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항상 네가 자랑스러웠단다. 아들아.
1월 29일 날 네가 보낸 4번째 편지를 오늘 받았다. 처음 2통을 받고, 27일 쓴 편지를 금요일 받고, 오늘까지 다 잘 받았다. 네가 있는 부대는 산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눈이 내린 풍경은 아름다우면서도 외로운 적막감으로 쌓여 있겠구나. 엄빠는 네가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무척 마음이 놓인단다. 물론 네 편지를 보니 네가 지내던 이곳, 너의 방, 너의 소지품과 친하게 지낸 친구들까지 모두가 그립고 보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겠다. 2주가 지났으니 잘 적응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보급품을 많이 받았다니 기분이 좋겠구나. 여기서는 다 일일이 사야 하는 물품을 공짜로 받았으니 완전 계 탔다는 생각이 든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든지. ^^ 아빠도 더캠프에서 깔깔이하고 티셔츠를 살 생각이다. 아들 덕분에 Korea Army라고 새겨진 옷을 입어보겠구나.
네 전화를 받은 월요일 저녁은 정말 가슴 뭉클했단다. 너는 말도 못하고 훌쩍이면서 아빠 걱정만 하고 말이다. 우리는 늘 감정을 억누르고 속이고 자기감정을 보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교육을 받아서 표현에 인색하단다. 민서는 그러지 마라. 좋고 싫은 것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좋아하는 것은 많이 하고 싫어하는 것은 빨리 끝내버리고, 사랑하고, 호감을 같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사람으로 살아라. 전화할 시간이 나면 아빠는 바쁘니까 주로 엄마에게 전화해라.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 네 전화를 받고 글썽이면 좀 창피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어제 2월 1일 월요일부터 격리가 끝나고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된 걸로 안다. 추운 날씨에 훈련받는 일은 고생이 아니라 대한민국 젊은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오락이다. 전쟁놀이라는 오락이다. 인터넷 총싸움 스페셜 포스, 스팀 같은 게임이나 전쟁 게임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재미있는 게임을 직접 한다고 생각하니 네가 부럽기까지 하단다. 완전 방 탈출 게임이나 서바이벌 게임을 우리는 돈 주고 게임장 가서 하는 데 너는 훈련하면서 건강과 체력을 키우니 얼마나 좋은 기회냐? 아무쪼록 다치지 않고 성실하게 훈련을 마치기를 바란다. 가장 어려운 훈련은 유격 훈련과 완전군장 100km 행군인데 바로 앞만 보아라. 지금 당장 줄타기만 하고, 지금 당장 100미터를 걷는 것에만 집중하면 유격도 100킬로미터도 금방 지나간다. 우리 민서는 무엇이든 잘 해낼 거라고 믿는다.
우리는 항상 네가 자랑스러웠단다. 아들아.
아직은 네가 어리기도 하고, 처음 우리의 아들로 살아왔고, 세상은 너에게나 우리에게도 모든 게 처음이라서 미숙한 일에 화도 내고 서로 얼굴을 붉힌 적도 있었지만 지나고 나면 언제나 서로에 대한 믿음은 더 강해져 있었다고 생각한다. 네가 '아빠'하고 부르면 무조건 달려갈 때 주변 사람들은 얘한테 매달린다느니, 아이에게 휘둘린다고 말을 해도 아빠는 전혀 부끄럽지가 않았다. 네가 나의 아들이기 때문이고, 이렇게 휘둘리고, 매달리는 때도 언젠가는 끝날 때가 온다는 것을 알아서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잘 자라온 아이가 이제는 20살이 넘어 군대에 가 있는 장성한 아들이 되었다는 사실 또한 자랑스럽단다.
총기를 목숨처럼 다루라고 교육받았다면 정말 목숨처럼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총기 분해 조립을 1분 내로(눈 감고도) 하도록 필사적으로 연습하기 바란다. 우리가 전쟁 영화에서 총싸움이나 팬더 탱크 싸움을 영화로 보는데 실제 우리가 그곳에 있었더라면 죽느냐 살아남느냐의 싸움이겠지. 사는 동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면 하나하나 배울 때 온 힘을 다해 배우길 바란다. 명절에 친구들 만나서 시내 나가면 사격으로 인형 타는 게임을 하는데, 아빠가 늘 일등을 해서 인형을 탄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사격할 때는 신중하게 잘하길 바란다. 스나이퍼가 되길 바라지는 않지만, 적군보다 최소한 빨리 조준을 하고 쏠 수 있도록 말이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해도 우리는 너를 응원하고 지지할거란다. 포기하거나 물러서지 말아라.
