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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필승총(鈍筆勝聰) 둔한 붓이 총명한 머리를 이긴다.


둔필승총(鈍筆勝聰) - 정약용

  둔한 붓이 총명한 머리를 이긴다. 즉, 사소한 메모가 총명한 머리보다 낫다는 뜻이다. 아무리 똑똑해도 기억에 의존한 사실은 실제 문서로 기록한 증거보다 약하다.  기록은 역사이자, 진실이자, 미래도 바꿀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기록하고, 또 기록하고, 끝까지 기록하라는 소중한 의미로 받아들인다. 

  실제 세계보다 문서가 더 힘이 있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기록하지 못해서, 설사 기록이 있다고 해도 발견할 수 없는 시대라서 기록된 문서가 더 강한 힘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시대다. 문서화 되어 인쇄된 허구가 실제 사람이나 지형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갖는 원리도 기록이 힘을 갖는 데서 시작한다.  

  수 백 년 동안  기록된 허구를 실제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갖도록 부추긴 데는 역설적으로 완벽하게 기록하지 못했다는 이유가 설득력이 있다. 현장에 가서 확인하지 않고 생산된 곡식량을 적은 기록이 힘을 갖고, 피라미드 건설 인력이 동원되지 않았는데 점심을 위한 곡식이 나가는 현상, 그런 서류가 올라가면 그대로 믿고 국가의 존폐가 걸린 정책으로 입안하는 어리석은 정치가들이 존재해 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은 모든 현상과 데이터를 즉시 원하는 만큼, 원하는 형태로, 원하는 시간 동안 기록하는 시대다. 영상으로, 소리로, 사물인터넷으로, 클라우드로, 출입기록으로, 스마트폰으로, 모든 정보는 공공성을 불문하고, 지역을 불문하고, 생산자를 나누지 않고 모두가 기록되는 시대다. 따라서 서류에 적힌 허구가 세상을 지배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아프리카를 나눈 반듯한 직선들이 힘을 갖는 시대는 이제 끝이다.-見河-

"오롯이 사적인 글쓰기는 불가능하다. 온전한 내 생각도 다른 사람과 사회, 역사로부터 영향을 받아 생성된 ‘공유된 기억과 경험’에서 비롯된다. 개인의 기록물이 지닌 공공성에 주목하는 까닭은 기록이야말로 우리의 ‘공유 기억’을 만드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공유의 틀을 만들어 사람들이 더 나은 미래와 인류의 삶을 꿈꾸도록 돕는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돌아보기, 보통 사람들의 느린 아카이브를 제안한다… 아카이브는 삶의 속도를 늦추고 경쟁을 멈추고 함께 돌아보게 한다… 부분적인 쓰기 행위와 그로 인한 결과물들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파악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누구와 함께하고 있는가, 무엇을 추구하는가,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답이 저절로 구해진다. 아카이브는 나의 성장과 시대적 흐름을 한 타래로 엮는 일이다." /안정희,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 중에서.

이미지출처 : 사랑에 관한 짧은 고백 http://www.e-graph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