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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씩 단정하게 완결 짓는 삶으로. SERENITY(sərénəti) 평온

지구빵집 2021. 2. 1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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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씩 단정하게 완결 짓는 삶으로. SERENITY(sərénəti) 평온. 

 

학교에 자주 올 필요는 없지만 일이 좋은 남자는 자주 오는 편이다. 설날이 있는 주라서 퇴근하기 적당한 9시가 되었다. 9시 30분이면 히터도 꺼질 것이다. 적당히 마무리를 하고 컴퓨터를 종료한다. 내일도 해야 할 정도로 남은 일이 무언지 잠깐 정리한다. "내일의 시작은 전날 저녁이고, 한 주의 시작은 주말이고, 하루의 시작은 잠자리에서 일어난 이른 아침"이라고 하는 글을 어디서 본 적이 있다. 남김없이 처리하지 못한 일이 있더라도 오늘은 이것으로 정리한다. 

 

막히지 않는 27km 거리는 40분 정도면 집에 도착한다. 집에 돌아온 남자는 읽고 출출하니 먹을 것이 없나 찾아보지만 역시나 없다. 유기농 과자를 몇 개 먹고 혹시라도 술을 마시게 되면 먹을까 생각이 들어 두부를 프라이팬에 굽기 시작한다. 검은콩으로 만든 두부라서 노릇노릇하게 익었는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앞 뒤로 잘 익은 두부를 접시에 옮겨 담고 방금 전 와이프가 입욕을 끝내고 나온 물로 들어간다. 아직도 뜨겁긴 뜨겁다. 몸을 닦고 나오면서 속옷과 양말을 빨고, 빠는 김에 와이프의 속옷까지 빤다. 늘 하는 일이다. 청소와 빨래는 이름이라도 있지만, 이름 붙지 않은 집안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입욕을 마치고 나오면 몸을 닦고 차를 끓여 마신다. 날씨가 추워지면 늘 차를 즐겨 마시는 버릇이 있는데 이번 겨울에는 약간 늦게 시작한다. 다리를 앞으로 10번씩 들어 올리는 운동을 좌우 다리 교대로 5세트를 한다. 허벅지 뒤쪽 근육인 대퇴이두근과 내전근을 단련시킨다. 한 달째 꾸준히 운동하니 달릴 때 편하고 힘이 덜 든다. 팔 굽혀 펴기를 20번 한다. 오늘 40개 째다. 연구실에서 윗 몸 일으키기를 150번 했다. 운동을 많이 하기로 했다. 즐겁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는 사람은 인생이 허무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운동이 주는 즐거움을 안다는 것은 사실 다른 세속적인 재미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운동을 할수록 몸이 좋아지니 술자리나 노는 상황에서 활기차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이다. 오래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다시 운동이 주는 순수한 즐거움을 누리기 시작하면 더 이상 다부진 몸으로 즐길 만한 것들은 사실 별로 없다. 건강하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야 한다. 장수를 누리고,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의미 그 자체로 말이다.

 

입춘이 지나고 반짝하는 추위가 가끔 오다가 봄이 된다. 바닥에서 물이 올라와 거리가 축축해지는 날이 올 것이다. 추위가 물러갈수록 슈트를 입어도 되는 날이 많아지고, 와이셔츠만으로 견딜 수 있다는 생각으로 와이셔츠를 다리기로 한다. 남자가 셔츠를 세탁소에 맡기지 않는 버릇은 오래되었다. 그나마 손목과 목둘레는 쉽게 누렇게 물이 들고, 자주 비벼 빨다 보니 오래 입지는 못한다. 그런 셔츠를 세탁소에 맡기며 때도 물론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쉽게 헤진다. 늘 손빨래로 빨아 말리는 셔츠 3개를 다리고 보니 앞면과 소매 선은 손을 베일 정도로 날카롭다. 다리미만 제법 큰 걸 쥐어준다면 지구도 반듯하게 다릴 수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지구는 둥그니까 말이다. 

 

우리는 좋은 사람을 만나려고 애쓰지 말고 나쁜 사람을 만나지 않기를 기도해야 한다. 남자는 가끔은 늘 좋지 않은 사람 옆에 항상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나 기분을 나쁘게 하는 사람, 늘 과거를 들쑤셔 나쁜 기억을 되새김질하게 하는 사람, 자신이 무능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신호를 싫다는 데도 자꾸만 주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편하지 않다. 늘 실망하거나 움츠려 든 마음에 용기를 주고, 최소한이지만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자긍심을 높여주고, 같이 있으면 자신이 무어라도 된 듯한 마음이 들게 만드는 그런 사람은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함께 성장하고, 그럴 수 없다면 상대방의 성장을 기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도 만나기 힘들다. 내가 성장하는 게 그에게 도움이 되면 더욱 많이 빠르게 성장하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은 더더욱 우리 옆에 없는 사람이다.

 

하루씩 단정하게 마무리하자고 남자는 생각한다. 남긴 일도 되도록이면 없어야 하고, 삶에서 어차피 지게 되는 경제적이든 아니든 채무나 채권도 최소한으로 하자고, 설사 오늘 못했다면 가능한 한 가장 이른 시간 내에 깔끔하게 정리하자고 생각한다. 오늘 일은 반드시 내일에 영향을 미친다. 어제 일은 이미 지났지만 오늘 일에 분명히 영향을 주었다. 늘 그렇다. 남자는 "어차피 인생 낭비하자고 있는 거야."라고 말하지만 지독한 역설임을 자기도 알고 있다. 얼마나 간절히 제대로 낭비하고 싶을까 하는 불쌍한 생각도 든다.

 

오늘은 좀 낭비하고 싶다. 보통 사람의 행동이나 삶은 다른 사람의 판단이나 보는 시각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신의 삶을 낭비하는 사람으로 본다면 실제로 낭비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낭비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면 아끼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요양원에서) 할머니는 감금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늙었다는 죄로 감옥에 갇힌 것만 같았다.

체이스 요양원 주민들은 비교 집단 주민들에 비해 복용하는 처방 약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연구에서는 그 이유를 밝히지 못했다. 그러나 토머스는 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살아야 할 이유를 갖고 싶어 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망률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실 인간에게는 충성심에 대한 욕구가 있다... 우리는 모두 삶을 견뎌 내기 위해 자신을 넘어선 무언가에 헌신할 필요가 있다...

인간에게 삶이 의미 있는 까닭은 그것이 한 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에서는 결말이 중요하다.

삶의 이유는 단지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거나 심각한 장애를 겪게 됐을 때만 중요한 게 아니다. 인생 전반에 걸쳐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지음 

 

 

serenity 평온. 무료 이미지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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