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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우리를 용서해 줄까?

지구빵집 2020. 1. 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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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우리를 용서해 줄까? 

 

인류는 10억 년 전에 생명을 선물로 받았다. 받은 선물로 지금까지 뭘 했던가? 인류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물리적 존재에 맞추기 위해 재단했다. 땅 위에 사는 생명으로 규정하기 위해 인위적인 잣대를 만들었다. 인간은 지구에서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고 존재 근거를 만들었다.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생명으로 태어났다는 생각은 몇 사람만이 가지고 있던 특별한 믿음이었다.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시간이다. 시간이 없다면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이란 시간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물질과 물질이 아닌 것과의 공통점은 시간이다. 시간이 가면 사라진다는 점에서만 동일하다. 인류는 식량을 구하고 영토를 넓히기 위해 싸우고, 미신과 제사장을 만들고, 마녀를 만들고 전쟁을 만들었다. 아직도 우리가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진화 pixabay.com

 

자연에서 진화를 거부하는 생명은 살아남지 못한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야 하는지 인간은 모른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혼돈을 만들어 내고, 무질서를 즐기고, 사랑이나 신념까지도 만들어 낸다. 현재 인류는 디지털 진화 과정으로 집입하고 있다. 진화는 오류 투성이고, 불확실성의 소유자인 인간을 정확한 정답을 내는 인간으로 만들어 낼 의지를 가진 듯 보인다. 모든 인간적인 요소를 극복하도록 진화하는 중이다. 디지털 진화는 사람의 감성이나 기분, 감정이 이끄는 우연적인 요소들을 남김없이 제거하기 위해 자유분방한 유전자나 세포가 죽도록 연결을 끊는다. 진화는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도 인간을 더욱더 강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다. 디지털 진화는 인간이 선택 앞에서 고민하지 않도록 하고, 혼돈을 만드는 것은 무지가 아니라 지식이라고 가르친다. 유전자와 세포를 통해 전해지는 사슬을 끊어내고 디지털의 유전자로 대체하는 중이다.

 

유전자 pixabay.com

 

 

"잘 지냈니?" 여자가 말했다.

 

"잘 지낼 것도, 못 지낼 것도 없어. 그냥 세상과 타협하고, 흐르는 강물에 맡기는 거지 머." 남자가 말했다.

 

"네 일상이 어떠냐고 물었어. 밥 먹고, 사람 만나고, 일하고, 관계를 갖고, 차 마시고, 명상하고 하는 그런 잡다한 일 말이야." 여자가 말했다.

 

"지쳤어." 남자가 말했다.

 

"얘, 신이 우리를 용서해 줄까?" 여자가 말했다.

 

"무슨 말이야? 우리가 뭐 잘못이라도 저지르고 있다는 말 같네. 후후" 남자가 말했다.

 

"혹시, 인생을 낭비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래. 우리가 가진 시간을 소중하게 쓰지 않고 있다면 말이야. 소중하게 쓴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만 삶을 절실하게 살지 않는다면 말이야." 여자가 말했다.

 

"우리 나이가 되면 인생은 다 낭비하게 되어 있다는 걸 알아야 해. 호숫가에 오리가 지나간 자리 같은 게 우리 삶이라고. 무언가를 쉼 없이 부지런히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말이야. 넌 낭비하지 마라." 남자가 말했다.

 

"나중에 용서받고 싶어. 삶을 낭비하고 허투루 살아왔다면, 아니 하필이면 지금에서야 아름다운 일을 많이 만들었다면. 이미 늦었지만. 늦은 건가?" 여자가 말했다.

 

"자꾸 책임을 회피하지 마. 네가 끊지 못해서 그렇다는 생각은 안 하니? 끊어 낸다는 것이 나쁜 일은 아냐. 물론 너는 믿지 못하겠지만 무엇인가 잘라내고, 거리를 두고, 받아들이지 않는 일도 어려운 일이야. 내가 원하는 일을 네가 모두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 나도 물론 그렇고." 남자가 말했다.

 

보통 사람에게 깨달음이란 하찮음과 같은 말이다. 사실 깨닫는 일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향과 지켜야 할 원칙을 공고히 다지고 튼튼하게 하는 일과 같다. 많이 깨달은 사람들이 많이 아는 척하는 이유가 공고하기 때문이다. 고집이 세기 때문이다. 자신의 원칙이 맞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하는 일이다. 깨닫는 일은 사람에 따라 전혀 필요가 없을 수 있다. 깨닫지 않는 삶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예의 바르고, 통달한 자세로 살아갈 수 있다. 고민 없이 살아도 된다는 말이다. 사소하지만 어느 정도 삶을 존엄하고 고귀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깨닫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용서받지만 너는 아닐 거야." 남자가 말했다.


"상관없어. 용서받기 위해 태어난 건 아냐. 우리의 의지와 우리가 원한 것들에 대한 기억을 유전자에 담아 전달해주기 위해 태어난 거니까. 그게 생명의 유일한 목적이고." 여자가 말했다.

 

"근사한데? 난 아무것도 남겨주거나 전달하고 싶지 않아. 솔직히 지쳤어. 이번 생은 망했어. 아니, 다시 이런 삶이 주어진다고 쳐도 다시 살아갈 자신이 없어. 갑자기 내 삶은 단물이 다 빠진 껌 같아. 아무 때고 버려도 되는 데 여전히 계속 씹고 있는, 그런 생각이 들어. 나도 누군가 말한 것처럼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 전달해 줄 것도 없고 말이야.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남자가 말했다.

 

"좋겠다. 너는 용서받아서. 나는 머니? 하하" 여자가 말했다.

 

남자는 무엇에라도 집중해야 했다. 무엇을 하든 하나의 목표가 정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딱히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남자는 무거운 일을 가볍게 하고, 가벼운 일을 신중하게 하는 사람이다. 정해진 게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살았다. 삶을 단 한 번 산다는 사실이 정직하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이유가 되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되는 대로 살거나 막살아야 할 근거로 사용해서도 안 된다. -見河-

 

 

가을 양재천. 억새와 갈대를 구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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