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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과 달리기 글쓰기 방법

지구빵집 2019. 9. 1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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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과 달리기에 관한 글을 쓰는 방법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일도 매일 하다 보면 나름의 철학이 생긴다는 말은 사실이다. 목표를 달성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지속적인 인내와 꾸준히 하는 습관이다. 달리기를 중심으로 문학과 인생의 회고록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2009년, 문학사상)는 마라토너뿐만 아니라 달리지 않는 많은 사람도 잘 알고 있는 책이다. 하루키의 글은 모든 활자가 살아 움직이며 나에게 절실하게 다가왔다. 부럽기도 했지만 그는 아주 유명하고 훌륭한 작가였고, 나는 유능한 프로그래머 엔지니어였다. 달리는 일에 관한 글을 쓴다는 사실도 같았다.

  달리기를 시작한 겨울의 끝자락에서, 정직하게 말하면 나를 달리도록 한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끄적끄적 말도 안되고 이해하기 힘든 글을 썼다. 하고 싶은 이야기와 읽고 싶은 글만 썼다. 글을 쓰는 버릇을 들인 지 한참 지나고 나서 자기만을 위한 글 말고, 단 한 사람에게라도 잘 읽히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정직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결과를 금방 알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다. 어떤 곳에 도착할지 관심도 없었다. 아직도 진행형이어서가 아니라 최종 종착지는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내 생각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운명과 강물이 우리를 어디로든지 데려다줄 것이다. 특히 달리기를 묘사하고, 마라톤의 세부적인 과정을 아름답게 쓰려고 했다. 삶에서 무엇 하나만을 떼어놓고 보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가능한 한 삶과 연결시키려고 했다. 하루키는 그의 책에서 글을 정직하게 쓰는 일에 대해 말했다. 

"달리기에 대해 정직하게 쓴다는 것은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정직하게 쓰는 일이기도 했다" - 무라카미 하루키

  가능하면 정직하게 쓰기로 했다. 내가 맞닥뜨린 현실에 대해, 내가 걷는 삶의 길 어떤 구간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쓰고 싶었다.

"세상에 진실이 어딨어. 진실이 삶에서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어. 인생, 그냥 거짓말도 하고 속고 속이며 사는 거지." 하는 말에 쉽게 공감했다. 그렇게 글을 쓰면 좋은 글이 될까? 읽기에 좋은 글은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름다운 글을 쓰지는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마라토너, 러너, 달리는 사람을 중심으로 자주 글을 쓴다. 하나를 더한다면 함께 달리는 사람의 이야기를 쓴다. 

  달리기에 관한 글을 쓰는 방법은 마라톤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떤 주제로 글을 쓰든 아래의 항목을 지켜가며 글을 쓴다면 어느새 아름다운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대회를 완주한 러너가 쓴 대회 후기나 달리기에 대한 글을 보면 심오한 철학을 논하는 글이나 시간이 연달아 나오는 대회 복기, 더불어 감동적인 완주의 기쁨을 누리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읽는 재미는 없지만 나름대로 반드시 필요한 글이다. 마라톤을 해보지 않은 독자는 모르겠지만 러너들은 이미 아는 이야기라 식상해한다. 좀 더 재미있는 러너의 이야기, 실제 달리는 기분이 들 정도로 현장감이 팍팍 돋는 러너의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러너를 위해 말하고 싶다.

 

 

 

숫자를 많이 사용하거나 대회일과 년, 월, 일, 시, 분, 초는 간략하게 쓴다. 

‘제주200km’는 50km 7시간, 100km 8시간, 150km 9시간, 200km 10시간 체크포인트 시간으로 총 34시간처럼 아니면 15~20km–23:46, 3시간 41분 15초 등과 같이 시간과 거리로 가득한 문장은 기록계를 옮긴 기분이 든다. 한 군데에 시간이나 거리와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족하다. 읽는 독자는 시간과 거리의 숫자에서 느끼는 감정이 별로 없다. 경험 있는 러너는 시간에서 주는 느낌이 글보다 훨씬 더 간단하게 와 닿는다. 러너와 일반 독자 사이에서 어려운 줄타기를 해야 한다.  

대회나 달리는 과정중에서 오로지 하나의 장면을 잡고 세부적인 상황을 묘사하라.

달리는 과정이나 대회가 진행되는 긴 시간에 단 한순간의 장면을 세부적으로 묘사해야 한다. 세부 묘사는 글에 개연성과 사실성을 부여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묘사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현장감과 생동감을 주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이 달리는 느낌이 들게 한다. 옆에서 같이 달리는 상상을 하도록 만든다. 겨울에 눈이 오는 도심의 거리를 달리는 러너의 한 순간을 보자. 

"달리는 온도가 적당히 낮고 바람만 불지 않으면 눈은 달리는 몸에 부딪 히며 퍽 하고 산산이 부서진다. 펑펑 내리는 눈 속을 달리는 러너 주위에는 몸과 부딪혀 부서지는 눈으로 가득하다. 만약 하얀 모자와 하얀 장갑, 하얀 옷을 입고 뛰는 사람을 본다면 마치 눈 쌓인 벌판을 하얀 곰이 뛰어가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바닥은 약간 녹거나 부서지지 않은 눈이 쌓인다. 어딜 보나 시야는 가까운 거리로 한정된다. 눈은 순간적으로 열기와 땀으로 가득한 얼굴에 부딪혀 녹는다. 척척한 느낌이 들고, 끈적끈적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대부분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자신만의 느낌을 상세히 표현한다.

요즘 러너의 우울함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 사람이 늘 가지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에 대한 글을 예로 든다. 

