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서재

'너! 마라톤 달려봤니?' 양재천 마라톤클럽 20주년 기념 도서 본문 발췌

지구빵집 2019. 9. 1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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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마라톤 달려봤니?' 양재천마라톤클럽 20주년 기념 도서 본문 발췌

 

내 나이 68세. 마라톤을 시작한 지 겨우 3년 차에 선망이기도 한 메이저 대회 4시간 이내 기록을 세운 기분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42.195km를 마치고 나면 기진맥진하고 발목에서부터 온몸이 쑤셔서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전과 같지 않게 팔팔한 컨디션이 어디서 나온 것인가! 헬스장에서 만든 하체 강화 훈련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p.19

 

150km 지점을 넘어 기진맥진하여 소로를 지나니 넓은 대로가 나왔다. 분명 이 대회는 처음 참가하고 첫길인데 익히 아는 길로 보인다. 늘 다니던 길인 것 같고 정신은 멀쩡한데 갑자기 소름이 쫙- 돋는다. ‘내가 귀신에 홀렸나, 충주호 이무기가 나를 홀리나, 내가 정신이 나갔나, 아니야. 정신 차려야지’ 동행하던 일행을 뒤로하고 마지막 스퍼트를 할 때 보인 환상이다. 참으로 기이하다. p.27

 

“200CP 통과했다는 소식이 이제야 올라왔네요. 이름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어요. 다친 건 아닌지 가슴 졸이며 진행 상황을 계속 보고 있었거든요. 당신이 왜 그렇게 하고 싶어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가고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승우 아빠~ 파이팅!!! 두 손 모아 응원합니다.” p.33

 

제주 200km, 철인대회 목표는 나에게 힘든 도전임이 분명하다. 나는 연변의 지긋지긋한 가난과 혹독한 추위를 인내하며,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버텨온 사람이다. 마라톤 풀코스에서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듯 나는 반드시 성취할 것이다. 길림성 서울에서 여기 대한민국 서울로 반환점을 돌기 위해 왔다. 제주도 또한 반환점이다. p.54

 

남자 러너는 예민한 중요부위에 콘돔을 낀 채로 달리는 경우도 있다. 간혹 콘돔이 찢어져서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피가 날 정도로 쓸리게 두든지, 포기하든지 결정해야 한다. 남자 러너에게 필요한 것보다 여자의 달리기는 몇 배나 많은 준비와 대비가 있어야 한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 여자에게 꼭 필요한 것을 선배는 말해주지 않았다. 사실 십여 년 전에는 대비할 만한 물품도 거의 없었다. 달리면서 알게 되었고, 나중에서야 책이나 기사를 통해 배우게 되었다. p.76

 

마라톤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막연히 춘천마라톤 ‘가을의 전설이 돼보자’ 결심을 하고 꼬박 1년을 양재천마라톤클럽 감독 지도하에 훈련에 임했다. 내 이전에 흘렸던 땀의 몇 배는 지난 1년 동안 관문 운동장, 대공원 언덕길, 양재천변, 한강 변에 뿌렸던 것 같다. 몸은 정신의 희생이 되어 발톱, 피부, 허리, 관절을 제물로 내놓게 되었다. 그럴수록 10km, 20km, 30km 드디어 공주마라톤 풀코스 도전까지 이루는 동안 나의 정신은 맑아지고 온전히 ‘나’ 일 수 있었다. p.82

 

여왕이 따로 없다. 완전 ‘갑질’ 주부 마라토너의 위세는 날로 날카롭다. 주부 인생 사십대에 이런 도전 의욕 있는 사람이 어디 흔한 줄 아느냐? 실실 골프나 치러 다니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이건 그냥 완주가 아닌 극한의 고통을 이겨내는 도전이다. 내 나이 또래 주부들이 풀코스 완주한 이가 몇 백 명도 안 될 것이다. p.98

 

예술 노동자 중에 플로리스트는 직업 조건상 새벽을 연다. 그래야 아름다운 꽃을 먼저 선별할 수 있어 좋은 꽃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고 바로 Flower Conditioning 즉, ‘꽃 물올림’후에 작품 구상을 하고 디자인에 들어간다. 웨딩 플로리스트와 러너로 살아온 20여 년의 시간 속에 단련된 나의 체력도 마라톤의 영향으로 잘 달려온 것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 같다. p.106

 

보스턴 마라톤 하프 지점에서 여대생들에게 뽀뽀를 하며 뛰는 것이 특징이다. LA마라톤에서는 “달림이한테 무료 서비스”라는 알 수 없는 광고를 들고 소파에 앉아 응원하던 상업적 미녀가 있었다. 그래서 ‘보스턴에서도 주자에게 공짜로 키스를 해주는 여자들이 있나 보다’라고 짐작했었다. 그게 아니라 달림이가 키스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말하자면 주자를 한층 존경해주는 웰즐리 여대생의 재미난 응원 방식이다. p.115

