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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 알랭드 보통

지구빵집 2021. 1. 16.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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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때는 사랑이 딱 아름다울 때 까지다. 아름다운 사랑은 항상 비극이나 진부함으로 끝난다. 그/그녀의 사랑이 맹목적인 믿음이고 종교적인 광기라고 보이는 이유다.   

 

알랭 드 보통의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은 스물세 살에 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Essays in Love', '우리는 사랑일까'의 영문 제목은 'The Romantic Movement',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Kiss & Tell'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걸작은 '우리는 사랑일까'로 평가받는다. 

 

20대 초반의 앨리스는 다른 사람, 다른 나라, 다른 연인 같은, '다른 것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낭만주의자였다. 하는 일은 런던 소호 스퀘어에 있는 큰 광고 대행사에서 광고주를 관리하는 일이다. 에릭을 만나기 전에 무엇인가 갈망하는 자신을 보며 가끔은 절망한다. 절망은 자신이 타인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 지구 상에서, 그리고 거기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 자신은 불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으로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엘리스는 신을 믿지 않았고 예술과 사랑이 신의 역할을 해주기를 바랐다. 영화가 '나만 이런 감정을 겪으며 이 거리를 보고 카페에 앉아 있는 게 아니야.' 하는 생각을 통해 고립감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듯이, 사랑은 그녀가 '당신도 느끼나요? 정말 근사하죠. ~~ 할 때 내가 바로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하고 속삭일 수 있는 사람을 희망하게 했다. 이것이 바로 한 영혼이 다른 사람이 영혼과 미미하게 닮았음을 발견한다는 것의 실체다. p.36 

솔직함은 무례와 습자지 한 장 차이다. 특히 '내가 아니면 누가 너에게 이런 말을 해주겠니?' 혹은 '내가 네 친구니까 이런 말 해주는 거야.' 하는 말과 같다. 앨리스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에 친구가 초정한 파티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 비관적인 생각과 예상되는 실패를 피하고자 하는 희망의 관계는 악명 높다.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면, 그 일은 일어나지 않고 매사가 어긋날 거라고 계속 집착하면, 결국 일이 제대로 풀린다. 

 


앨리스는 에릭 같은 남자를 본능적으로 경계했다. 그 남자는 경계할 만한 퉁명스러운 매력을 풍겼고, 이 저녁시간 전체를 장난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진실성이 의심스럽기는 해도 매력만은 의심스럽지 않았다. 바삭바삭한 롤빵을 손가락으로 벌리거나, 포크로 빠르고 민첩하게 채소를 모으는,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동작이 관능적이었다. p.58 

 

모르는 두 사람이 파티에서 만나서, 파티에서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게 이상하다고 털어놓으면, 사교적인 어려움을 공유했다는 사실 때문에 대화를 풀어가는 데 묘하게 장애가 없어진다. 에릭과 지내면서 앨리스는 극적으로 자신감을 잃어버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른들의 세계에서 생존할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있다고 믿었지만 모든 게 급속도로 해제되어 자책감과 혐오만 남았다. 에릭에게 앨리스는 조급하고, 지적 허영심이 강하고, 남자를 편하게 두지 못하는 사람으로 간주되기 일쑤였다.

 

앨리스는 사랑받는 요건에 좋은 게 있고 나쁜 게 있다고 느꼈다. 육체 때문에 사랑받는 것, 돈 때문에 사랑받는 것, 이뤄놓은 일 때문에 사랑받는 것, 나약함 때문에 사랑받는 것, 세세한 면 때문에 사랑받는 것, 불안감 때문에 사랑받는 것, 두뇌 때문에 사랑받는 것, 존재 때문에 사랑받는 것들 가운데서 앨리스는 잃어버리면 자신이 존재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사랑받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고 운이 나쁘면 외모, 직장, 돈, 능력은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녀에게는 순수한 의식, 순수한 자신, 존재한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남았다.

 


비트겐슈타인(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철학자)의 주장을 빌리면, 타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폭이 우리 세계의 폭이 된다.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우리의 농담을 이해하면 우리는 재미난 사람이 되고, 그들의 지성에 의해 우리는 지정 있는 사람이 된다. 그들의 너그러움이 우리를 너그럽게 하고, 그들의 모순이 우리를 모순되게 한다. 개성이란 읽는 이와 쓰는 이 양쪽이 다 필요한 언어와 같다. 7살 아이에게 셰익스피어 작품은 말도 안 되는 허접 쓰레기이며, 만약 그의 작품이 7살 아이들에게만 읽힌다면 셰익스피어는 그 아이들이 이에 하는 수준에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p.318

마찬가지로 앨리스의 가능성도 애인이 공감해주는 한도에서만 뻗어나갈 수 있다. 관계의 기반은 상대방의 특성이 아니라 그런 특성이 우리의 자아상에 미치는 영향에 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그 남자와 있으면 가치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을 느꼈다. 그 남자와 함께 있는 엘리스는 돈을 함부로 쓰고, 지성적이지 않고, 감정적인 데 매달리고, 타인을 귀찮게 하는 이타심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었다. p.319 

앨리스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있으면 흥미로운 인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스스로 아주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결론지었다. 에릭과 같이 앉아 저녁을 먹을 때면, 적당한 상대만 있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리라는 자신감을 잃고, 할 말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 말하고 싶어 할 수 있는 것까지 타인이 결정한다는 증거다. p.323 

 

누군가에게서 벗어난다는 것은 낯설고 감상적인 생각이다. 앨리스는 자신의 모자란 점을 채우고자 사랑했고, 그녀가 갈망했지만 부족한 자질을 에릭에게 추구했다. 그녀의 감정적인 욕구는, 상대가 가져다준 조각 없이는 맞출 수 없는 불완전한 퍼즐 같았다. 더 이상 에릭이 주는 것은 아무런 매력적인 것들이 아니었다. 결국 앨리스는 에릭과 헤어진다. 

 

알랭 드 보통의 냉소적이며 따뜻하고, 허세가 가득하면서도 치밀한 논리가 있는 문장은 가끔은 너무 길어 이해하기가 어렵다. 삶과 관계를 바라보는 알랭 드 보통의 풍요로운 글은 유머로 가득하다. 보통의 일상에서 끌어내는 반드시 그러할 수밖에 없는 역설을 끌어내는 데 탁월하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에서도 이별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지만 마지막은 희망적이고 밝은 면을 드러낸다. 

 

우리의 마음이 자주 빠져드는 두려운 공포, 저주와 분노의 상황에서도 우리가 결코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유머다.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헤집어 핀셋으로 콕 집어내야 하는 것은 유머다.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는 자질구레한 현실에 매달려 질질 끌려가지 않는다. 

 

 

 

알랭드 보통 우리는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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