 것은 28개나 넘는다. 그리고 이 시는 원래 시의 제목도 없고 작가인 호세리잘의 서명도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던 것을 필리핀인 신부이자 애국자였던 Mariano Decanay씨가 Ultimo Adios(Last Farewell)라는 제목을 붙였다. 일반적으로 Mi Ultimo Adios(My Last Farewell)라는 제목을 쓰기도 한다. 이 시는 1898년 9월 25일자 La Independencia(독립)이라는 신문에 맨처음 실렸다. 이 시의 번역은 민용태 교수가 한글로 번역하여 인트라무로스 산티애고 요새에 있는 리잘 기념관 2층에 동판으로 전시되어 있는 내용이다. (민용태 교수가 한글로 번역한 이 동판은 1998년6월12일 한국 대사관에서 필리핀공화국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헌정한 것임)


 * 호세 리잘 (José Protasio Rizal Mercado y Alonso Realonda)


1861. 6. 19 필리핀 칼람바~ 1896. 12. 30 마닐라.

필리핀의 민족주의 운동을 고취시킨 애국자·의사·저술가. 


아버지는 중국계 필리핀인으로 부유한 지주이며 사탕수수 재배 농장주였고 어머니 테오도라 알론소는 당시 필리핀에서 최고의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이었다. 리살은 마닐라에 있는 아테네오 데 마닐라와 산토토마스대학교에서 배웠으며 스페인의 마드리드 대학에서 의학과 교양학을 공부했다. 뛰어난 학생이었던 그는 곧 스페인에 유학온 필리핀 학생 단체의 지도자가 되었고 조국에 대한 스페인 식민통치의 개혁에 힘썼으나 필리핀 독립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는 개혁에 있어 최대의 적은 당시 심각한 혁명을 겪고 있던 스페인이 아니라 정치·경제면에서 필리핀을 마비상태에 빠뜨린 프란체스코·아우구스티누스·도미니쿠스 수도회 탁발수사들이라고 보았다.


파리와 하이델베르크에서 의학 공부를 계속했고, 1886년 타갈로그어로 〈나에게 손대지 말라 Noli me tangere〉이라는 첫번째 소설을 발표했으며, 여기에서 가톨릭 탁발수사들의 사회지배가 낳은 죄악상을 격렬하게 파헤쳤다. 이어 〈체제전복 El filibusterismo〉(1891)을 발표하면서 필리핀 개혁운동의 주요대변자로서 명성을 다졌으며 안토니오 모르가의 〈필리핀의 역사 Sucesos de las Islas Filipinas〉의 주석판(1890, 재판 1958)을 내어 필리핀 원주민은 스페인이 필리핀에 오기 전부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운동의 지도자가 되어 바르셀로나에서 간행되는 신문인 〈라 솔리다리다드 La Solidaridad〉에 수많은 글을 발표했다(→ 색인 : 선전운동). 발표한 글에서 나타나듯이 리살의 정치강령은 필리핀을 스페인의 한 주(州)로 통합하고 스페인 국회에 대표자를 파견할 것, 스페인 탁발수사를 필리핀 탁발수사로 교체할 것, 집회·결사의 자유와 필리핀인과 스페인인의 법적인 평등을 보장할 것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부모와 친구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1892년 귀국하여 마닐라에서 비폭력 개혁단체인 '필리핀 동맹'(Liga Filipina)을 결성했으며 이 때문에 민다나오 북서부의 다피탄으로 추방되었다. 여기서 4년 동안의 유배기간중 과학을 연구했고 학교와 병원을 세우기도 했다. 1896년 민족주의 비밀결사단체인 카티푸난이 폭동을 일으켰다. 리살은 그 단체와 무관했고 폭동에 참가하지도 않았으나 체포되었다. 스페인 군당국은 그를 재판에 회부, 유죄판결을 내려 마닐라에서 공개적으로 총살하였다. 그의 희생으로 필리핀인들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는 것 말고는 어떤 대안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처형되기 전날, 산티아고 요새에 갇혀 있을 때 리살이 지은 〈마지막 이별 Útimo adiós〉은 19세기 스페인 시의 걸작으로 꼽힌다.


필리핀의 독립 영웅 ‘호세 리잘’을 기리는 리잘 공원. 사진출처 : https://www.nocutnews.co.kr/news/4979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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