 

공식적인 기록은 2시간 59분 52초. 나는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외쳤다. “내가 해냈다. 이종현이 이루었다. 다 이뤘다!” 눈물을 철철 흘리며 기뻐했다. 내 생애 풀코스 다음으로 잊히지 않는 추억과 기록을 남겼다. 서브-3를 달성하고 나는 기록에 도전하지 않았다. 몸이 안 좋아서가 아니라, 열정이 식어서가 아니라, 좋은 기분과 즐거운 달리기를 나는 평생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인생은 우리가 좋은 기분으로 살아도 너무나 짧다. p.128

 

대회를 앞두고 마라톤에 적합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3개월 정도의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1개월 차에는 근력과 코어 운동, 유연성 운동을 가미한 달리기 자세 위주의 운동으로 시작한다. 언뜻 생각해보면, ‘마라톤은 스피드야’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것이 다리의 근력과 코어 근육을 키우는 것이다. p.130

 

칠순이 된 2019년 3월 동아마라톤에서 70회를 완주하였다. Age Runner 개념에서 초과 달성한 셈이다. 앞으로 희수喜壽, 미수米壽에 걸맞은 건강한 러너로 곱게 나이 들고 싶다. 그렇게, 그렇게 철들어가고 싶다. 꿈 없는 노인은 일찍 죽는단다. p.136

 

사실 달리는 이유는 생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다. 생각을 버리기 위해서다. 잊기 위해서다. 증발하도록 야외에 나가고, 날려버리기 위해서 몰입하는 게 달리기다. 사람이 몰입하는 이유가 그게 아닌가? 삶의 피곤함, 육체가 매여 일하는 환경이 주는 짜증, 삶의 온갖 찌꺼기를 날려버리기 위해서 치고, 맞고, 때리고, 응원하고, 엉키고, 달리는 게 아닐까? p.146

 

샹젤리제 거리부터 루브르박물관, 콩코드 광장, 센 강, 에펠탑 등 시내 중심으로 포치다운번가까지 마라톤으로 파리 여행은 끝났다. 주변 파리 시내 도시풍경과 남녀가 부끄러움 없이 훌러덩 벗고 급한 볼일을 보는 모습이 오버랩되어 기억에 남는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마라톤 대회 중 하나로 손꼽히는 파리마라톤대회에 참석해 서브-4를 거머쥐었다. p.162

 

그때부터 우리 둘만의 마라톤 역사는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기는 짓이다. 우린 18km 정도를 이미 뛰고있어서 포기할 수 없었다. 울퉁불퉁 보도 위를 열심히 달렸다. 아니, 사람들을 피해서 요리조리 다녔다. 신호등에 걸리면 어쩔 수 없이 일반 시민과 함께 기다려야 했다. p.169

 

무엇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매일 밤 열 시에 달리기를 하러 집 앞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아직은 어린아이가 둘이라 아이들이 잠드는 밤 열 시에 집을 나와 달리는 것이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그래도 지속적으로 훈련량을 늘려서 부상도 극복하고 이제 10km는 매일 달릴 수 있는 체력이 준비되었다. 대회 일주일 전부터는 좌불안석이었지만, 의도적으로 탄수화물과 물을 많이 먹으려 애썼다. p.175

 

당신이 지금 러너라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지내고 있음이 틀림없다. 러너가 아니라면 당신은 더 행복한 사람이다. 달리기로 결심하고 시작하기만 하면 러너들이 누리는 행복을 금방 잡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쉽게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에 의존한다고 한다. 큰 행운보다 소소한 작은 행복감을 자주 누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p.236

 

내 인생의 마지막 여정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궁금하다. 누구나 지나가야 하겠지만 초행길이라 두려움이 무척 클 것이다. 약간의 마무리할 시간이 나에게 주어지면 좋겠다. 얼마간의 시간이 덤으로 배려된다면 하고 싶은 몇 가지 일이 있다. 첫째, 정다운 이들과 함께할 조촐한 술자리를 마련할 것이다. 둘째, 혼자 조용히 상념에 잠기며 감사의 기도를 드릴 것이다. 셋째, 아내와 못다 한 얘기를 나눌 시간을 가질 것이다. p.239

 

다행히 자전거 라이딩은 달리는 재미가 더해져 건강을 위해 선택한 종목으로는 대만족이었다. 하지만 ‘자전거로는 절대 뱃살이 빠지지 않아. 나잇살은 더구나. 무조건 뛰어야 해’라며 확신에 찬 어조로 열변을 토하는 주변 지인들이 늘어나면서 귀 얇은 나를 파고들었다. 무엇보다 가시적 변화를 찾아볼 수 없는 불룩한 배를 보고 있자니 조급한 마음마저 들었다. p.251

 

 

'너! 마라톤 달려봤니?' 가제본한 책인데 진짜 책같애. 실감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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