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 바른 글

너를 떠나 보내기가 많이 힘든가 보다.

지구빵집 2021. 2. 9. 10:30
반응형

 

 

아빠가 너를 떠나보내기가 많이 힘든가 보다. 아들 보아라.

 

네가 지내는 소식을 담은 편지 반갑게 읽었다. 훈련하느라 바쁜 시간에 예쁜 글씨로 단정하게 쓴 편지를 읽고 또 읽어본다. 마치 아빠가 훈련소에서 지내는 것처럼 느낄 정도로 깨알 같은 정성을 담은 훈련소 소식 고맙다.

 

훈련도 잘 받고, 밥도 잘 먹고 동료와 잘 지낸다니 무척 마음이 놓인다. 3일에 한 번씩 서는 불침번 시간은 너무도 길고 길 텐데 무슨 생각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하구나. 하기야 생각할 것은 밖에서 지낼 때일 뿐이 더 있겠니? 친구들과 지낸 일, 여자 친구 사귄 일, 별로 기억할 것 없는 학교생활과 좋은 일, 나쁜 일 여러 가지 생각이겠지만 그래도 가장 즐거웠던 때라고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동료는 너를 믿고 쿨쿨 자는 시간에 깨어서 지키기는 참 힘든 시간이지. 집에서는 잠도 참 많이 자던 네가 줄어든 취침 시간으로 힘들지 않나 생각한다. 버릇되면 또 잘 적응하며 지낼 테니 잠잘 시간 없다고 투정 부리지는 마라.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시간은 지금 이 시간이란다. 지금 너에게 글을 남기는 시간이 아빠에게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듯이 말이다. 지나간 일로 괴로워하거나 그리워하는 일이나 앞으로 다가올 일을 걱정하는 것은 별로 지혜롭지 못한 일이란다. 지나간 일에서 교훈을 찾고, 앞으로 닥칠 일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일은 소중한 일이라서 지난 일과 올 일을 생각하는 게 나쁜 일만은 아니다. 사격훈련도 잘했다니 다행이다. 목소리는 쉬어서 마치 변성기가 한 번 더 오는 것처럼 목소리가 안 돼 보였다.

 

어제 토요일(2월 6일)은 엄마랑 마라톤 번개 달리기에 가서 12km 달리고 점심 먹고 커피 마시고 또 친한 회원 몇 명과 술 잔뜩 마시고 대리운전 불러서 엄마랑 집으로 왔다. 그래서 네 전화도 받지 못했단다. 전화를 받지 못해 너무 섭섭했는데 오늘은 전화를 많이 해서 아주 기뻤단다. 어제 동료들과 놀던 중, 아빠 얼굴이 많이 빠져서 걱정하길래 '아들이 군대 가서 우울해서 그렇다.'라고 했다. 네가 간 후로 몸살기가 있었는데 오래가더구나. 조금씩 낳아지고 있단다. 건강한 몸은 정신을 바르게 하고, 정신은 육체는 고양한다. 조금이라도 몸이 아프면 우울한 마음이 든다. 아픈 몸으로는 아무것도 즐겁게 할 수는 없단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건강한 몸이라도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올바르게 성장하지 않는다면 동물과 다름없을 수도 있고 말이다. 스스로 몸을 잘 돌보는 일이 가장 기본적인 일인데도 많은 사람은 기본적인 일도 잘하지 못한다.

 

아빠는 중고등학교 시절이나 군대에서 근무할 때도 그렇고 별로 좋은 기억이 없다. 유머 있고 재빠르게 행동하고 공부는 중간 정도였고 건강하게 자랐지만 작은 키는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세계에서는 별로다. 괴롭힘도 당하고, 폭력적인 억압이나 강압적인 규칙이 지배하는 환경에는 전혀 어울리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별로 기분은 좋지 않단다. 민서는 그나마 키도 크고 건달 같으니 재미있는 기억이 많겠구나. 여하튼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라서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음 주부터 4주 차 훈련이 시작하는구나. 더욱 힘든 훈련이 기다리고 있겠지. 사격도 다시 한다면 더 잘하길 바란다. 영점 조준은 사실 중요한 게 아니다. 탄착군이 제대로 한 점을 중심으로 형성되면 영점은 정확하지 않아도 사격 기술이 훌륭한 거니까 말이다. 형식적으로 시간이나 보내자 하면 시간은 더디 흐른다. 재미도 없거니와 말이다. 그러나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정해진 훈련에 집중하고 몰입하면 어느새 시간은 휙 지나가 버리고, 재미있는 일은 덤으로 생기기도 한다. 민서는 아마도 모든 일을 잘 해내리라 믿는다.

 

다음 주는 설날이 있는 주란다. 코로나 때문에 많이 모이는 곳은 가지 못하지만, 틈틈이 달리기도 하고, 청주도 다녀오고, 네게 편지도 쓰고 할 예정이다. 너희도 훈련 없이 휴일을 보내겠구나. 책이 있다면 열심히 책을 읽길 바란다. 아빠처럼 실제 삶에서 부딪치며 배우지 않고, 책을 통해서만 배우는 것도 문제지만 모든 분야에서 인류의 지혜가 녹아 있는 책을 통해 배우지 않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은 훈련기간 건강하게 잘 지내라. 입춘(2월 3일)이 지나고 날씨와 하늘, 바람이 봄을 향해 달리고 있다. 아주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마음 편하게 지내라. 의도적으로 하려면 더욱 안되고 힘든 법이니까 네가 할 만큼 하고 나머지는 상대방에 맡기고 운에 맡겨라. 늘 행운이 함께 하길 바란다.

 

안녕. 2021년 2월 7일. 일요일 밤. 

 

 

너는 참 단정하고 아름답구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