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모음

일기로부터의 단상, 전혜린 저

지구빵집 2019. 5. 2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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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나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너무 큰 행복의 한 가운데서 너무 큰 행복의 한 가운데 있을 때는 그것을 상실할 예감으로 자꾸 불안해지는 모양이다.

 

달병(Mondkrankheit)

오늘 내가 종일 이상스럽고 괴로웠던 이유를 지금에야 알았다. 마당에 나가보니 열 나흘 달이 차 있었다. 고고하다. 만월에 네게 오는 달병.

 

숲의 고독(Walt-einsankeit)

사람으로부터 고독을 막는다는 의미에서 온갖 직업은 가질 만 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불로의 고독이라도 그걸 지키고 싶다. 그것만이 자기 모독에서 자기를 가장 보호해 줄 수 있는 방법이다.

 

애정의 구두쇠

그는 애정을 받아 본 것은 여덟 살 때 이 후엔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차가운 성격의 소유자이고 애정의 구두쇠가 됐는지 모른다.

 

Sag Warum 이유를 말하라. 전화했더니 전화로 독일 유행가 '작 바룸'을 틀어줘서 들었다.

 

방법

격정적으로 사는 것.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무튼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산다는 일은 그렇게도 끔찍한 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만큼 나는 생을 사랑한다. 집착한다.

 

사랑의 마약, 밀매상적 요소

남에게 보여서 부끄러운 사랑은 마약 밀매상적인 요소가 있다. 그것은 없느니만 못하다. 대낮을 견딜 수 있는 사랑이래야 한다.

 

컨트럴된 광기

규제(control)된 광기, 가정, 직업, 진정한 자기 규제 성과 화폐 성이란, 화폐처럼 중성적일지 모른다. 거기에 색채를 부여하는 것은 인습같다.

 

탄생

나는 아직 잠자고 있나. 태어나고 있지 않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

그리고 헌 책방 돌기, 봉투 만들기, 맛있는 것 먹기

 

순서의 혼동

가장 큰 고통은 서로 어긋남을 갖는 것이다. 순서가 일치하지 않고 혼동된다.

 

죽었니?

언젠가 그에게서 왔던 참 즐거웠던 편지 하나가 기억났다. 그것은 단지 흰 종이 위에 '죽었니?'라고 써 있었다.

 

구조적 갈망

어떤 상태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그렇게 지어진 갈망을 느낀다.

 

의무

모든 의무는 왜 이렇게 끔찍한 맛을 지니고 있는가. 의무 완수가 주는 상쾌감은 정신적 카타르시스에 불과하다.

 

정의할 수 없는 것

왜 보들레르는 일생동안 쟌느 듀발(Jeanne Duval)을 사랑한 것일까? 백인도 아니고 아름답지도 않고 오욕의 생활을 직업으로 하는 여자를. 마음까지 극악했다는. 또 릴케는 왜 자기보다 열 네 살이나 위인 남편있는, 남성적인 루우(Lou)를 사랑했던가. 니체가 수 세기에 한번 구라파에 나타나는 두뇌를 가진 여자라고 평한 루우의 총명 때문에? 릴케의 모성에 대한 컴플렉스 때문에? 결국 두 사람을 연결하는 것은 정의할 수 없는 정의보다는 보다 높은 법칙 밑에 놓여있어 운명이니, 만남이니 라는 말로 그 편린(片麟)을 알 수 있는 자 이외에는 전모를 언어로 파악할 수 없는 무엇이 아닐까.

 

독일로 가는 길 그 당시 언제나 내 입에는 '출발하기 위해서 출발하는 것이다.'라는 누군가의 싯귀절이 떠나질 않았다.

 

- 전혜린,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中 일기로부터의 단상

 

 

전혜린,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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