우리 주위에 10명의 사람이 있다면 2명은 당신을 싫어하고 7명은 당신에게 별 관심 없고 1명 정도는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렇단다. 억지로 모두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고, 좋아하고 마음이 통하는 한 명에게 소중히 대하라는 말 같지만, 다른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무엇이든 허용하고 관대하게 대하길 바란다. 우리 자신이 굉장히 사소하고, 형편없는 사람이면서, 대단한 위인이 아니라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막 대하는 태도는 좋지 않단다. 모든 사람의 마음은 다 다르다. 다른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사람의 생각과 느낌도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어떤 사람도 포용하고 그들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 관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해할 필요도 없는 거지. 우리가 나무나 꽃이나 바위를 이해하지 않는 것처럼 존재하는 본연의 모습을 보고 지낸다고 생각하면 굳이 나와 별 상관도 없는 사람을 이해하거나 관대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단다.
다음 주 2월 11일, 12일, 13일이 설날 연휴지만 코로나 상황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라 청주에 가거나 홍제동에 갈 생각은 없지만,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5명 모임도 금지되니 잠깐 청주에 다녀올지도 모르겠다. 네가 있는 훈련소는 훈련이 없어서 자유시간이 많아 심심할테니 그때 읽으라고 아주 편지를 많이 쓰든가 해야겠구나. 아니면 블로그 글이라도 왕창 복사, 붙여 넣기를 하든가 할 생각이다. ^^ 아니 그래도 전혀 문제가 있을 것 같지는 않구나. 인터넷 편지를 출력하고 훈령병들에게 나누어주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인데 말이다.
훈련을 마치는 2월 24일 훈련소 수료식에는 꼭 참석해서 민서 얼굴을 보려고 한다. 가까운 곳에 펜션 잡고 소고기 굽고, 네가 좋아하는 참치회, 광어회에 가리비 구이에 대게 찌고 온갖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먹고 놀다가 저녁에 자대 배치받은 곳으로 가면 좋겠구나. 누구나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이라 우리 바람대로 될지는 모르겠구나. 엄마 말로는 24일 수료식도 열리기 힘들 수도 있고 바로 자대로 이동할 수도 있다고 하던데, 자대에 배치받아 얼굴도 못보고 가더라도 최대한 빠른 날짜를 잡아 부대로 면회 갈 생각이니, 수료식 날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하거나 먼일을 예측하지는 말자꾸나. 변경 사항이 있으면 알려주고 날짜는 충분히 남았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자.
비록 한정된 환경과 정해진 테두리, 좁은 지역에 있지만 많은 것을 경험하고 나름대로 질서를 잡아가며 조금씩 깨달아 가는 너의 글과 모습을 보니 대견하고 멋져보인다. 일찍 세상으로 나온 너는 누구보다 똑똑하고, 용기 있고, 지혜로운 젊은이란다. 학교에 있는 아이들은 정말 아이들이란다.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이면서 온실 속에서 돌봐주는 대로 나름대로 아름답게 자라나는 어린나무를 보는 듯한 기분이란다. 그러면서도 예의를 지킬 줄 알고, 스스로 자기에게 필요한 공부에 열심이고, 자기들끼리 관계속에서 소통하고 배우는 과정은 다른 데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해. 여느 20대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아프기도 하고, 힘들고 두려운 다리를 건너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나 네가 각자가 지나온 길이 한 번 지나온 것으로 굳어지거나, 서로 지나왔던 길을 밟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단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이 먼저 걸었던 길을 나중에 걸어갈 수도 있고, 혹시 빠뜨린 길을 다시 걸어야만 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으니 맞는다거나 틀리거나 한 건 아니고 단지 지금 걸어가는 길이 조금 다를 뿐이란다. 경제력에 대해서든 사회에서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배우면서 느긋하게 걸어가길 바란다.
4주 정도 남은 훈련기간 잘 지내고 항상 가장 아름다운 곳인 지금, 여기에 집중하여라. 우리 인생에 가장 빛나고 황홀한 순간은 오늘 이시간이라고 생각해라. 매 순간순간 네 맘에 꼭드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 아침저녁 찬 바람에 건강에 유의하고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노을 지면 노을이 지는 대로 삶을 즐기기를 바란다. 내일이 입춘이니 봄이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아들에게도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길 바란다.
아들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입춘을 하후 앞둔 2021년 2월 2일 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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