"모든 러너는 두려움이 있다. 특히 대회를 앞둔 날은 잠도 잘 오지 않는다. 많은 준비를 해도 마찬가지다. 달려야 할 거리와 인내심에 대한 두려움은 기본이다. 누구는 달리는 중간에 꼭 마려운 소변에 대해, 누구는 배고픈 것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달리므로 피부가 쓸리거나, 혹은 완주하지 못하는 일까지 두려움의 종류는 다르다. 경주가 시작되면 두려움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뒤에 계속해서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마라톤 이야기 같지만 두려운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 한다. 사람이 느끼는 대표적인 감정인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공포, 사랑, 혐오, 증오, 욕망에 대해서 써야 한다. 더불어 애정, 시기심, 설렘, 기대, 수치심, 질투, 권태, 번아웃(소진), 죄책감, 저기압, 광기, 집념에 대해 써야 한다. 누군가 기쁘다면 누군가는 슬프다. 누군가 희망을 본다면 대다수는 절망을 느낀다. 자신의 느낌을 적어야 한다.    

함께 달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훔쳐서 자기의 글감으로 만들어라.

하프코스(21.0975km)나 풀코스(42.195km)를 얼마의 기록으로 달렸다는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모든 종류의 달리기와 모든 코스를 달린 마라토너는 없다. 마라톤이라는 분야에서 달리기의 모든 경험을 할 수도 없다. 다른 러너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의 것으로 써야 한다. 동료와 함께 달린 이야기, 친한 여자 동료의 이야기, 누군가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이야기, 남자라면 여성 러너의 몸에 대한 이야기, 담배 피우면서 달린 이야기, 울트라 마라톤에서 길을 잃고 헤맨 이야기, 뒤풀이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쓴다. 훔친 이야기에 자신의 경험과 상상과 허구를 적절히 섞는 일이 우리가 할 일이다. 남자가 쓴 여자 마라토너의 이야기를 보자.

"평소 입던 브라를 착용하고 달리다가 출렁이는 가슴 주위로 피가 맺혀 속옷도 입지 않고 달린 적이 있다. 가슴 주위가 피가 날 정도로 쓸린 것도 모르고, 달리고 나서 경기장 입구 분수대 물에 풍덩 빠졌을 때, 가슴의 쓰라린 고통은 오직 여자만 알 수 있는 고통이다."

아래는 함께 달리는 선배의 이야기다. 처음 들었던 신기한 남자 러너의 이야기다.

"남자의 예민한 주요 부위에 콘돔을 낀 채로 달리는 남자 러너도 있다. 간혹 콘돔이 찢어져서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피가 날 정도로 쏠리게 두든지, 포기하든지 결정해야 한다."

모두 훔친 이야기고 실제 이야기할 때는 아주 짧다. 대화할 때 잠깐 웃고 마는 순간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자신의 경험을 넣어 충분히 묘사하면 글은 재미있어 진다. 아무리 솔직하게 쓴다고 해도 정직한 글은 본질적으로 재미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버스 타고 출근을 하고, 일하고 퇴근해서 맥주 한 캔 하면서 티브이를 보다 잠드는 우리의 정직한 삶이 무어 그리 재미있겠는가?

달리면서 느낀 좋은 기분, 달콤한 미각, 환상적인 감정을 구체적으로 적어라. 불쾌한 감정, 싫었던 점, 기분 나쁜 상황을 상세히 적어라.

대부분의 러너는 달릴 때가 아니라 달리고 나서 가장 기분이 좋다. 러너스하이나 러너스블루같은 천당과 지옥 같은 감정은 자주 느끼지 못한다. 러너스 블루는 우울한 감정이라서 러너에게 가끔 찾아온다. 달릴 때 드는 생각과 여러 가지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강물과 땅의 경계이면서 강과 육지의 시작점인 한강 둑을 달린다. 눈과 얼음으로 덮인 한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얼핏 얼음 벌판 위에 하나의 세상이 생겼다. 그와 함께 가고 싶었지만, 함께 가기엔 위험한 세상, 언젠가는 가는데 지금은 가지 못하는 세상이 잠깐 보였다. 세상이 사라지자 지금은 가질 수 없지만 갖고 싶은 것이 다시 떠오르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리는 이유를 써라. 마치 운명처럼 느끼도록 암시를 넣어라.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계속 달리고 싶고, 실제로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러너로서의 삶의 방식이 옳다고 믿고, 러너가 경험한 인생에 대해 확신을 키워나가기 위해 쓴다. 달리기는 마치 지도없이 떠나는 늘 새로운 여행이다. 마리톤은 달리다 보며 반드시 결승선에 도착하게 되어있다. 우리 삶과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잠자리를 갖지 않듯 달리기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매번 풀코스를 달리겠는가? 춘천마라톤 출사표의 마지막 부분이다.

"가을의 전설 춘천마라톤, 노랑과 빨강사이의 주황이 지배하는 가장 아름다운 마라톤 코스를 다시 뛴다. 우리는 늘 변한다. 그것도 아주 일관성 있게 바꿔나간다. 스스로 자신감에 넘쳐 반짝반짝 빛나기도 하고, 주로에서는 늘 설레고 흥분한 몸으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기도 한다. 러너를 편안하게 해 주고, 빛나게 해주는 것, 우리가 마라토너임을 말해주는 것은 주로에서 심장을 입에 물고 전력을 다해 달릴 때뿐이다."

달리고 나서 우리를 기쁘게 하는 감동과 환희를 썼다면 분명히 다시 달릴 충분한 이유가 있다. 내일 달릴 주로(走路)에서는 어떻게 달릴 것인지 생각한다. 내일은 오늘과는 다른 달리기가 될 것을 모든 러너는 희망한다. -見河-

 

고귀하게 굴어. 보라. 주황도 나름 고귀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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