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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고 짧은 머리, 빛나는 갈색 아이리스, 파주 1사단 전진 신병교육대 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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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고 검은 짧은 머리, 눈부시게 빛나는 갈색 아이리스, 파주 1사단 전진 신병교육대 입소 

 

혼자 있을 때 안정감 있게 지내는 사람이 매력적이라고 한다. 홀로 안정감 있는 존재는 자연에는 많으나 상호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인간에게는 어려운 문제다. 존재하는 것들은 늘 변한다. 그 안정감을 얻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것으로 개인이 발전하고 인류가 발전했다. 마음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 같아서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고 어떤 모양이나 색으로 변하고, 움직이고 싶은 방향으로 '매우 빠르게'라고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움직인다. 마음이 양자로 이루어졌다고 나중에 밝혀질 것이다. 어떻게 보면 양자의 움직임과 동일하다. 나의 마음이 결정하는 순간 아무리 멀리 떨어진 사람의 마음이 결정된다. 사랑하는 관계에서 남자의 마음이 +라면, 보나마나 여자의 마음도 +다. 그렇지 않은 관계에서는 한 사람이 +면 다른 사람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인 것과 -인 사이의 교환이 문제인데 이미 결정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양자 컴퓨팅은 유사하게 동작한다. 그 마음을 잡을 길이 없으니 가만히 바람을 보기도 하고, 꽃이 피는 것을 보고, 또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일을 한다.

 


나는 충분히 살았을까?
나는 충분히 사랑했을까?
올바른 행동에 대해 충분히 고심한 후에 결론에 이르렀을까?
나는 충분히 감사하며 행복을 누렸을까?
나는 우아하게 고독을 견뎠을까? - 메리 올리버, <천 개의 아침> 

 

입소 전날 저녁부터 눈이 많이 온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런대로 평온한 날씨였다. 엄청 게으르고 창의적인 사람과 부지런하고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일어나 아침을 준비한다. 2시까지 신병교육대에 아들을 집어넣어야 하니 아침을 먹고 여유 있게 9시 30분이 되어 출발한다. 전날 파주로 가서 자고 아침에 들어가야 하지 않느냐면서 많이 걱정한 것과 다르게 파주 문산에도 눈도 많이 오지 않아 입영 부대로 쉽게 갔다. 새벽 1시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들지 못한 남자는 새벽 3시에 만두를 쪄먹는 아들을 보고 미소 지으며 보고 있다. 6시간 후엔 아이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최고 잘 싸우는 부대 1사단 파주 전진 신병교육대에 들어간다. 이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 맛있는 것들을 많이 사주지도 못하고, 따뜻한 밥을 많이 해 주지도 못했다. 많은 것이 아쉽다. 

 

군대 입대 소식을 알고 나면서 자연스럽게 진실을 알게 되었다. 남자가 22살에 방위(현재는 공익 근무요원으로 활동한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진 않았다.)로 군대를 마친 아빠를 놀리기 일쑤다. 공익은 훈련받았나요? 민원센터에 근무 한 건 아닌가요? 전 현역입니다. 하면서 아빠를 놀리지만 남자는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라 이렇게 말한다.

 

"얘, 아빠는 25사단, 인제, 수색대, 지뢰 제거반 출신이야. 그때 같이 입대한 동료들 여러 명이 팔 다리가 잘려서 제대해서 아빠는 군대 이야기 안 한다. 생각만 하면 슬프고 눈물 나서 말하기 싫은 사람이야." 하고 말했는데 이젠 모든 것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게 되었다. 더 이상 군대 이야기나 축구 이야기,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는 아들과 할 수 없다.

 

남자가 겨우 아들보다 1살 많았을 때 청주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 가면 있는 작은 읍내 증평에 있는 37사단 신병 교육대로 입소했다. 아침에 부모님께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나간 남자는 4주 훈련을 마치고 다시 입소한 바로 그 37사단 신병 교육대로 자대 배치(?)로 출퇴근을 하였다. 처음 배치 받은 취사장에서 3교대 근무하면서 신병이 있으면 400명, 없으면 40명 분의 밥을 하던 이야기, PX(군대 매점)으로 옮겨 편했고, 잘만 하면 돈도 벌었을 텐데 그만둔 이야기, 다시 신병 교육 교관으로 근무한 이야기, 다시 취사장으로 발령나서 돼지 잡고, 손다친 이야기는 차차하기로 하자. 대한민국에 사는 어느 남자에게 군대 생활은 학창 시절과 같다. 도무지 재미있던 기억은 없다. 진짜 어떻하든 시간이 흘러 복무기간을 채우면 나가는 곳, 세상에 그런 곳이 감옥말고 어디 있겠나 싶다. 

 

코로나 19 상황은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슬픔이나 기쁨, 위로와 평화의 시간을 잔인하게 가져간다. 아들은 똥이 마렵거나 졸음이 오면 끝까지 참는다. 그러니까 즐거운 일을 끝까지 한다. 참다 참다 똥이 나오기 직전 화장실을 가고, 졸음이 와도 잠자리로 가는 법이 없이 그 자리에 폭 꼬꾸라져 잠이 든다. 아들은 긴장하면 속이 좋지 않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아침도 먹지 않고 나오고 문산 읍내에서 삼계탕을 먹지만 반도 먹지 못한다. 시간이 되어 동반 입대하는 친구와 부모님을 만난다. 주형이란 친구는 누나와 여자 친구, 여자 친구의 친구가 와서 꽤 인원이 된다. 우리는 달랑 3명이 왔다. 1사단 전진 신병 교육대 정문으로 아이와 차를 타고 들어가는 데 거의 드라이브 쓰루다. 이별이고 머고 없이 방역복으로 무장한 군인이 차를 세우고 아이를 데려간다. 휴대폰과 모자를 남기고 아이는 건물 뒤로 돌아간다. 잘 다녀오라는 한마디로 미처 슬퍼하거나 아쉬울 새도 없었다. 참 허망하다 싶다.   

 

아이는 인적사항이나 내무반 호실을 지정받는다. 지금은 긴급 상황이라 체육관에 집합한다든가 단체로 호명을 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 날씨는 오늘 밤부터 추워진다고 한다. 내무반으로 간 아이는 군복과 필수품을 지급받고, 명찰을 달고 두려운 시간을 보낸다. 처음 접하는 공포스럽고 두려운 분위기는 사람의 진을 빼놓아 피곤하고 힘들게 한다. 큰 스트레스일 수도 있다. 밤 10시에 취침 자리에 들면 20명 남짓 자는 내무반에서 어디선가 훌쩍이는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부모님이 보고 싶고 무섭기도 하고, 집 생각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한 옆에 있던 선임 교육 병사가 조용히 하라고 소리친다. 아이는 무서워 억지로 울음을 참는 데 다른 아이가 또 훌쩍인다. 그렇다고 내무반 전체가 눈물바다가 되는 일은 없다. 전부 성인인 데다가 각오가 되어 있다. 

 

집으로 오자마자 남자는 일을 하러 대림역 근처에 있는 협력 회사로 할 일을 찾아간다. 인간은 사냥하고, 먹고 마시며 놀고, 쉬고, 무기를 다듬고, 작전을 짜고, 다음 사냥에 나서는 일을 계획하는 6가지 일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많아야 6가지 일이다. 남자는 물론 안다. 아이가 씩씩하게 복무하다가 몰라볼 정도로 변해서 오게 된다는 사실을. 며칠 지나면 아이가 적응하는 만큼 남자도 잘 지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곳의 생활들이 낯설고 힘들어 그대를 그리워 하기 전에 잠들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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